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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황계감 (明皇誡鑑) 의 편찬 및 개찬 과정에 관한 연구

A Study on How Myeonghwanggyegam was Composed and Revised in the Early Joseon DynastyA Study on How Myeonghwanggyegam was Composed and Revised in the Early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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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명황계감( ) 은 당( ) 현종( )이 양귀비( )의 미색에 탐닉하다가 정사를 등한시하고 국가를 패망의 지경에 이르게 했던 행태를 경계하기 위해 세종이 명찬한 전적으로, 그 내용에 의거하여 후일 자신이 직접 168장 분량의노랫말을 지어 붙이기도 하였다. 책의 실물은 전해지지 않다가 1970년대에야 일부 내용이 언해된 필사본 두 건이 발견되면서 명황계감 의 대략적인 실체를 추정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종래 논의들 역시 주로 필사본의 체계를 바탕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실전된 명황계감 의 본래 모습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미진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명황계감 의 원 체재와 내용이 어떠하였는지가 우선적으로 명확히 검토되지 않고서는 현전 필사본의 위상 또한 제대로 논의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각종 기록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세종대에 1차로편찬 완료된 명황계감 과 그 내용에 따라 세종이 친제한 노랫말의 체재를 추정하였다. 또한 세조대에 들어 종래의 명황계감 이 어떠한 의도와 방식으로 개찬되었는지에 대해서도 항목별로 논의하였다. 그 내역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세종대 박팽년( ) 등에 의해 처음 제작될 당시 명황계감 을 특징 짓는요소는 단연 그림과 그에 대한 해설격인 사적이었다. 그림이 주가 되고 사적이 종을 이루는 형상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 이는 세종16년에 간행된 삼강행실도 를연상케 하는 편찬 방식이다. - 이때의 사적은 자치통감( ) 의 기사를 중심으로 하면서 여타 전적을일부 발췌 활용하는 방식으로 선별되었으리라 추정된다. 한편, 각 사적의 말미에는 현종의 행적을 다룬 ‘선유( )의 논’을 가려 뽑아 싣는가 하면, 현종의 일화를 바탕으로 지은 ‘고금( )의 시’까지도 수록하여 내용을 보다 풍부하게 드러내고자 하였다. ‘선유의 논’은 대개 호인, 범조우 등 중국 제가의 사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고금의 시’ 가운데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이규보( )의 <개원천보영사시( )> 41수인데, 41수 중 현종의 실행을 경계하거나 비판적으로 회고한 작품들이 주로 초출되었던 정황이 나타난다. - 세종이 명황계감 의 내용에 의거하여 친제했다는 168장 분량의 가사는 한문으로 지어졌으며, 그 내용은 현종의 사적을 대우로 엮어 서술한 부분과 감계를 영탄의 방식으로 표출한 부분으로 대별할 수 있다. <용비어천가( )> 제3109장까지의 내용에 상당하는 전자는 현종의 사적을 순차적으로 서술하면서 통사구조로만 대우를 구성하는 방식, 즉 언대( )를 위주로 하였으리라 보이는데, 이러한 작법은 <월인천강지곡( )>과도 상통한다. 한편, <용비어천가>의무망장( )(제110 124장)을 연상케 하는 후자는 앞서 나온 현종의 사적을 한차례 정리하면서 그 핵심을 들어 후왕을 경계하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용비어천가>와의 이 같은 친연성을 고려한다면, 어제 가사의 시형도 역시 앞부분은 4언 4구의 연첩, 뒷부분은 5언 3구의 연첩이었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 세조대의 개찬 과정에서 명황계감 의 체재가 다소간 변개된다. 그림에 대한언급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 대신, 세종의 친제 가사가 가장 중요한 위치로 올라서고, 사적은 오히려 가사에 종속되는 형상으로 비중이 재조정된 것이다. 이러한 체재는 용비어천가 나 월인석보 와 유사한데, 특히 월인석보 와는 제작 순서상으로도 그 친연성이 뚜렷하다. 세조대에 이루어진 일련의 개찬 작업은 이렇게 가사와 사적이 합편된 형태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 세조대의 개찬은 사적에 주석을 다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최항 등은 일차적으로는 세종의 어제 가사와 연관된 사적, 즉 노랫말을 해설하는 성격을 지닌 사적들을 보수하되, 노랫말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내용들 역시도 개재하여 현종의언행을 보다 풍부하게 전달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수록한 사적의 주요 어구나 글자에 음훈을 달아 알아보기 쉽게 하였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이러한 방식은 용비어천가 , 석보상절( ) , 월인석보( ) 에서도 폭넓게 발견되는 것으로서, 특히 용비어천가 의 주해를 최항이 주관하여 수록하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명황계감 에도 그 같은 방식이 준용되었을 개연성이 더욱 높아진다. - 언해( )는 사적을 확충하고 주석을 삽입하는 작업과 함께 이루어졌다. 이때 최항( )은 한편으로는 증수 작업을 지속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언해까지관할하면서 명황계감 전반의 개찬을 담임하게 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언해는처음에는 명황계감 의 사적 및 주석 부분에만 한정되었다가, 이내 세종의 어제가사를 번역하는 단계로까지 진전된다. 세조는 특히 가사를 언해하는 데 주요 총신들을 다수 동원할 만큼 상당한 공을 들였다. 세종이 찬한 가사가 <용비어천가>의 한문가사에 상당하는 형식이었다면, 번역 시가의 형식은 응당 <용비어천가>의국문가사와 같았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다만, 세종의 가사는 한문과 국문 공히현전하지 않아서 자세한 사정을 살피기가 어렵다.

Abstract

In this thesis I have studied Myeonghwanggyegam( ) and its contentcomposed during King Sejong’s reign, and have made a presumption of the form of thelyrics composed by Sejong himself. I have also discussed how Myeonghwanggyegamwas revised during King Sejo’s period. - When Myeonghwanggyegam was first composed by those scholars such as ParkPaengnyeon( ) during King Sejong’s period, illustrations and historical events wereregarded as most important, which style is the same as was employed for makingSamganghaengsildo( ). - Historical events of those times were mainly excerpted from Zizhi Tongjian(), and at the end of each event are the comment from previous historians and poetryof Confucian scholars. Among the poems, in particular, are the ones written by YiGyubo( ), many of which criticize Emperor Xuanzong( ) for his inconsistencyin speech and action. - King Sejong’s lyrics are written in Chinese characters, and the content can bedivided into two parts: one describing Emperor Xuanzong’s achievements and misdeedswith the words arranged in a parallel way, the other some kind of warning expressedthrough exclamations. Such style is similar to Yongbieocheonga( )’s, and thelyrics are also presumably similar to Yongbieocheonga’s. -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 Myeonghwanggyegam was revised, thus its stylewent through some transformation. The lyrics written by Sejong were considered mostimportant, whereas historical events were regarded as subordinate to the lyrics. The same can be said about Yongbieocheonga and Wolinseokbo( ), which was composedaround the same period. The revisions made during Sejo’s period were based upon acombination of lyrics and historical events. - Revisions started from adding footnotes to historical events. Scholars such as ChoeHang( ) added historical events associated with Sejong’s lyrics. They also addedsome events seemingly irrelevant to lyrics, with an aim to reveal Emperor Xuanzong’swords and deeds. Such style is widely found in Yongbieocheonga, Seokbosangjeol(), and Wolinseokbo. - The translation of Myeonghwanggyegam was carried out along with the addition ofhistorical events and footnotes, for most of which Choe Hang was responsible. At earlierstages, only historical events and footnotes were translated, but lyrics were alsotranslated later. The form of the translated lyrics is assumed to have been the same as that of Yongbieocheonga’s Korean lyr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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