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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原州지역의 환곡문제와 농민항쟁

The Abuses of Hwangok and The Peasant protest in the 19th century Won-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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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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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9세기 지방재정의 문제, 특히 還穀운영의 문제, 在地세력간의 갈등 등이 원주농민항쟁에 미친 영향과 원주농민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19세기는 민란의 시대라고 불릴 만큼 부세문제, 잡세수탈, 외세침탈 등으로 민란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원주지역에서도 還穀의 문제로 1885년 민란이 발생하였다. 원주지역은 監營과 原州牧의 환곡이 혼용되고 있어서 많은 문제점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폐단에 대한 지적만 있었지 농민들에 의한 봉기 등 심각한 문제는 없었다. 원주지역의 환곡문제가 표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것은 1880년대 들어서면서 부터였다. 원주지역의 환곡문제는 주로 상품화폐경제를 바탕으로 해서 일어났다. 원주지역은 상주하는 인구가 많았으며, 陸運과 船運이 발달해 있었고, 감영을 상대로 하는 수공업이 발달해 있었다. 이러한조건으로 원주지역에 場市가 많이 설치되었으며, 상품화폐경제가 발달되어 있었다. 또한 감영의 公用을 위해 作錢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환곡의 운영상 상품화폐경제의 방식이 많이 이용되었으며 이에 따른 문제점도 많았다. 특히 많이 지적되었던 방식은 錢還의 방식이었다. 이 전환은 원주농민항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원주농민항쟁은 전개과정 속에서 재지사족과 이서층의 갈등이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는 양반층에 못지않게 이서층의 성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원주지역의 양반사회는 한양에서 이거해온 사대부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강원도의 수부로 교육여건이 좋고, 한양과가까워서 한양으로의 진출이 용이한 원주지역으로 낙향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급변하는 신분제 해체과정 속에서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동족마을을 형성하고, 서로간에 통혼권을 형성하여 문제가 발생하면 공동으로 대처하였다. 이서층의 경우는 감영이 留營체제로 변화하면서 그 역할과 권한이 강화되었다. 즉 감영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원주지역 양반과 길항관계에 있었는데, 私賤출신의 황무진 사우를 둘러싼 갈등은 그 한 예가 된다. 원주농민항쟁 당시 적극적으로 兩班家를공격하였던 사실 또한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설명된다. 원주농민항쟁은 北倉과 台場에 일어나고 있었다. 북창지역은 관동대로를 통해 원주로 들어오는입구에 위치한 곳으로써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한 지역으로 이서에 의한 환곡 포흠이 매우 용이한 곳이었다. 그리하여 北倉色 南聖甲은 收捧시에는 時價로, 分給시에는 상정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분급함으로써 이익을 챙겼다. 이에 여주에서의 봉기소식을 들은 북창소속 면민들은 수봉할 때와 분급할때의 斗斛을 일치시킬 것을 요구하면서 봉기하였다. 이들의 요구는 남성갑이 죽임을 당함으로써 이루어 질 수 있었다. 북창에서의 성과는 빠르게 다른 면으로 전해졌다. 그리하여 邑內 司倉 소속 읍민들도 民會를 개최하여 환곡의 폐단을 시정하고자 하였다. 이 때 그들은 收捧과 分給시에 동일한斗斛으로 할 것과 궁극적으로 ‘臥還取耗’를 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서들에 의해서 진압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이서들이 읍민들을 탄압할 수 있었던 것은 원주가 감영이 있는 지역임과 동시에 군사적인 요충지로써 中營이 존재하였기 때문이었다. 中營에는 상당수의 상비군이 존재하였고,이들의 동원에 이서들이 간여하였던 것이다. 비록 원주농민항쟁은 진압 당하였지만, 그들의 요구를감영에서 받아들여 환곡을 공정하게 분급하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원주농민항쟁은 다수의 양반유생들이 원주유민품목을 작성하여 봉건정부에 대해 집단적으로 대항하고 있었는데, 이는 당시 농민항쟁에서 보기 힘든 것으로 원주농민항쟁만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원주농민항쟁을 주도하였던 연안김씨가는 10년 후인 1895년 원주 안창(북창)에서 거의하였던 을미의병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특히 북창봉기에서 소장을 작성하였던 김택수와 원주유민품목 작성을 주도하였던 김관수는 이춘영 의병장의 처삼촌이었으며, 김사정, 김사두 등은 원주소모장으로 의병부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원주농민항쟁을 이끌었던 조직력과 투쟁의식이그대로 남아 을미의병의 봉기에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Abstract

From 1876 opening of the port to the foreign trade to the 1894peasant war was period of magnifying contradiction and adding invasion of the outside influence to the latter period of Choson dynasty.(朝鮮後期) Therefore during the period of developing product circulation economy helped magnifying and strengthening the landed class also excessive heaviness of feudalistic tax plundering was helping the peasant class to fall. This paper is proving with the fact the 1885's peasant protest that the Chon-hwan(錢還) problem which was all over the country and developing the 1862 Won-ju peasant protest to the 1894 peasant war with looking into the peasant protest subject movement. This paper have divided above in order to explain. In chapter 2 the paper is about the peasant protest attitude of discord movements and looking at it with the management of Government, which was growing the public officials and growing opponent power. And about opening and closing cereals loaning program(還穀) which was one of direct cause of peasant protest. The chapter 3 is about the starting of the peasant protest to right before it's becomeing of 1894 peasant war. With all the facts from the above proves that after the opening the port to the foreign influence have caused the fall of the stoping novels and growing the middle class. Also Won-ju peasant protest was the first uprising in Kang-won do(江原道) to try to stop or control the problem of country, which is Chon-hwan(錢還). During the peasant protest it's group and ritual shows that it is becoming in to the peasant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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