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체제기 인천지역 학생 노동력 동원
Mobilization of Incheon Students’ Labor under National Total Motivation System of Japan’s Colonial Rule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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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일제의 '국가총동원체제' 하에서, 학생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대신하여 집단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층으로 주목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전시노동력동원정책 차원에서 학교 단위로 학생들을 동원하였다. 이는 노동을 천시하는 조선인의 폐습을 벗어난 '황국신민'을 양성하는 교육의 일환으로 합리화되었다. 초반에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10일 전후로 동원되었지만, 동원기간은 점차 1년에 30일, 4개월 등으로 늘어났다. 농번기 등 집중적인 노동력 동원이 필요한 시기에는 학기 중에도 일하게 하였다. 학교근로보국대 단위로 식량생산, 토목공사 등에 동원되었는데, 인천부 지역의 학생들은 주로 주안 염전, 토목공사장에 동원되었다. 1944년에 들어서 동원정책은 강화되어 학생들은 1년 내내 동원되게 되었고, 「학도근로령」이 실시되었다. 학생들의 학습권은 무시되었으나, 노동이 곧 교육이며, 공장이 곧 학교라는 논리로 강요하였다. 인천 지역 중등학교 학생들은 인천육군조병창, 조선기계제작소 등으로 동원되었다. 국민 학교 학생들도 인천신사 확장공사, 송탄유와 퇴비 증산을 위한 재료 채집 등에 동원되었다. 인천지역 학생 동원은 경기도 단위의 동원계획 속에서 실행되었다. 경기도는 다른 지역보다 정책 실행에 앞장서고 있었는데, 인천조병창 동원은 모범적인 사례로 선전되기도 하였다. 또한 인천지역 학생은 상대적으로 공장이나 인근 작업장에 동원된 경우가 많았다.
Abstract
Under ‘national total mobilization system’ of Japan’s colonialrule of Korea, students was a class to mobilize collectively instead of poor labor. The government-general in colonial Korea mobilized students by each school unit in the level of war labor motivation policy. It was rationalized as a part of education raising ‘Imperial subject’ escaping from evil customs of Joseon people disregarding labor. In the early wartime system, students were mobilized before/after 10day in vacation, and the mobilization period was increased from 30 days a year to four months a day. When mobilization of intensive labor such as the farmers’ busy season was necessary, they made students work even in semester. Students were mobilized for food production and public works by each school Labor Patriotism Corps. Most of students in Incheon were mobilized for saltpan and public works. In 1944, mobilization policy was strengthened. Students were mobilized continuously all through one year and [Student Labor Ordinance] was carried out. The right of students for learning was disregarded. They forced it with logic of ‘Labor is just education and a factory is just a school’. Middle school students in Incheon were mobilized to Incheon Military Arsenal and Joseon Machinery shop. Elementary school students were also mobilized for extension works of Incheon shrine and material collection to increase pine oil and compost. Mobilization of students in Incheon was carried out under mobilization plan of Gyeonggido. Gyeonggido took more initiative in execution of the policy than other areas. Mobilization of Incheon arsenal was propagated as a model case. Most of students in Incheon were relatively mobilized to factories or neighboring workpla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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