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祖代 貞聖王后 國恤의 성격과 의미
The Feature and Meaning about the national funeral of Queen Jeong-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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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貞聖王后의 국휼은 18세기 왕실의 竝有喪에 따른 變禮 논의와 內喪在先 의례의 정비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먼저, 仁元王后의 국휼과 동시에 치러지는 병유상의 상황에서 정성왕후 국휼 절차는 복잡하게 진행되었다. 卒哭은 吉祭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인원왕후 졸곡 이후로 미뤄지게 되었다. 練祭의 경우도 主喪者인 영조가 練服을 착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했다. 또한 상례를 마무리하는 禫祭는 담담하고 평안함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인원왕후 상중에는 치를 수 없다고 인식되었다. 이러한 논의들은 조선 사대부들의 병유상에 대한 예학적 성찰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정성왕후의 국휼은 내상재선에서 왕과 세자의 지위와 역할이 재정비되는 계기가 되었다. 1752년본 『國朝喪禮補編』에서 이미 왕의 자최장기복과 친행 의례가 새롭게 규정되었는데, 정성왕후 국휼을 통해 다시 수정·보완된 형태로 1758년본 『국조상례보편』에 수록되었다. 妻喪에서 三年之體의 의미가 강조되면서, 왕의 상복에서도 자최장기의 형식이 그대로 구현될 수 있었다. 또한 왕의 주상자로서의 지위를 명확히 하면서 세자의 행례는 攝行으로 엄격히 구분하였다. 동시에 처상의 의절이라는 점에서 尊卑에 따른 차등을 세밀하게 규정하면서 예의 원리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또한 세자가 아들로서의 情理를 드러내는 心喪과 관련된 의례의 정비도 이루어졌다. 담제 이후에도 세자의 심상을 고려하여 魂殿의 의례를 시행할 때 淡黑袍를 착용하도록 하였다. 음악의 사용과 관련해서도 『국조오례의』의 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과 심상 중에는 합당하지 않다는 주장이 대립했다. 영조는 논점을 전환하여 혼전에서는 아예 음악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국조상례보편』의 예학적 완결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Abstract
The national funeral of Queen Jeong-Seong is the important example of the discussion about duplicated funerals and the formality about Queen's funeral earlier than king's. In case of duplicated funerals, Jolgock of Queen Jeong-Seong had been postponed after Jolgock of Queen In-Won who was mother-in-law, and damche was abolished. These discussions were reflected in the academic Achievement of Scholar-officials in Chosun Dynasty. the formality about Queen's funeral earlier than king's in Gukjo-Sangryebopyeon published in 1752 was modified through the funeral of Queen Jeong-Seong and Gukjo-Sangryebopyeon was republished in 1758. King young-jo wanted to implement 1year mourning with stick and to be the Host of Funeral instead of his son, the crown prince. On the other hand, it was prescribed that the crown prince wore in liight black in honjeon to consider his in-mind mourning. Also there was a debate about whether music could be played in honjeon. King young-jo made a decision not to play music different from the regulations of Gugjo-Oryeui, because honjeon was the space of fu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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