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 윤증과 남계 박세채의 학문적 교유
明斋尹拯和南溪朴世采的学问交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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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고는 명재 윤증(1629-1714)과 남계 박세채(1631-1695)의 인간적 만남과 학문적 교유 관계에 관하여 알아보고자 기획된 것이다. 명재와 남계는 소론의 영수로서 당대 정국의 흐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인간적인 상호 존중과 격의 없는 학문적 토론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발전을 도모했던 측면에서 세인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기도 한 절친한 사이였다. 명재와 남계의 만남에서는 무엇보다도 ‘무실의 실학정신’이 중요한 지남으로 작용하였다. 이는 이들의 이념적 지향점이었을 뿐만 아니라 현실인식의 토대요, 그에 대한 비판적 대안을 여는 창구이기도 하였다. 사실 명재와 남계는 당대의 여러 가지 복잡한 연쇄적 사건들 속에서 만나고 이별하고 서신을 주고 또 받았던 관계였다. 특히 우암 송시열(1607-1689)과 명재가 서로 결별한 이후에는 이들의 중간에서 상호소통의 매개자 역할을 자임했던 인물이 다름 아닌 남계였던 것이다. 명재의 인품과 능력을 인정하였기에 산림처사의 길을 걷고 있던 명재에게 출사를 권했던 것도 남계였고, ‘강교의 일’에 직접 달려가 명재를 만났던 인물도 다름 아닌 남계였을 만큼, 남계는 명재의 고단했던 인생에 있어서 진정 난향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러한 두 사람이지만, 학문적 세계에 있어서만큼은 거침없는 상호 질정과 비판의 긴장적인 끈을 놓지 않았던 교유관계를 평생토록 유지하였다. 명재와 남계는 청나라에 대한 ‘복수’의 의견을 비롯하여, ‘리기론’과 ‘예설’에 대한 입장에서 서로가 자신의 분명한 의론을 가지고 상대방의 논리에 대해 맞서서 논쟁하였다. 상대적으로 이완적이었던 남계의 대청 복수론의 입장을 명재가 비판하였는가 하면, 당시의 국제정세에 대해 보다 탄력적인 대응을 염두에 두었던 남계의 입장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다 같이 보다 분명한 전거를 통해 그 복수의 의의를 확인코자 하였던 것만큼은 공통적인 입장이었다. 그리고 리기론의 입장에서 율곡의 학설을 따르는 명재에게 맞서며 퇴계의 ‘리기호발설’의 의취를 들고 나온 남계가 이 분야에서만큼은 명재와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었던 점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예설의 전개에서 많은 부분 의견의 일치를 보여 온 그들이지만 결정적으로 조선조 예설의 전통인 ‘속례’까지 폭넓게 수용한 명재와 비교해 볼 때 남계는 당대 중화의 이념적 지향처였던 ‘고례’를 좀 더 존숭하는 입장이 있었음에 관해서도 확인하였다.
Abstract
本论文的目的是要探明明斋尹拯(1629-1714)和南溪朴世采(1631-1695)的敦厚友谊和学问交游关系。明斋和南溪做为少论的领袖不仅影响了当代政局的变迁,而且是以互相尊重和畅所欲言的学问切磋来相互激励发展,以此受到世人仰慕的莫逆之交。能把明斋和南溪走到一起的无非是‘务实的实学精神’。这不仅是他们的理念志向,而且是认识现实的基础,又是对现实进行批判提出对策的窗口。其实明斋和南溪是在当代错综复杂的事件中几经离合、经常以书信来交往的关系。特别是尤庵宋时烈(1607-1689)和明斋诀别之后在他们两人中间起疏通媒介作用的就是南溪。认可明斋的人品和能力,劝让正过山林处士生活的明斋出仕的人也是南溪,发生‘江郊之事’之时奔过去见明斋的人也是南溪。如此,南溪对明斋来说是在他困苦人生中的真正的‘兰香’。 尽管如此,两人却在学问上保持了互相批判、叱正的交游关系。明斋和南溪在对待对清国的‘复仇之义’、‘理气论’、‘礼说’等的立场上,以自己明确的议论来与对方进行了争论。明斋批判相对来说不强硬的南溪的对清复仇论。这里可以看出南溪的当时注重针对国际形势应灵活对应的立场。虽然如此,两个人的共同立场是通过更加明确的典据来确认复仇之义。而且在理气论上继承栗谷学说的明斋和坚持退溪‘理气互发说’的南溪在这一问题上意见达不到一致。在礼说的展开中虽然两人在很多问题上意见一致,但是横向收容包括朝鲜朝礼说传统的‘俗例’在内的明斋不同,南溪更加尊崇当代中华理念志向的‘古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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