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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무늬와당으로 본 광개토왕릉 비정

Deciding the royal tomb of King Gwangae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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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릉은 어느 것인지를 비정하였다. 연구방식은 고구려 왕릉출토 연꽃무늬와당을 비교검토하였다. 검토결과, 첫째로 천추총출토 6엽 연꽃무늬와당의 제작연대를 광개토왕 시기로 도출해냈다. 그 근거로서 천추총출토 ‘永樂’명 기와를 제시하였다. 영락은 광개토왕이 생전에 시행한 연호이다. 광개토왕은 정미년(407년)에 선대왕릉에 마지막 개ㆍ보수행사를 시행했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때 ‘永樂’명 기와와 함께 올려진 것이 천추총출토 6엽 연꽃무늬와당이었다. 따라서 천추총의 피장자를 광개토왕의 先代 왕으로 해석하였다. 둘째로, 태왕릉출토 6엽 연꽃무늬와당 B형의 제작시기를 도출하였다. 그 시기는 광개토왕 대라고 해석하였다. 그 근거로서 천추총출토 6엽 연꽃무늬와당과의 유사성을 제시하여 양자를 동일 시기로 파악하였다. (광개토왕은) 태왕릉 축조와 비슷한 시기에 천추총에 대한 개ㆍ보수 공사를 시행하면서 와당을 제작하였다. 이것이천추총출토 6엽 연꽃무늬와당이다. 태왕릉의 주인공은 광개토왕이 아닐 가능성을 말하는 물적 증거가 된다. 셋째로, 장군총출토 8엽 연꽃무늬와당의 제작연대를 도출하였다. 그 근거로서 태왕릉출토 8엽 연꽃무늬와당과의 유사성을 제시하여 양자를 동일 시기로 파악하였다.(장수왕은)장군총축조와 비슷한 시기에 태왕릉에 대한 개ㆍ보수 공사를 시행하면서 와당을 제작하였다. 이것이 태왕릉출토 8엽 연꽃무늬와당 C형이다. 따라서와당의 제작연대는 장수왕 시기로 해석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광개토왕의 무덤을 장군총으로 비정하게 되었다. 그럴 경우 태왕릉은 고국양왕릉이 될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was conducted to identify the tomb of Gwanggaeto the Great. I have examined such subject by comparing roof-end tiles with lotus petal pattern exC-avated from the C-andidate royal tombs. The result is as follows. First, I have interpreted the production date of six-layered lotus petal pattern roof-end tiles, which was uncovered from Cheonchu grave, as during the time of Yongrak, an era name of Gwanggaeto the Great. A more detailed analysis has generated the exact period as A.D 407, the 17th year of Yongrak. King Gwanggaeto has executed the final maintenance work for his predecessors’ burial site, and the aforementioned lotus pattern was drawn into Chunchu grave and Taewang Tomb(B-type). Thus, it is clear that the owner of the Chunch grave must be the predecessor king. Second, I have derived the production date of Taewang Tomb’s six-layered lotus petal pattern roof-end tiles. It is believed that the period is during Yongrak era name, cirC-a-A.D. 407 to be exact, which fact indeed proves that the buried monarch within Taewang tomb is obviously not king Gwanggaeto. Third, I have also deduced the production date of eight-layered lotus petal pattern roof-end tiles from the General’s Grave, which result demonstrates that the time is none other than during king Jangsu’s reign. Therefore, it is the conclusion of this article that the actual tomb of Gwanggaeto the Great is the General’s Grave, which in turn makes Taewang Tomb belong to king Kogukyang, Gwanggaeto’s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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