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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경기 화승 집단의 형성 배경 연구

A Study on the Formation Background of Monk-Painters Group in Gyeonggi Province in the 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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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근기지역에 승려가 증가하게 된 것은 17세기에 축조한 남한산성에 이어 18세기 북한산성을 축조한 후 수직을 위해 시행한 승려의 군역인 의승역과 관계가 깊다. 의승의 역할이 남북한산성의 수직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에서 발생하는 각종 잡역과 별역을 대응하기 때문이다. 즉 의승은 군역과 함께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지방에서 의승을 선출할 때 화승과 같은 승려 장인들을 함께 포함시켰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영조32년인 1756년 반포된 「남북한산성의승방번변통절목」에 의해 남북한산성 수직 의승을 고용하였고, 지방 사찰에서는고용된 고승에 대한 비용을 납세하게 되었다. 고용되어 입번한 의승 중 포함된 화승 또한 이로 인해 장기간 정착하게 되었을 것이다. 의승방번전제 시행 후 타지역에서 남북한산성 의승으로 이동한 화승은 장기간 머물렀기 때문에 남한산성 내원거승이나 경기지역 내 원 거주 화승들과 함께 집단을 이루어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들이 집단을 이루어 활동하게 된 계기는 산릉역과 영건역 등 국가 공역을 함께 수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렇게 성립된 관계가 이후 각 화승들이 문중의 원지역 불사에 참여할 때 기존 경기 화승들과 집단을 이루어 함께 활동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이후 1788년 남장사괘불 조성에서 기록된 ‘경성양공’이라는 화승 집단의 명칭으로 타 지역 불사에 참여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와 같이 본 연구에서는 18세기 의승역과 의승방번전제 시행이라는 사회적 변화에 의해 경기 화승이 원거 화승과 의승 화승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집단을 이루었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이는 경기화승이 기존에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화승이라는 연구에서 확장하여 여러 지역의 개성을 가진 화승들이 경기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융합되어 새롭게 변화하고, 타지역과 교류하였을 것이라는 새로운생각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Abstract

The increase in the number of monks in outskirts of Seoul(近機) in the 18th century is closely related to the military service of monks who built Bukhansanseong Fortress in the 18th century after building it in the 17th century. This is because the role of Buddhist army not only protects the Bukhansanseong Fortress and Namhansanseong Fortress , but also responds to various miscellaneous service and extra corvee Labor services occurring in nearby areas. In other words, since Buddhist army has to play various roles along with military service, it is thought that monk craftsmen such as monk painters were included in the transfer of Uiseung from the province. Later, in 1756, in the 32nd year of King Yeongjo's reign, the guardian monk of the fortress was hired by the "Seungbangbeonbyeonjeolmok(南北漢山城義僧防番 變通節目)" of the fortress, and local temples paid for the hired monks. Monk painters, which was included in the employment and participation of the Buddhist army, would also have settled for a long time. After the implementation of the Monk-Guard Obligations and Responsibilities Manual(義 僧防番錢制), monk painters, who moved from other regions to Nambukhansanseong Fortress, stayed for a long time, so it is estimated that he worked in groups with monks who originally lived in Nambukhansanseong Fortress or Gyeonggi Province. In particular, the opportunity for them to work as a group was naturally achieved by performing national services such as Royal tomb and Palace construction together. In addition, the relationship established in this way would have served as an opportunity for each monk painters to work together with the existing monk painters in Gyeonggi Province when they participated in the Buddhist service in the original area of the clan. This form is the name of the monk painters group called Gyeongseong Yanggong(京成良工), which was later recorded in the creation of the Namjangsa Gwaebul(南長寺 掛佛) in 1788, and is considered not to be irrelevant to participating in Buddhist activities in other regions. In this study, I suggest that Gyeonggi monk painters formed a new type of group that combines monk painters originally lived and Buddhist army’ painters by social changes such as the implementation of the monk military services and the Monk-Guard Obligations and Responsibilities Manual in 18th century. This is considered important in that it expanded from the study that Gyeonggi monk painters was previously formed around the region, suggesting a new idea that the unique monk painters of various regions would have converged around the region of Gyeonggi, changed, and interacted with other reg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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