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字資料로 본 新羅王京
Silla’s “Monarch Capital” from the Perspective of Letter Mater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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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문헌자료가 아닌 문자자료를 통해 신라 왕경의 모습을 그려본 것이다. 신라 금석문, 목간, 고문서를 주요 자료로 활용하였으며, 고려 초의 자료도 부분적으로 이용하였다. 문자자료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같은 체계적인 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일정한 한계는 있지만, 신라 당대 자료의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았다. 먼저 신라 수도의 호칭은 20종 정도의 용례가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京’자를 사용한 것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都’ ‘城’ ‘邑’ 등의 글자를 사용하여 수도임을 나타내었다. 지명의 앞뒤에 ‘京’자나 ‘都’자를 붙이거나, ‘某城’ 또는 ‘某邑’이라 한 것이다. 따라서 京, 都, 城, 邑 4자가 수도를 나타내는 글자로서 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王都와 王城, 金京과 金城처럼 ‘王’자나 ‘金’자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한편, 이들 명칭이 사용된 시기별 분포를 살핀 결과, 신라만의 독특한 표기가 나타나지 않았다. 더욱이 문헌자료에 흔히 보이는 ‘京城’이나 ‘王京’ 이란 용어가 신라 당시의 자료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왕경의 행정구역에는 6部와 里, 坊이 있었다. 또한 산, 계곡, 숲과 같은 자연환경과 함께, 산성, 우물, 정자, 田莊, 금입택, 와요지 등의 인공적인 시설도 존재하였다. 궁궐의 호칭으로 20여 종이 사용되었으나, 某宮으로 쓴 경우와 某闕로 쓴 경우가 많았다. ‘宮’ 또는 ‘闕’이 일반적인 표기였던 것이다. 주요 전각으로 蘭殿과 祕殿, 思正堂 등이 있었고, 궁문으로는 北宜門, 隅宮 北門과 西門, 東門, 開義門, 策事門, 思易門 등이 있었다. 北宜門은 思正堂의 문이었다. 사정당에는 남북 또는 동서남북의 4방에 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큰 전각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신라의 핵심 4部인 집사부, 병부, 예부, 창부가 모두 나타났으며, 내성 및 동궁관 산하의 일부 내정관부도 확인하였다. 또한 砲石’ 명문기와를 통해서는 남산 주변 절경지에 포석정과 같은 亭子가 여럿 존재함을 밝혔다. 사찰의 검토에서는 문헌에 없는 다수의 사찰명이 확인되었다. 특히 진흥왕대의 實際寺와 신덕왕대의 實際寺가 다르다는 사실, 鵠寺였던 崇福寺가 고려 초에 다시 鵠寺로 불렸다는 사실, 그리고 황복사 비편에서 봉덕사, 봉성사의 처음 이름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감은사나 영묘사, 흥륜사의 처음 명칭도 밝힐 수 있었다. 나아가 芬皇寺의 명칭을 ‘芬王’으로 표기한 것, 皇福寺의 명칭을 ‘王福’으로 표기한 것, 그리고 皇龍寺를 ‘[皇/王]籠寺’로 표기한 것 등의 사례에서, ‘皇’자나 ‘龍’자의 사용에 어떤 제약이 있은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Abstract
This study depicts the picture of Silla’s “monarch capital” not in terms of text materials but of letter materials. It makes use of epigraphs, wooden tablets, and duplicated materials of the Buddhist scriptures in the Silla period as the main research sources as well as some materials of the succeeding Goryeo period. Although unlike such historical texts as Samguk sagi (Historical Records of the Three Kingdoms) and Samguk yusa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letter materials have significant limitations to be used, they assume importance as Silla’s contemporary source materials. This study gives some 20 examples as the name of the Silla capital. The name used the character “gyeong(京)” most and then characters “do(都)” “seong(城,)” and “eup(邑).” It was usual that the character “gyeong” was used as a suffix and the character “do” was added as a prefix. Otherwise, “mo-seong” and “mo-eup” were used. Also, like the names “Wangdo(王都),” “Wangseong(王城),” “Geumgyeong(金京),” and “Geumseong(金城),” characters “wang(王)” and “geum(金)” were used. As a result of analyzing the periodic distribution, there is no evidence that only Silla used its own specific expressions. Furthermore., it is remarkable that the terms “Gyeongseong(京城)” and “Wangseong(王京)” that are frequently described in text materials do not appear in Silla’s contemporary source materials. The administrative precinct of the monarch capital contained six bu, ri, and bang. It also included such natural environment as mountains, valleys, forests, as well as such artificial facilities as mountain fortresses, wells, pavilions, farms, palatial mansions, and reservoirs. This study confirms more than 20 instances of the name of the palace in the monarch capital. Among them, “mo-gung(某宮)” and “mo-gyeol(某闕)” appear most frequently, which means that they were generally used to indicate monarch’s residence. Within the palace were lots of many-storied buildings and gates. Especially, the Sajeong-dang was a large building that had gates to the east and west or north, south, east, and west. The Jipsa-bu, Byeong-bu, Ye-bu, and Chang-bu, Silla's essential administrative agencies, were all located within or without the palace in the monarch capital. This study also identifies the existence of several pavilions, specifically the Poseokjeong (resort), in the scenic places close to Namsan (mountain). This study confirms the names of a lot of Buddhist temples that text materials deleted. In particular, it suggests that the Silje-sa (temple) in the reign of King Jinheung was different from that in the reign of King Sindeok and that the Sungbok-sa was renamed the Gok-sa in the early Goryeo period. It also confirms first names of the Bongdeok-sa and Bongseong-sa from the broken monument of the Hwangbok-sa. Finally, as evidenced by the fact that the Bunhwang-sa was described as Bunwang-sa, Hwangbok-sa as Wangbok-sa, and Hwangryong-sa as Hwangrong-sa or Wangrong-sa, this study conjures that the Silla kingdom might impose restrictions on the use of characters “hwang(皇)” and “ryong(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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