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별산대놀이>를 중심으로 한 僧과장의 등장인물과 역사적 전개에 관한 小考
<楊州別山臺ノリ>を中心とする僧科場の登場人物と歴史的展開に関する小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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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연구는 <양주별산대놀이>에 등장하는 ‘중’들의 유형과 특성을 고찰하고 이들의 역사적 전개양상을 짚어보는데 있다. 이로써 <양주별산대놀이>의 성립배경인 산대 및 궁중 산대놀이와의 연관성을 밝히고자 한다. 양주별산대를 위시해 현전 산대놀이의 전통은 궁중 산대놀이를 답습한 것으로서 인조 즉위년(1623) 산대조설 폐지에 힘입은 바 크다. 산대조설 금지가 민간의 산대놀이패들을 탄생시키는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대놀이패 중에서 애오개(아현)산대놀이패는 <양주별산대놀이> 형성에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양주별산대놀이>는 중들의 출연이 특색을 이룬다. 대부분의 놀이마당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가면의 수도 과반수이상을 차지하는 까닭이다. 노장스님을 비롯하여 목중, 상좌, 옴중, 완보 등은 그 대표적 인물들이다. 무엇보다 양주산대 놀이마당 중에서 노장과장과 팔목중과장은 다른 과장들에 비해 세부적인 놀이들로 짜여져 <양주별산대놀이>의 극적 구성을 다채롭게 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 양주별산대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성격을 구축하기 위해 가면, 의상, 소품, 춤, 묵극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완보의 관과 꽹과리, 옴중의 벙거지와 막대기 및 제금에서와 같이, 소품과 의상 등이 등장인물 상호간의 극적 행동창출을 위한 동기를 부여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양주별산대놀이>에 중들의 등장이 현저한 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른바 ‘거사’ 및 ‘사당’이라 불리어졌던 무리들의 증가와 이들이 일삼았던 온갖 폐행들이 놀이로 승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현전하는 봉산탈춤 제3과장 사당춤에서 사당과 거사가 나와 놀량 사거리를 합창하는 장면 및 양주별산대의 애사당 법고놀이마당에 등장하는 애사당과 직결되는 이유이다. 즉 거사와 사당의 행보가 오늘날 가면극 놀이판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또 다른 요인으로 궁중 산대놀이에 조설되었던 산대의 전통 중, 침향산에 진설되었던 중인형을 꼽을 수 있다. 침향산은 산대조설의 대미를 장식했던 것으로, <양주별산대놀이>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애오개본산대 놀이꾼들이 궁중 산대놀이의 연희자로 활약했을 당시 답습했던 산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침향산대의 유풍을 기억하고 이를 모방하여 놀이판에 구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 문제점으로 지적된 거사들의 일상을 골계적 놀이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Abstract
この研究は<楊州別山臺ノリ>に登場する僧侶たちの類型と特性を考究し、その歴史的展開の様相を考察するものである。さらに<楊州別山臺ノリ>の成立背景である山臺および山臺ノリとの連関性を明らかにしようとする。楊州別山臺を始め、現在まで傳わる山臺ノリの伝統は宮中の山臺ノリ流風を踏襲したものであり、それは仁祖の卽位年(1623)の山臺造設の禁止に起因する。山臺造設の禁止が民間の山臺ノリを誕生させた重要な要因として作用したためである。このような山臺ノリペの中で、阿峴山臺ノリぺは楊州別山臺ノリの形成に絶對的な役割を果した。 京畿道の楊州を中心に伝わった<楊州別山臺ノリ>は僧侶たちの出演が見所である。彼らは、楊州別山臺のほぼ全てのノリマダンで重要な位置を占めるだけでなく、その仮面の数も22個にのぼる。老僧を始めモクチュン、オムチュン、上佐、完甫などはその代表的な人物である。何よりも楊州別山臺のノリマダンのなかで老僧科場とパルモクチュン科場はほかの科場たちに比べ、繊細なノリで構成され、<楊州別山臺ノリ>の劇的構成を多彩にする主な要因として作用している。登場人物たちは役所の性格を作り上げるために仮面だけでなく、衣装、小道具、舞、パントマイム、などを積極的に活用している。 このように<楊州別山臺ノリ>で僧呂たちの登場が特別な意味をなすことは当時の時代的な背景を反映させたためである。いわゆる'居士''祠堂'と呼ばれる人たちの增加、そしてこの人たちがしでかした弊風がノリとして昇華されたのである。このことは現傳する<鳳山タルチュム>第3科場(祠堂踊り)の祠堂と居士および<楊州別山臺ノリ> エサダンプクノリに登場するエサダンに連結される。即ち、居士と祠堂の足跡が現時の仮面劇ノリパンに影響を及ぼしたのである。 また、ほかの要因として、宮中山臺ノリで山臺に陳設されだ僧呂の人形があげられる。特に沈香山は山臺造設の最後を飾ったもので、<楊州別山臺ノリ>形成にとって決定的な役割をした<阿峴山臺ノリ>演戱者たちが宮中山臺ノリの演者として活動した時代の踏襲した山臺だと見られている。従って、<阿峴山臺ノリ>演戱者たちが沈香山の流風に慣ってこれをノリパンに再現させただけでなく、当時の社会の問題點として指摘されている居士たちの日常を滑稽的なノリの対象にした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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