韓國 祭儀式에 나타난 歌舞的 要素 - 神話, 古代祭儀, 八關會를 中心으로 -
A Study on the Choreological Elements of Korean Rituals - Especially Focused on Myths, Heaven Worships and “Palkwanh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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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초록
군주를 맞이하는 경삿날에 촌장과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며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는 것이 골자다. 이것은 나라의 축제가 있을 때 백성들이 그 축제를 즐기는 방식을 보편적으로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춤과 관련하여 “답무(踏舞)”하라는 하늘의 목소리에 구간들이 그 말을 쫓아 “가무(歌舞)”했는데, 노래의 내용과 춤의 형태를 지금으로선 정확하게 가늠하기 어렵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2, 3백여명의 백성들이 구간들과 더불어 함께 춤을 추었는지, 그리고 9명의 구간들이 일사분란한 군무(群舞)를 추었는지 아니면 각자 흥에 겨워 개별적으로 춤을 추었는지도 문맥을 통해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나라의 잔칫날에 백성들이 모두 축제를 벌였다는 풍습이 있었으며 그러한 풍습이 아주 오래 전의 신화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의 상징적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수로신화의 배경설화에 수록된 <구지가>는 <공무도하가> 및 <황조가>와 더불어 가사의 내용을 알 수 있는 3대 고대가요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설화의 내용으로 볼 때 구지가의 창작시기는 서기 42년이다. 고구려의 2대 유리왕이 재위 3년에 지었다는 <황조가(黃鳥歌)>는 기원전 17년이며,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는 저자와 제작연도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공무도하가>는 서민적 노래이고, <황조가>는 서정적 노래의 효시로 간주되고 있지만 <황조가>의 경우도 건국 및 건국신화와 관련하여 서사적으로 파악하여 가무적 요소를 고찰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많다. 학위논문에서 <구지가>는 수로신화와 관련하여 상세하게 고찰하였지만 본 연구에서는 지면관계상 생략하였다. <황조가>는 <黃鳥歌舞>란 제목으로 제3장 1항의 3)에 편차되어 서사적 의미와 가무적 요소를 상세하게 고찰하였지만 <會蘇曲舞>와 마찬가지로 본 연구에서는 지면관계상 1) 도솔가무의 끝부분에 삽입하여 포괄적으로 언급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