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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말 구(舊)지식인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추도시 연구- 『춘무공삼십년기추도시집(春畝公卅年忌追悼詩集)』(1938)을 중심으로 -

A Research on Former Intellectuals' Memorial Poems of Itou Hirobumi in the Late Japanese Empire : Memorial Poems of 30th Anniversary of Itou's Death (春畝公卅年忌追悼詩集)(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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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1929년, 그의 죽음 20년을 계기로 조선에서의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기억’은 본격적으로 재구축 되었다. 대한제국 멸망과 조선침략의 ‘원흉’이 아니라 일본과 조선의 화평을 위해 헌신하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영웅’적 인물로 현창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1932년 “박문사”가 완공됨에 따라 그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는데 이후 이곳은 ‘조선신궁․경성신사’와 함께 참배 명소로 거듭나기도 했다. 그리고 전시동원체제가 시작된 1938년, 이토 사후 30년 기일을 맞아 함께 그의 시대를 함께 살아간 조선의 (협력적) 구지식인 집단은 일본인과 함께 그의 죽음을 다시금 추모하는 동시에 그의 공덕을 찬양하는 시를 작성해 박문사 영전에 올린다. 이토 사후, 일본인과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이 ‘합작’한 최초의 추모시집이 탄생한 것이다. 위 시들은 “우국충군(憂國忠君)”의 뜻을 피력한 이토의 시를 차운한 것으로 시집에는 일본인 49명과 조선인 31명이 작성한 93수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당시 이곳에 시를 수록한 조선인들의 평균연령은 65.5세로, 사실상 이들은 당대의 ‘원로’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즉 원로급 조선인 유력자․한학자․종교가 등을 이토 추모 행사에 동참시킴으로써 내지인뿐만 아니라 식민지인 역시 그에 대한 추모의지를 갖고 있음을 ‘전시’하려 했던 것이다. 과거처럼, 여전히 한자를 ‘제 1문어(文語)’를 활용하던 그들은 한시를 통해 이토의 시대를 문치(文治)가 빈빈(彬彬)했던 과거 당송(唐宋) 시대와 비견하거나 그를 일세의 영웅으로 칭송하는 시를 남겼다. 이들은 조선조 전통의 세례를 받고 태어나 통감부를 거쳐 일제 패망까지 살아간 원로이면서 식민권력에 순응해 온 당대의 전형적인 구지식인이라 평할 수 있는데 그들의 시 역시 이러한 점을 여실히 ‘표출’하고 있었다. 즉 식민지 공간에서 ‘기성의 언어이자 기득권의 문예’였던 한시가 차지하고 있는 한 지점, 다시 말하면 한시를 통해 일제와 그 주변의 권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기획’되어 전개되고 있던 식민지시기 한시 창작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Abstract

A memory of Itou Hirobumi is restructured in earnest with 20th anniversary of his death in1929. In other words, he was lightened as ‘a hero’ who died tragically in dedicating to a peace for Japan and Joseon not to a collapse of Korean Empire and an instigator of the invasion to Joseon. In 1932, as “Bakmun temple” was built, the remembrance of him began to take shape. This place was reformed as the sights for paying respect with ‘Joseon Shrine․Japanese shinto shrine’. In 1938, when Wartime-mobilization began, reaching 30th anniversary of Itou'sdeath, the group of (pro-Japanese) former intellectuals who was a contemporary of Itou commemorated his death and wrote poems about praising his charitable deeds with Japanese and offered it to the dead. The first book of memorial poems on which Japanese and former intellectuals of Joseon, a colony, ‘collaborated’ was born after Itou's death. This book of poetry is derived from Itou's poems that expressed “Being concerned about the country and being devoted to the king(憂國忠君)” and it contains 80 poems that 49 Japanese and 31 people of Joseon wrote. The average age of people of Joseon was 65.5 so they were considered as elders as a generation in the period of empire of Korea. In other words, the Japanese Empire established the legitimacy by lightening Itou through “words” from the generation who directly experienced Itou. They who still used Chinese letter as a written language(文語) left poems that Itou's time was comparable to Tang-Song(唐宋) Period when civil administration was frequent or Itou was praised as the hero of the day through Sino-Korean poetry. They are elders who were born with the baptism of the tradition of Josen Dynasty and lived from the Residency-General to the collapse of the Japanese Empire and also typical former intellectuals of the time who had conformed to the colonial power. Such a point of these are ‘expressed’ in their poetry as well. Their poetry that reached the twilight ‘the official writers and artists of colony who were born as a literary man of Joseon’ speaks the one aspect of ‘the crumpled portrait’ of former intellectuals who had lived through Japanese colonial era and ‘Chinese literature that lost its identity’ seized by a colonial power.

참고문헌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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