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하대 불교 정책의 변화와 사찰의 대응 - 이차돈 이야기 창작의 역사적 배경
Inventing the Image of the Marvelous Sanctuary of Baengnyulsa (栢栗寺) - Change of the Buddhism Policy in the 9thCentury and its Effect on the Buddhist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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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차돈에 관한 가장 빠른 시기의 기록은 817년에 만든 <백률사석당기>이고, 『삼국유사』에도 元和 연간(806-820)에 승려 일념이 쓴 <촉향분예불결사문>을 싣고 있다. 본고는 9세기에 들어 신라 불교계에서 왜 이차돈 이야기를 창작하고 결사 등의 행사를 열어 그를 기억하려 하였는지 그 배경을 추적한 글이다. 애장왕대(재위 801-809)를 전후한 시기에 이차돈을 비롯하여 아도, 안홍(안함), 원효, 의상, 경흥, 승전 등 신라에서 불교를 수용・공인하는 과정에서 공이 많았던 인물이나 정착 단계에서 덕망이 높았던 고승을 기념하는 비석들이 많이 제작되었다. 이들 고승을 주인공으로 하는 비들은 왕명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경우에도 주인공의 영험한 자취나 국가와의 연관성, 국왕의 칭송들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신라 하대 들어 조정은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갖추어가는 사찰 세력을 견제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9세기 전반 불교계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축소하였고, 사찰의 신축 금지, 사찰에서 비단・금은 사용 금지 등의 명령을 내렸다. 국왕은 불교 세력이 진골들과 결속하는 것을 막고자 하였던 것이다. 각종 금지 조치에 사찰에서는 대응책을 마련해야만 하였을 것이다. 승려들이 주도하여 국왕의 은덕을 칭송하고 사찰의 유구성과 영험함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창작하고 이를 결사 등을 통해 집단 기억화함으로써 사찰의 후원을 유도하였다. 이차돈 이야기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신이함이 더욱 강조된 형태로 널리 유포되게 되었다.
Abstract
The martyrdom of Lee Cha-don recorded in various texts such as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Samguk sagi 三國史記),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Samguk yusa 三國遺事) and Biographies of Eminent Korean Monks (Haedong goseungjeon 海東高僧傳) is always mentioned to explain how Buddhism was introduced and accommodated in the Silla dynasty. However, the earliest record about his martyrdom is “Record on the Stone Pillar of Baengnyulsa (栢栗寺石幢記)” in 817 (or 818). “Invitation to the Group of Worshipping Buddha at the Tomb of Yeomchok (髑香墳禮佛結社文)” in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is also written by Iillyeom (一念) during the years of Yuanhe (元和 806-820). That is, the image of Lee cha-don we all recognize today was created in the 9th century. Even though Lee cha-don was a real person and his martyrdom happened, why did people of Silla perform the practice and erect a stone pillar to commemorate Lee cha-don in the 9th century? This research is to analyze its historical background. After the reign of King Aejang (r. 801-809), many epitaphs for Silla’s eminent monks of Ado (阿道), Anheung (Anham 安含, ?-?), Wonhyo (元曉, 617-686), Uisang (義相, 625-702), Gyeongheung (憬興), Seungjeon (勝詮) as well as for Lee cha-don in the early period of accepting Buddhism were erected. The inscriptions on them commonly emphasize the monks’ connection with the ruler or dynasty, and their marvels. Even though “Record on the Stone Pillar of Baengnyulsa” was not written under the royal order, the record underlined the dignity of kings and the contribution of Buddhism in the process of unifying the Korean peninsula. On the other hands, Buddhism policy was strictly enforced in the reign of King Aejang, Heondeok and Heungdeok of the 9th century. In this point of view, it is assumed that Buddhist temples including Baengnyulsa put emphasis on the Lee cha-don’s marvel and Buddhist virtuous acts in the 9th century as an effort to save themselves under Silla’s tight policy on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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