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시대 나주지역의 해양전략적 가치
The Strategic Importance of Naju Marine Area during the Later Three Kingdoms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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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시대 나주지역은 배타성과 독자성을 강하게 지닌 지역이었다. 이런 지역적 특징과함께 후백제의 배후에 위치한 지리적 조건, 서해와 남해를 양호하게 연결하는 해상교통망은903년 태봉 수군이 나주지역에 대한 진출을 추진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나주지역 진출 결과 태봉은 10여 군현을 확보하였고, 고려 왕조 이후로도 지속적인 수군활동을 벌여930년에 이르러서는 40여 군현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태봉 및 고려의 나주지역 확보는 해양전략적인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가치를 갖는다. 우선서해안 지방에 대한 해상권을 장악하고 나아가 남해안 지방에까지 그 권한을 확대시킬 수 있는 전략거점을 마련하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또한 나주지역으로부터 확보한 물자가 운송되는해상교통로를 안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전략거점을 확보하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와 함께 통일전쟁의 경제군사적인 재원을 마련하는 공간을 확보하였다는 점에서도 전략적인 가치가 크다. 전쟁의 형태가 총력전으로 변화해 가던 상황에서 인간과 군량, 소금, 군마의 확보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당시 이러한 재원은 나주를 비롯한 서남해안 지방에서 풍부하게 생산되고 있었다. 고려는 이 지역으로부터 확보한 물자를 왕도를 비롯한 군사적 요충지에운송하여 활용하였다. 나주지역을 점령하여 획득한 해양전략적인 가치를 기반으로 고려는 후삼국 통일을 이룩하였던 셈이다.
Abstract
The regional character of Naju area during the Later Three Kingdoms was one with high degree of exclusiveness and autonomy. Along with such local nature, its unique geographical feature of located at the rear territory of Later Baekjae and naval network of artfully connecting West and South Seas, became direct stimuli for the Taebong navy to expand on this region in 903. As a result of Naju debouchment, Taebong kingdom was able to secure around 10 counties and prefectures. Energetic naval activities continued into the Koryo dynasty, when the new kingdom eventually ruled over 40 counties and prefectures by the year 930. The conquest of Naju region by Taebong and Koryo kingdoms ultimately generated the following marine-strategic significances. First, it was a very meaningful move for these two northern kingdoms to dominate the West Sea and expanded its military power into the South Sea regions by occupying the strategic base. Also, Naju region functioned as a key point to safely transport its supplies along the sea traffic routes, which Taebong and Koryo successfully managed to ensure. Moreover, Naju seizure implicated a tremendous turning point in military operations as it provided rich economic resources for the unification wars. As the struggle between the three kingdoms was transforming into an all-out warfare, control of manpower, provisions,salt and horses was indeed a critical issue. Such resources were amply produced in the southwest coastal regions including Naju. Notably, the kingdom of Koryo efficiently utilized the fertile goods from this locality by conveying them to the capital and strategic positions. Thus, it is evident that Koryo has become the ultimate victor of the unification of the Later Three Kingdoms based on its acquisition of the Naju region, which had possessed innumerable maritime strategic va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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