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국병합을 즈음한 '일본관광단'과 그 성격
Tourist Party to Japan' and it's Character in the Period of Annexation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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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초록
본고는 1909년과 1910년 사이에 한국에서 일본을 방문한 ‘일본관광단’ 행사를, 일본의 한국병합이 구체적 일정에 오르는 시기에 있어서 한국인을 친일의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회유책의 일환으로서 분석한 것이다. - 69 - 1909년 4월 경성일보사는 ‘일본관광단’을 모집해 94명의 한국인을 한달 간 일본 관광시켰다. 통감부와의 협의를 통해 추진되었을 이 관광단 행사에서 주최측이 노린 것은 ‘한일융합’의 달성이었다. 주최측이 관광단에게 보여준 일본은 제철소․군수공장․방적공장 등으로 대표되는 근대문명과, 고도(古都) 교토(京都)․나라(奈良)의 사적들로 대표되는 일본의 역사 문화로, 이는 관광단의 정신을 압도하였다. 아울러 방문하는 각지에서 벌어진 대규모의 환영행사는 관광단에게 깊은 감명을 안겨 주었다. 다음으로 그 1년 뒤인 1910년 4월에 경성일보사는 제2회 ‘일본관광단’을 모집하였다. 한국인 44명-대부분이 실업가-이 참가한 이번 관광단은 후쿠오카(福岡)와 나고야(名古屋) 공진회(共進會)를 참관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이 관광에 참가한 박기순은 구레(吳)항에서 해군 군수공장을 견학하고 “혼백이 자빠지고 신이 놀랄만하다”고 감탄하는 반면 한국의 초라한 현실을 한탄했다. 이 관광단을 전후해서 ‘관광단’의 이름이 붙은 일본관광은 전국 각지에서 이루어졌다. 마지막으로 일본이 한국병합을 단행한 이후에도 1910년 10월에 ‘조선귀족관광단’이 일본을 방문하여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이는 한국병합 후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조선귀족’이 일본 천황에게 사은(謝恩)의 뜻을 표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졌다. 총독부에서 비용 전액을 부담한 ‘조선귀족관광단’의 한 특색은 귀족 부인과 상궁들, 즉 여성이 다수 참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천황 알현을 비롯, 일본 황실의 인사들을 차례로 표경 방문하고 명소 관광을 즐겼다. 요컨대 ‘일본관광단’ 행사는 지도적 위치에 있는 한국인에게 일본의 발전상을 직접 보여주어 일본에 대한 심리적 의지를 끌어냄으로써, 일본의 한국병합 과정에서 한국 측의 협조를 유도해내기 위한 행사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