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宗周의 思想變遷에 관한 考察
An inquiry into LiuZongzhou′s thought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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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중국 明末期에 활약한 유학자 劉宗周의 思想變遷에 관한 분석을 통하여 기존의 劉宗周像에 대한 반론을 제기할 목적으로 기획하였다. 그래서 본고 Ⅱ(연구사 개괄)에서는 종래의 연구 동향을 검토하고 劉宗周像의 視點에 초점을 맞춰 기술하였다. 현대에서 劉宗周 思想을 기억하는 키워드는 변함없이 愼獨, 誠意라고 하는 그의 대표적 사상 체계에 머물고 있으며 그것도 陽明學의 범주 내에 위치시킨다는 사실이다. 그 범주 외부에서의 논의는 결코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과 그 결과 劉宗周에게 덧씌워진 양명학자로서의 이미지는 점점 더 고착화 되어왔다는 점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본고의 Ⅲ(思想의 地平融合)에서는 그가 정말로 양명학자였는가 라는 문제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검토하였다. 그 결과 그에게는 세 차례의 사상 변천 과정이 있었다는 점, 양명학에 대한 관심은 극히 짧은 기간에 그쳤다는 점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그 양명학자로서의 이미지는 제자 黃宗羲의 의도적 해석에 의해 정착되었다는 점도 기술하였다. 사실 역사 속에서 한 사람의 思想은 기억하는 자의 의도에 의해서 왜곡되고 변질될 수 있다는 근본적 논리에 근거하여 劉宗周 思想의 全體像을 파악하기 위해 원전 자료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그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子 劉과 제자 黃宗羲 등의 증언과 발언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劉宗周 思想의 實像과 全體像에 접근할 수 있었으며, 그는 결코 순수한 양명학자로서의 길을 걷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는 학문의 길에 들어섬에 있어서 程朱學으로 입문하였고 自說의 확립기에 잠시 양명학에 관심을 두었지만, 끝내는 程朱學的 입장을 견지하고 정주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대 유학사상 ‘理殿軍’으로서 劉宗周를 표창하기 시작한 장본인은 그의 제자 黃宗羲이다. 黃宗羲는 명대 유학, 특히 양명학 내부에서의 자설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그것과 함께 명대 유학관과 사상적 문맥을 관통시키기 위해 스승 유종주의 양명학적 ‘心性論’을 끊임없이 강조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黃宗羲 개인만의 문제의식인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들은 이제라도 이러한 黃宗羲에 의해 만들어지고 변질된 ‘劉宗周像’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만 한다. 劉宗周 思想의 實像을 해명하기 위해서도 ‘陽明學者’로서의 劉宗周 이미지는 금후 재고되지 않으면 안 된다.
Abstract
本稿 「劉宗周の思想変遷についての考察」においては、劉宗周の子劉汋と姚名達とが記録した『年譜』および黄宗羲の『子劉子行状』を基本資料として、劉宗周の思想変遷とその実像を考察した。事実、劉宗周思想に対する従来の多くの研究は、劉宗周の思想を主に哲学的或いは宋明理学とよばれる伝統的学問分類の方法(朱子学・陽明学などの分類)によって解釈してきた。すなわち、彼の思想をつくり出した時代性・地域性及び経世思想の側面を究明しようとする研究よりは、彼の哲学的テーマ(慎独・誠意・理気・天命などの観念)だけをめぐって問題の関心が集中された。そしてそのような結果として彼を「真の陽明学者」・「陽明学右派」・「新陽明学者」・「朱王折衷論者」・「新周子学者」などに評価し、その思想の概念を捉えようとする傾向が強かったのである。しかし、本稿の本論で述べたように、こうした劉宗周像は主に中国近世の朱子学・陽明学史の中で認知されてきたものであり、朱子学・陽明学の歴史の中に矮小化された劉宗周像である。またそれは、劉宗周の実像がそういうものであったことを意味しない。それでは、我々はこうした劉宗周思想をいかに評価すべきであろうか。確かに本文中に述べたように、劉宗周思想への評価において問題となるのは、「新王学」「新朱子学」・「新陽明学」・「新周子学」云々の表現である。すなわち何が新しい学問傾向であるかが問題となるのである。果たして「朱子学」「陽明学」といった固有名詞の前に「新」という一文字をつけ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ろうか。ところが、実像はそうではなかった。劉宗周は当時のパラダイム(朱子学・陽明学的傾向)の内側で思考しており、彼の「慎独」「誠意」論もその枠組みから離れることはない。そうした点から考えてみる時、劉宗周の思想には「新しいパラダイム」への模索が見られないと思われる。そこで劉宗周思想の性格及び評価については今後再考されねばならない。そして、明代儒学史上、「理学殿軍」として劉宗周を表彰し始めたのは黄宗羲である。黄宗羲は明代儒学、特に陽明学の中での自己の正統性を主張し、それとあいまって明代儒学観と思想的文脈を貫くため、師劉宗周の陽明学的「心性論」を強調し続けた。しかしそれは黄宗羲の問題意識なのである。その故、我々はこうした黄宗羲によって物語化された「劉宗周像」から自由になるべきであり、劉宗周思想の実像を解明するためにも、「陽明学者」としての劉宗周イメージは再考されねばなら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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