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 도학의 이념적 순정성과 감성의 문제
Cho Gwang-jo's Pure Conscience and Gri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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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조 사림의 영수이자 한국 도학의 태산북두로 평가되는 조광조는 지치주의라는 순수이념으로 절대적인 도덕정치를 펼치고자 하였던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철저한 이성주의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시 현실 정치에 임하여서는 군신간에 부자(父子)의 예로써 소통하여야 함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그것은 인간관계의 격의를 해체함으로써 객관적, 이성적 존재보다는 주관적, 정서적 존재로서 친밀한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또 스스로 애군(愛君), 우국(憂國)을 애부(愛父), 우가(憂家)의 감정으로써 실천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 주었다. 이러한 점은 그가 지향한 지치적 순수정치는 인간의 감성이 통하는 세상임을 의미한다. 또한 그는 기묘사화라는 정치적 폭거를 계기로 깊은 인간적 고뇌와 슬픔을 절감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견디지 못하는 아픔을 자연스런 감정 표현으로 숨기지 않았는데, 특히 능주에서 유배 이후의 생활과 종명 과정에서는 매우 인간적인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그의 슬픔은 단지 슬픔으로 끝나지 않았고 새로운 희망으로 승화되어 후세 사람들의 마음에 길이 살아 있게 되었다. 인간의 성정(性情) 문제에서 도학〔성리학〕은 정보다는 성을 강조하지만, 이성보다는 감정이나 정서를 중심으로 도학자의 삶을 살피는 것은 한 인간의 실존적 내면을 살피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Abstract
Cho Gwang-jo(趙光祖, 1482-1519) was the moralist who had the purest conscience and aimed the devoted politics among many fellow Confucianists of Chosun Dynasty. He even criticized his teacher who was in his late forty years for not being able to control his emotions when he was just a teenager. That is to say, he was the one who have kept his cold reasons for entire life. Nevertheless, as mentioned before, Cho Gwang-jo was very faithful to his emotions and also very honest. We find that he was definitely emotional. He demanded to change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king and the courtier to the one between the father and the son with humane communication. He expressed his mind and emotion he had used to have at the moment of his death: he loved his king just as he loved his father. However, the king, Joongjong, was indifferent at the human's emotion as if he was a senseless figure. That was the saddest frustration and grief he had. However, his grief did not remained just as the mere grief but again survived as the hope for the survivors and descendants with the big echo. In this respect, his gried did not just end as the grief but it can be said that it even revived itself as the strength and courage. Then, Cho Gwang-jo's life as a human being was never a failure. Moreover, his grief and agony did not just remained as the vain emotion and sa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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