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士禍와 忠淸左道 士林動向
Sahwas and the Trends of Chungcheongjwado Sarims in the 16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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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16세기 士禍 黨籍類에 기록된 충청좌도 인물의 생전 활동과 사후 그들이 미친 영향을 정리하여 충청좌도의 사림 동향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당적류 중에서도 「己卯黨籍(金正國)」과 「乙巳黨籍(李肯翊)」을 분석하였는데, 16세기 충청좌도의 피화인물이 적지 않게 기록되어 있었다. 우선 94명이 등재된 「기묘당적」에 10명의 충청좌도 인물이 기록되어 10.6%를 차지했다. 또 64명이 등재된 「을사당적」에는 11명이 기록되어 17.7%를 차지했다. 즉, 「기묘당적」과 「을사당적」에 총 21명의 충청좌도 인물이 기록되어 다른 도에 비해 적지않은 피화사림을 배출한 것이다. 이 21명의 피화인물은 충주지역 10명, 청주와 보은 각각 3명, 괴산과 문의에 각각 2명, 단양 1명 순서였다. 21명의 피화인물은 원래 충청좌도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경우가 13명으로 가장 많았고, 피화를 계기로 입향한 경우가 6명으로 두 번째로 많았다. 피화를 계기로 충청좌도에 입향한 인물은 모두 한양에서 출생하였으나 사화를 피해 대부분 처가와 외가가 세거하던 충청좌도 지역에서 입향하여, 사림의 학풍을 전파하고 강학을 하는 등의 활동을 보이며 충청좌도의 명문세족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처럼 16세기 충청좌도는 피화인물이 세거하고 입향하면서 선진적인 사림의 학풍이 마련되었다. 사화에 연루된 충청좌도 인물들은 먼 곳으로 유배되거나, 젊은 나이에 바로 사사되어, 직접 활발한 강학활동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문인이 많지 않다. 그러나 16세기 충청좌도 피화사림들은 이전 시대와는 다른 그들만의 성리학적 학풍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道學思想ㆍ至治主義를 조선사회에 보급하고 실천하기 위한 방법으로 『小學』의 교육ㆍ실천과 鄕約 시행에 힘을 기울이는 등 성리학적 질서가 지역사회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충청좌도에서 이러한 학풍을 공유하는 학맥이 형성되었는데, 보은의 金淨ㆍ成運ㆍ具壽福ㆍ金泰巖 학풍, 청주의 宋麟壽ㆍ趙綱 학맥, 충주의 李耔ㆍ李延慶ㆍ盧守愼 학맥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乙巳士禍 직후인 1549년부터 이들 충청좌도 피화사림을 제향한 書院이 건립되면서 16세기 충청좌도 사림의 학풍은 체계적으로 교육되고 확산되었다. 특히 충청좌도의 피화인물이 제향된 서원은 매우 이른 시기에 창건되었는데, 象賢書院이 1549년, 莘巷書院이 1570년, 八峯書院이 1582년, 花巖書院이 1622년 건립되었다. 문중서원의 성격이 강한 知川書院을 제외하고는 모두 17세기 초반 이전에 건립된 것이다. 즉, 17세기 李珥를 시작으로 활동한 畿湖學派의 본격적인 활동 이전에 이미 충청좌도에서는 기묘사림과 을사사림을 제향한 서원이 건립된 것이다. 요컨대, 16세기 충청좌도 사림의 배출로 충청좌도에는 지역별로 사림의 학풍ㆍ학맥이 형성되었고, 이를 교육하는 많은 서원이 건립되면서, 사림들이 지향한 성리학적 유교 질서가 지역사회에까지 안착한다. 이와같은 16세기 충청좌도 기묘사림과 을사사림의 존재 및 활동은 기호학파의 시작인 李齊賢ㆍ李穀ㆍ李穡 등 고려말 조선초 학자들에서 바로 李珥-金長生-宋時烈로 넘어가는 150여 년의 간극을 메워주고 있는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selected and reviewed figures from Chungcheongjwado in Sahwa records of Joseon in the 16th century by analyzing Gimyodangjoek(Kim Jeong-guk) and Eulsadangjeok(Lee Geung-ik). The records contained many people from Chungcheongjwado who suffered damage during a Sahwa in the 16th century. Gimyodangjoek included ten(10.6%) people from Chungcheongjwado in 94 in total, and Eulsadangjeok included 11(17.7%) people from Chungcheongjwado in 64 in total. Of the 21 people from Chungcheongjwado recorded in the two books, 13 that were born and grew up in Chungcheongjwado accounted for the biggest proportion and were followed by six that moved to Chungcheongjwado to avoid a Sahwa. All of the people that moved to Chungcheongjwado to avoid a Sahwa were born in Hanyang. Most of them moved from the areas of their wives' or mothers' families to Chungcheongjwado to avoid a Sahwa and eventually became a prominent family in Chungcheongjwado by spreading the academic traditions of their Sarims and engaging in activities to pursue studies. The members of Chungcheongjwado Sarims in the 16th century had their own academic tradition different from their predecessors. They made efforts to have the Seongrihak order settle down in the community such as offering the education and practice of Sohak and devoting themselves to the implementation of Hyangyak. Chungcheongjwado witnessed the formation of academic genealogy to share these academic traditions. Good examples include the academic traditions of Kim Jeong, Seong Woon, Gu Su-bok, and Kim Tae-am in Boeun, those of Song In-su and Jo Kang in Cheongju, and those of Lee Ja, Lee Yeon-gyeong, and Noh Su-shin in Chungju. A Seowon was built to hold sacrificial rites for the members of Chungcheongjwado Sarims that were killed during a Sahwa starting in 1549 right after Eulsasahwa. Such Seowons contributed to the systematic education and spread of the academic traditions of Chungcheongjwado Sarims in the 16th century. The study examined the Seowons holding sacrificial rites for the members of Chungcheongjwado that were killed during a Sahwa and found that these Seowons were built at a very early time. The Sanghyeon, Sinhang, Palbong, and Hwaam Seowons were established in 1549, 1570, 1582, and 1622, respectively. All of the Seowons were built very early in the early 17th century except for the Jicheon Seowon. That is, Chungcheongjwado saw the construction of Seowons to hold sacrificial rites for the Gimyo and Eulsa Sarims in the 16th century before the full-fledged activities of the Giho School whose activities began with Lee Yi in the 17th century. In the end, the Sarims of Chungcheongjwado established their academic traditions and genealogy by the area within the province in the 16th century and built many Seowons for their education, contributing to the safe arrival of the Seongrihak-based Confucian order that Sarims were oriented toward even in the community of Chungcheongjw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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