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재(含忍齋) 정국채(鄭國采)의 가계와 예학세계
Family of Haminjae(含忍齋) Jeong Guk-chae(鄭國采) and his World of Yehak(禮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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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경상우도인 산청․하동에 연고를 둔 함인재 정국채는 19세기 초반 무렵을 주요 활동기로 삼은 노론 계열의 재야 유학자다. 이처럼 정국채가 남명학파의 본산지인 서부경남 지역에서 노론계로 자신의 당파적․학문적 노선을 정위시킨 이면에는, 선조인 정몽주를 위한 선양 사업에 송시열․권상하․이재․유척기 등과 같은 서인 측의 저명한 인사들이 적극 동참하였던 사정과 직결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정국채의 증조부인 정홍적이 거제도에 유배 중이던 송시열을 왕배하게 되었고, 이후 조부 정도동은 황강의 권상하 문하를 찾아 사제의 연을 맺기에 이른다. 그런 점에서 정국채와 노론계와의 인연이란 선험적 귀속성의 성격을 띠고 있었고, 다소 특별한 배경을 간직한 신출노론으로 분류할 수 있다. 향후 정국채가 우암의 후손인 성담 송환기의 문하생이 되고, 또 그 이전에 김천의 예학자인 경호 이의조를 사사(師事)했던 학연 또한 그가 귀속한 당파적 인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이의조와의 만남은 정국채의 학자적 정체성이 예학자로 거듭나는 데 크게 일조했다. 게다가 정국채는 당면한 시국을 도덕적 에토스가 심히 쇠락한 시대로 진단하는 가운데, 명분의식과 질서 관념의 회복을 위한 열정에 한껏 고취된 성향을 노정해 보였다. 비록 일실되고 말았으나, 『사례촬요』․『경례강설』과 같은 예서들은 예학자로서의 정국채의 면모를 여실히 입증시켜 준 텍스트에 해당한다. 특히 전자인 『사례촬요』의 경우, 이의조의 주저인 『가례증해』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음이 주목된다. 즉, 조병덕․조긍섭 등과 같은 『가례증해』 예찬론자와는 달리, 정국채는 스승 이의조의 예서에 내재된 지리․방만한 체재를 은연중 비판적 시각에서 응시하였던 것이다. 마침내 정국채는 일용 현실에서 항상 실행이 가능한 실천 지향적인 예서를 구상하게 되었고, 그 결과가 『사례촬요』로 결실을 맺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사례촬요』가 『가례증해』에 대한 안티테제의 산물이었지만, 정국채가 노론계 예학의 계보와 이의조의 예학세계와 완전히 절연했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정국채가 주변의 도움으로 전사(傳寫)한 김장생의 『의례문해』 한 질이 이 가문 대래로 보전되어 왔던 정황은, 『사례촬요』나 『경례강설』이 노론계의 예학적 전통을 반영했을 개연성을 암암리에 시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Abstract
Haminjae Jeong Guk-chae was a Noron-leaned(老論係) Confucian scholar whose main activity was done out of office in the early 19th Century. Behind his establishment of his partisan and academic line as a Noron-leaned scholar at the major region of Nammyeong School(南冥學派) was the circumstance in which Noron-leaned persons including Song Si-yeol(宋時烈) had participated in exaltation project in favor of Jeong Guk-chae's ancestor Jeong Mong-ju(鄭夢周). Partisan tie as such also caused Jeong Guk-chae later to become the student of Song Hwan-gi(宋煥箕), descendant of Song Si-yeol as well as the academic relationship in which he had learned from Lee Ui-jo(李宜朝) earlier. Especially his meeting with Lee Ik-jo greatly contributed to his rebirth as a Yehak (study on manners from Confucian tradition) scholar related with his scholarly identity. While assessing the currently confronted situations as traits of declined era(衰世), he showed tendency in which he highly aspired for the sense of duty and recovery of the concept of order. SaryeChalyo(四禮撮要) and GyeonuiGangseol(經禮講說) were texts that well demonstrated his scholarly position as a Yehak scholar. Especially in case of SaryeChalyo, it's noteworthy that the book started from the critical mindset on Lee Ui-jo's concept from GaryeJeunghae(家禮增解). Jeong Guk-chae criticised Lee Ui-jo's boring and loose composition at GaryeJeunghae. At last, Jeong Guk-chae conceived practice-oriented Yehak that could be practiced in daily lives, the outcome of which was SaryeChal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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