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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대 편찬물 체재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 -『삼강행실도』 ⋅『명황계감』⋅『용비어천가』⋅『월인석보』의 체재를 중심으로 –

The Correlation of the Publications Produced in the Reign of King Sej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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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본고에서는 『삼강행실도』⋅『명황계감』⋅『용비어천가』⋅『월인석보』가 지닌 체재상의 특징을 개관하고, 편찬물들 상호간의 상관성 내지 영향 관계를 분석하였다. 『삼강행실도』는 그림과 해설로 짜인 구성의 선례를 제공했다는 의의가 있다. 백성들에게 삼강의 덕목을 홍포할 목적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그림을 통해 내용을 인상 깊게 전달한 후 관련 사적을 한문으로 풀이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왕실 후손을 경계하기 위해 지은 『명황계감』에서는 그 같은 『삼강행실도』의 체재가 준용되었으며, 문건 제작에 수양대군이 깊이 관여하였다. 세종은 백성 들에게 소용되는 삼강행실도와 왕실 후손들을 위한 명황계감의 쌍을 상정 하여 상호 동일한 체재를 갖추고자 의도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창업의 위업을 공식화하기 위해 제작한 『용비어천가』는 노랫말만 존재하던 단계에서는 『삼강행실도』 및 『명황계감』과 별반 관련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세종은 이내 노랫말 각 장에 일일이 해설을 달아 풀이하도록 지시한다. 이러한 개편 체재는 『삼강행실도』⋅『명황계감』에서 그림이 차지하던 위치에 노랫말이 대신 들어간 형상이다. 한편, 소헌왕후를 추천할 목적으로 편찬한 석 보상절은 명황계감과 마찬가지로 왕실 내부의 문제에 관계되는 문건인 만큼 그 제작에도 역시 수양대군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내용상으로도 명황계감과 석보상절은 각각 당 현종과 석가모니라는 단일 인물의 행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친연성이 있다. 『용비어천가』는 상기의 편찬물들을 확대하거나 새로운 편찬물의 제작을 추 동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세종은 이미 편찬이 완료된 명황계감의 내용을 바탕으로 168장에 달하는 장편의 노랫말을 지어 내었는데 각 장이 대우로 짜여 있다거나 감계를 영탄으로 드러내었다는 설명으로 미루어 용비어천가 한문 가사의 형식을 활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유사한 작업은 석보상절에 대 해서도 이루어진다. 세종은 석보상절을 받아 보고서 그 내용에 의거하여 곧 583장 규모의 『월인천강지곡』을 지었으며 이때에는 『용비어천가』 국문가사의 형식을 활용하였다. 이들 노랫말은 세종대까지는 별도로 존재하였다가 세조대 에 들어 노랫말이 원 전적과 합편된다. 이때의 합편은 용비어천가의 체재를 재현하는 양상으로 귀결되어, 『삼강행실도』⋅『명황계감』⋅『용비어천가』⋅『월인석보』의 체재가 기본적으로 동일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편, 세조는 『삼강행실도』나 『용비어천가』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반면 명 황계감을 개편하고 『월인석보』를 제작하는 데에는 진력하는데, 이는 자신이 처음부터 두 문건의 편찬에 관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교롭게도 이들 두 문건을 바탕으로 세종이 직접 노랫말을 지어 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업과 부왕 의 작업을 한데 합침으로써 세종의 유지가 자신에게로 이어진다는 뜻을 공고하 게 드러내기 위한 의도가 간취된다. 아울러 세조는 합편한 전적을 온전히 국문 화하려는 가외의 시도도 하였다. 이는,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의 사례에 서처럼 국문으로써도 만족할 만한 문건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이면 서, 국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의도를 현창하려는 의지가 개입된 결과로도 해석된다.

Abstract

Yongbieocheonga, which was produced to Justify the establishment of Joseon dynasty, did not have any relation with Samganghaengsildo or Myeonghwanggyegam in the beginning when only its lyrics existed. However, King Sejong promptly instructed Choe Hang to give a commentary on each verse of the lyrics. Through this reorganization, in the place where the pictures occupied in Samganghaengsildo and Myeonghwanggyegam, lyrics were substituted in Yongbieocheonga. Seokbosangjeol(釋譜詳節), compiled to commemorate Queen Soheon(昭憲王后), is a document related to the internal problem of the royal family as well as Myeonghwanggyegam, so Prince Suyang also played an active role in its composition. In context, Myeonghwanggyegam and Seokbosangjeol are also similar to each other in that they deal with a single character: Emperor Xuanzong of Tang and Shakyamuni. Yongbieocheonga served as an opportunity for the above-mentioned compilations to be increased or new ones to be produced. Based on the contents of Myeonghwanggyegam, King Sejong composed 168-verse lyrics, using the form of the lyrics in Chinese characters of Yongbieocheonga. Similarly, based on the contents of Seokbosangjeol, he also composed 583-verse lyrics named Wolincheongangjigok, using the form of the lyrics in Korean vernacular of Yongbieocheonga. These lyrics, which had existed separately until the reign of King Sejong, were integrated into the original texts in the reign of King Sejo. Such reorganizations resulted in a pattern of reproducing the style of Yongbieocheonga, leading to the result that the formats of Yongbieocheonga, Myeonghwanggyegam and Wolinseokbo are basically the same. King Sejo intended to reveal the meaning of his father King Sejong’s continuity to himself by combining his work with that of his father’s. Besides, King Sejo made extra efforts to translate all the combined works into Korean vernacular as well. He was confident that satisfactory documents could be made in Korean vernacular as in the case of Seokbosangjeol and Wolincheongangjigok. It is also understood that he actively used Korean vernacular to praise King Sejong’s intention to newly create the Hunminjeongeum(訓民正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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