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高句麗)와 모용선비(慕容鮮卑) 삼연(三燕)의 고분문화
The Tombs of Goguryeo and the Three Yan Kingdoms (三燕) of Murong-Xianbei (慕容鮮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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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중장기병술(重裝騎兵術)은 북중국에서 5호16국시대가 개막되기 이전 이미 중국에서 도입, 활용되던 무장기법이자 전투방식이다. 고구려와 모용선비 전연(前燕)은 북중국이 혼란기에 접어들자 적극적으로 기존의 중장기병을 받아들여전장에 투입하였다. 고분에서 출토되는 고구려와 전연의 중장기병 관련 유물이세부 기법 등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도 두 나라가 큰 시차 없이 독자적으로 중장기병술을 도입,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고구려와 모용선비의 삼연(三燕, 전연·후연·북연)은 100여 년에 걸친 접촉을 통해 인력과 기술, 물자를 교환했다. 특히 전쟁에 수반되는 인적 약탈은 상호문물의 교류에 큰 역할을 하였다. 436년 북연의 멸망과 함께 이루어진 용성(龍 城) 사족(士族)과 민호(民戶)의 고구려 유입은 5호16국시대 후기 북중국의 지식과 기술이 고구려에 집중적으로 전해지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고구려와 모용선비 삼연의 벽화고분은 중국 한, 위·진 벽화고분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출현하였다. 고구려는 4세기 중엽부터 생활풍속계 고분벽화를 다수 제작하고 5세기 중엽에는 장식무늬계 고분벽화라는 독자 유형을 출현시킨다. 반면 모용선비 삼연 사회에서 고분벽화는 일시적인 문화 현상에 그친다. 북연의 권력자 풍소불(馮素弗)의 무덤 형식과 출토 유물은 5세기 전반 모용선비 문화의 성격을 잘 알려준다. 풍소불 무덤은 묘제에서는 선비적 정체성이강하게 드러나고 껴묻거리 구성에서는 한문화의 영향이 뚜렷하다. 풍소불 무덤은 북연(北燕) 시기에도 모용선비가 호족과 한족 연합국가에 걸맞은 새로운 문화를 정립시키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였음을 알게 한다. 주류 묘제가 없던 삼연과 달리 고구려는 5세기에 이르러 한(漢) 문화에서 기원한 석실분을 고구려식 묘제로 소화하여 재정립시킨다. 외래의 불교신앙을 고구려 문화의 한 요소로 자리 잡게 했음도 연꽃장식무늬 주제 고분벽화를 통해확인된다. 5세기 고구려에서 성립하여 내외에 각인시킨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天下觀)도 동북아시아 패권국가로서의 정치적·문화적 자신감에서 비롯된 현상이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Abstract
The armed cavalry was adopted and utilized by China before the Sixteen Kingdoms Period. Goguryeo and Former Yan (前燕) of Murong-Xianbei (慕容鮮卑) actively adopted armed cavalry and deployed it in wars when Northern China fell into turmoil. The differences in details and techniques shown in cavalry-related artifacts from Goguryeo and Former Yan tombs are due to the fact that these two kindgoms independently adopted and developed cavalry at about the same period. The tomb murals of Goguryeo and the Three Yan kingdoms (三燕) of Murong-Xianbei developed with the direct and indirect influences of the Chinese Han, Wei, and Qin. From the mid-fourth century, Goguryeo created many tomb murals with life and customs motifs and produced a unique genre of decorative patterned murals in the mid-fifth century. On the other hand, tomb murals in the Three Yan kingdoms of Murong-Xianbei never advanced beyond a temporary cultural phenomenon. Goguryeo and Three Yan kingdoms of Murong-Xianbei exchanged human resources, technology, and materials over a hundred years of interactions. The looting and abductions that occurred from wars contributed to the exchange of materials between the two. With the fall of Northern Yan (北燕), the elites and peasants of Longcheng (龍城) entered Goguryeo, passing important knowledge and technology of the late Sixteen Kingdoms Period in Northern China. The tomb structure and the materials excavated from the tomb of the Northern Yan authority Feng Sufu (馮素弗) show characteristics of the early fifth century Murong-Xianbei culture. The tomb shows a strong Xianbei identification in its form and an influence of Han culture in the composition of burial accessories. The tomb shows that, even by the Northern Yan period, Murong-Xianbei was yet to establish a new culture to represent the kingdom of unified nomadic and Han people. Unlike the Three Yan Kingdoms, Goguryeo established the stone chamber tomb from the Han culture in its own style in the fifth century. The lotus decoration motifs show that Goguryeo had also adopted the foreign religion of Buddhism as an element of its own culture. The Goguryeo -centered cosmic view established in the fifth century is also the result of political and cultural confidence as a formidable power in the North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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