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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後期 在地畵員 小考 - 18세기 東萊 在地畵員 卞璞의 官需繪畵 연구 -

A Study of Jaeji Hwawon in the late Joseon Dynasty: Official paintings of Byeon Bak, a Jaeji Hwawon in Dongraebu district in the 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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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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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고는 조선후기 지방에서 활동하던 在地畵員의 개념을 규정하여 그들의 官需繪事 활동의 영역을 살펴보고, 재지화원의 대표적 인물로서 18세기 동래부에서 관수회사업무를 수행한 변박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화풍의 특징을 파악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조선후기 궁중화원은 도화서화원과 더불어 정조년간 자비대령화원으로 이원화되는 양상을 띠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방으로 도화서화원이나 자비대령화원을 차견하는 법제가 시작되는 18세기부터 지방에서도 이른바 도화서차견화원과 재지화원으로 그 양상을 나누어 볼 수 있다. 재지화원은 자신이 속한 출신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대체로 그 지역의 軍營 또는 지방관아에 근무하면서 官需繪事 업무를 수행하는 화원을 의미한다. 18세기 동래부의 재지화원이었던 변박은 동래부 장군청의 천총, 별군관청 행수와 군기감관, 수첩청의 별장, 교련청의 기지구 기수 초관직을 역임하면서 동시에 여러 관수회화를 제작하였다. 대표적 작품인 <동래부순절도>와 <부산진순절도>는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 전투를 그린 것으로 그 배경이 되는 지리적 위치가 명확히 묘사되어 있고, 충절의 역사적 진실과 비장함을 반영하고 있다. 변박의 마지막 기년작품인 <왜관도>는 동래부 교린정책의 중심지인 왜관의 정경을 조감도식으로 일목요연하게 그려 왜관의 배치상황을 효율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산수기법에 있어 진경산수화풍이 완연히 나타나고 있어 정선의 화풍이 지방으로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래독진대아문>과 <사처석교비>의 제작정황을 미루어 볼 때 당시 양반이 담당하였던 현판, 주련 등의 제작영역이 지방의 관수회사일 경우 필력이 뛰어난 화가들에게 다소 일임되는 경우도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재지화원의 경우 지역토착인물인데다 도화의 기초단계부터 중앙의 화풍을 습득할 수 있는 환경적 요건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에 작품의 완성도나 구성력에서 중앙의 작품에 비해 그 격이 다소 떨어질지는 모르나 근무지역의 역사성과 지리적 특성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여 정확하게 시각적으로 고증함에 있어서 규범화된 범주를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묘사를 시도하는데 있어서는 유리한 조건이라 할 것이다. 재지화원에 관한 연구는 지방의 회화제작자라는 큰 틀 속에서 도화서차견화원과 더불어 지방회화제작자의 이원화 양상을 이루는 것으로, 지방화풍이 형성되는 가능성을 고려할 때 조선시대 지방화원 연구에 있어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재지화원과 그 작품의 발굴, 도화서차견화원과의 상관관계, 중앙화단 화풍의 지방 확산 양상을 규명하는 연구는 앞으로 밝혀야 할 과제일 것이다.

Abstract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scope of official activities in drawing and painting among local painters who were in full swing by providing a general idea of a local painter (Jaeji Hwawon)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to understand the features in the works of Byeon Bak, a representative local painter who carried out the official duties in drawing and painting at Dongraebu district in the 18th century. In the late Joseon Dynasty, a Court painter became broadly classified into two types, which was a painter at Dohwaseo and Jabidaeryeong Hwawon, a selected Court painter for special tasks during the reign of King Jeongjo. Likewise, painters in the local district were divided into a dispatched painter from Dohwaseo and a local painter (Jaeji Hwawon) when the legislation for dispatching a painter from Dohwaseo or Jabidaeryeong to a local district came into effect in the 18th century. A local painter, Jaeji Hwawon, is the person who performed official duties in drawing and painting at military and administrative districts of his native places. Byeon Bak, the local painter of Dongraebu district in the 18th century drew many military and administrative pictures while filling various government posts. His representative works such as <Dongraebusungeoldo: the documentary picture about defense of Dongrae Fortress> and <Busanjinsungeoldo: painting of defense of Busanjin Fortress> are describing the war scene at Dongrae Fortress at the time of Japanese Invasion in 1592 in which geographical location is clearly described and realistic and tragic war scenes are reflected. In his last work <Weaguando>, Byeon Bak drew Weaguan, the center of a good-neighbor policy of Dongraebu district with a bird's-eye-view so that the disposition of Weaguan at that time can be analysed effectively. Moreover, his landscape painting followed the realism of landscape painting of Jeong Seon. This confirms the trend that Jeong Seon's brushwork spread extensively even in the local district. Judging from the cases of <Dongraedokjindaeamun: the front gate of Dongraebu district> and <Sacheosukkyobi: a stone monument>, there is somewhat the likelihood that making a hanging board and a verse couplet carved or written on a plank which is put on a pillar was left in the hands of a local painter who was good at brushstrokes. Since Jaeju Hwawon was a native of the local districts and did not have an ideal environment that they could learn basic knowledge of painting, the quality of their works was somewhat behind from the aspects of depth and organization of paintings compared to the works by central painters. However, they were well acquainted with history and geographical features of their workplace so that they were in a better position to draw pictures in great details. Considering the possibility of forming a local style of painting through the division of a dispatched painter from Dohwaseo and local painter, the study of Jaeji Hwawon cannot be neglected. Therefore, further research should be directed at finding a new Jaeji Hwawon and their works; examining the relationship between a dispatched painter from Dohwaseo and Jaeji Hwawon; and giving a close look at the spread of a central painting style to local distri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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