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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옥천지역의 변천과 용암사의 창건연대

Changes to the Okcheon Region during the Goryeo Dynasty Period and the Founding Years of Yongam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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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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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옥천지역은 管城, 安邑, 利山, 陽山의 4개 군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신라 이래 관성군에 안읍, 이산, 양산의 3현이 속해 있는 형태로 내려오다가 1018년(현종 9) 군현제 정비에 따라 모두 京山府의 속현이 되었다. 이로 인해 한동안 外官 파견 없이 토착 향리 집단에 의해서 통치가 이루어졌으며 1143년(인종 21)에 가서야 관성에 縣令이, 뒤이어 양산과 이산에도 각각 현령과 監務가 파견되기 시작하였다. 1313년(충선왕 5)에는 관성현이 知事를 두는 沃州로 승격되면서 경산부로부터 안읍, 이산, 양산의 3현을 떼어 받아 관할하게 되었고 지금의 군서면에 있던 治所가 옥천읍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 ‘옥천’이라는 지역 정체성이 토대를 갖추게 되었는데 그 배경에 옥천지역이 충청과 경상의 경계로 관문 역할, 즉 교통의 요충지였다는 사실이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고 보았다. 한편 근래 들어 龍巖寺는 옥천지역을 대표하는 고찰로 알려져 있다. 연기 설화에 의하면 6세기 중반 무렵에 창건했다고 전하지만 1872년(고종 9) 이전에는 각종 문헌이나 금석문에서 관련 기록이 거의 찾아지지 않고 있다. 경내에는 고려시대 유물로 동·서삼층석탑과 마애여래입상이 남아 있는데, 모두 옥주 성립 이전에 조성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관성현 치소에서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는 산속 험지에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고려시대 용암사가 실재하지 않고 작은 암자 또는 기도처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혹은 사찰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사세는 그리 크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Abstract

The Okcheon region consists of 4 gun or hyeon, specifically, Gwanseong, Aneup, Isan, and Yangsan. Since the Silla Dynasty Period, the three hyeon of Aneup, Isan, and Yangsan persisted under Gwanseong-gun, and these then became the sokhyeon of Gyeongsan-bu following the overhaul of the gun-hyeon system in 1018. As a result, indigenous local functionary groups ruled these areas for quite a while without a district magistrate being dispatched, and only in 1143, was a hyeonryeong dispatched to Gwanseong and later on hyeonryeong and gammu to Yangsan and Isan respectively. In 1313, when Gwanseong-hyeon was elevated to the status of Okju, which had a jisa appointed, the three hyeon of Aneup, Isan, and Yangsan were separated from Gyeongsan-bu to came under its jurisdiction, with the government office in current Gunseo-myeon moved to Okcheon-eup. The process described above served as the basis for forming the regional identity of ‘Okcheon’ today, and the fact that the Okcheon region served as a gateway as the boundary between Chungcheong and Gyeongsang, or, in short, an important traffic center seems to have functioned as a cause in terms of such a background. Meanwhile, recently Yongamsa has become known as an ancient temple representing the Okcheon region. According to its origin myth, the temple was reportedly founded around the middle of the 6th century, but almost no relevant records were found in various documents or epigraphs before 1872. The East-West Three-Story Stone Pagoda and the Rock-Carved Standing Buddha remain within temple grounds as artifacts from the Goryeo Dynasty Period, and considering the fact that they were created before the founding of Okju, they seem to be placed in a rather rugged place in the mountains with somewhat of a lack of accessibility from the government office in Gwanseong-hyeon. Therefore, it is possible that Yongamsa didn’t exist during the Goryeo Dynasty Period, and the location was simply used as a small hermitage or a place of prayer. Even if there was a temple, researchers assume its status would not have been as big as they once exp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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