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時亨의 동학재건 활동과 교권장악-강원지역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reconstruction activity of Donghak and ecclesiastical authority domination on the part of Hae Wol Choe Sihyeong Around Kangwon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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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동학 2대 교주 최시형(1827~1898)은 교조 최제우가 처형당한 후 동학교단을 재건한 인물이다. 최시형은 두 번에 걸쳐 동학 재건을 추진하였는데, 1차는 최제우 처형 이후 교조신원운동과 장자 세정 사후 동경대전을 간행한 시점이고, 2차는 2차동학농민운동 이후이다. 두 번의 재건과정에서 최시형은 강원도 인제․양양․정선․영월 등지를 핵심 활동지역으로 설정하였다. 인제가 동학의 1차 재건활동의 근거지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최시형이 교조신원운동 이후 피신하면서 교조의 일가를 영월, 인제, 정선 등지로 피난시켜 가면서 도통의 적통을 유지하려고 한 점, 가계도상 교조 최제우의 도통을 이을 수 있었던 장자 세정이 인제 귀둔리에 머물렀고, 실질적인 2대 교조 역할을 수행하였던 최시형이 교조 최제우를 위한 득도의례, 치성제, 조난향례, 기도식 등 의례를 장자가 살고 있었던 인제지역을 중심으로 거행한 점, 그리고 관군의 추격을 받던 동학교도들이 지형적으로 산세가 험한 인제군 남면 일대를 피신처로 활용하였던 점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최시형의 2차 동학 재건활동은 동학동민운동 이후이다. 당시 수세에 몰렸던 동학조직은 거의 와해 직전이었는데, 최시형은 강원지역으로 잠입하여 흩어져 있던 교도를 비밀리에 접촉하면서 조직을 재건하고자 하였다. 1880년 최시형이 인제군 갑둔리에 경전간행소를 설치하고 인쇄를 하였던 사실은 그가 최제우의 장자 세정이 체포되어 처형된 이후 실질적인 교권을 확보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1880년 인제 갑둔리에서 『동경대전』이 처음 간행되었다는 점은 최시형이 2대 교주로서 동학의 체계화를 이루고 실질적인 교권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던 시기로 볼 수 있다.
Abstract
The second leader of Donghak, Choe Sihyeong, is the one who reestablished Donghak after the founder, Choe Jeu, was esecuted. He proceeded with reestablishment twice. The first was when he led the Gyojo Shinwon Movement after Choe Jeu was executed, and when he published Donggyeong Daejeon after the death of Sejung, the eldest son of Choe Jeu. The second was when Donghak collapsed at an alarming rate after the second Donghak Peasants Revolution. Throughout this process, he established Inje as the center of Donghak. The followings are the basis to call Inje as the base of reestablishment movements. Fleeing after the Gyojo Shinwon Movement, Choe Sihyeong evacuated the leader’s family to Yeongwol, Inje, Jeongseon, and other areas in Gangwon-province. Sejung stayed in Gwidun-ri located in Inje. Choe Sihyeong, the de facto second leader, carried out rites such as Deukdo Euirye, Chisungje, Jonanhyangrye, and prayers for Choe Jeu with Inje as the center. In addition, Donghak followers took the advantage of the rugged mountain terrain of Nam-myeon, Inje in order to avoid the pursuit of the royal forces. In 1880, Donggyeong Daejeon was published in Gapdun-ri, Inje. It has historical significance in that Choe Sihyeong was able to systemize Donghak and gain control of it. In the same year, Choe built an office for publishing scriptures in Gapdun-ri, Inje. It was the origin of all scriptures of Donghak, which have been passed down up until these days. He tried to rebuild Donghak for the second time in secret, but his plan died on the vine due to whistle blo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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