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 진주지역 鄭相珍의 성장기반과 유지활동
Jung Sang-Jin’s Growth Background and the Activity as a Community Leader in Jinju in the Forced Occupation Period of Japan
0
조회
0
다운로드
3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글은 일제하 진주지역의 대표적인 유지 정상진의 성장 과정과 활동 내용을 살펴본 것이다. 정상진은 왕조 말에 출생하여 대한제국과 일제시기를 거치고 이승만 정권까지 생존했던 인물이다. 전 생애 진주라는 공간을 떠나지 않으며 지역의 지주, 자산가, 유력자로 종신했다. 몰락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나 행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개항 후의 시세변화에 적응하며 자기성장의 길을 걸어갔다. 고수익 박래품을 유통, 판매하여 10대 후반에 상당한 이윤을 창출했고 대한제국기에는 물종객주로 자리 잡아 자산가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한일병합 후에는 식민지 경제조건에 순응하여 소유농지 150정보 이상의 대지주로 성장하였다. 지주경영과 함께 농외투자도 지역 유지 중 가장 적극적이었다. 1910년대 후반부터 중일전쟁기까지 10여 개 이상의 회사에 투자하고 대표 이사와 대주주를 역임했다. 업종은 금융업을 제외하고 망라되었는데 정미와 양조가 주력이었다. 자산을 기반으로 정상진은 교육·기부·자선·공직참여 등 다양한 유지활동을 전개했다. 양상은 지방유지의 전형이었으나 내용에서 몇 가지 특징점이 발견된다. 교육의 경우 그는 야학 운영과 상공학교 건립 등 이른바 실용교육에 남다른 열의를 보였다. 당시 지역 최대의 관심사였던 중등학교 설립보다 두 교육기관에 더 많은 지원과 참여를 하였음이 확인된다. 전 방위에 걸친 기부·자선활동도 일생동안 이루어 졌는데 기간과 내용에서 지역 유력자 중 가장 우위를 점한다. 특히 지주 부르주아로서 그는 소작쟁의, 동맹파업 등 계층 갈등이 충돌하는 현장에서 유연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개인적인 행적으로 지역사회에서 물의를 일으킨 사실도 없다. 이러한 처신으로 인해 정상진은 식민지 진주에서 압도적인 주민신망을 획득할 수 있었다. 공직 참여도 직능단체가 주였고 지방자문위원직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비정치적인 행보로 일관했다. “시종여일한 사업가”라는 당대의 평판대로 실용적인 사고관을 바탕으로 자기성장을 추구하고 지역현안과 주민생활에 개입했다. 말년에 세운 비봉루는 이 지역 개인의 건립물로는 규모와 양식이 독보적인 누각이다. 비봉루는 장남 정명수에 의해 진주의 문화공간으로 활용된 유지활동의 상징물이다. 일제하의 유지가 자산을 형성, 보전하는 것은 식민권력과 관계 하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활동도 개인의 실리와 영향력 행사라는 측면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급한 내용만으로도 정상진은 식민지 지방사회의 분석틀로 제시되는 “유지정치”나 “관료-유지 지배체제”의 대상으로 적용시키기 어려운 인물이다. 상속자산에 근거하여 대한제국기에 세력화 된 동시대 진주 유지와도 차별성이 있다. 중일전쟁기의 친일행위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함께 근대 진주지역의 상징적 유지로서 정상진의 존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Abstract
This paper studied and analyzed Jung sang-jin’s life and activities as the representative community leader in Jinju under the forced occupation period of Japan. He was born as a descendant of a ruined family in the late 19th century. At the age of teens, he traded imported goods toraise money for his business. In the Korean Empire period, he became a consignee who dealt in rice and salt and raised more money. Based on this, in 1910, he became a great landlord. His land was spread in western part of Kyungnam. As an active investor, he served as president and chief shareholder of several companies. His economic activity is most prominent in the same period in Jinju. His activities as a community leader can be classified into education, donation, charity, and public official service. In Education, he was interested in night school and had active support. He also took interest in vocational(technical) education and insisted on the establishment of a commercial school and donated assets. We can see his practical education philosophy from this. He donated and contributed to so many fields. Although he was a landlord and a man of property, he showed a balanced attitude when the conflicts between classes occurred. Thus he earned the highest credit in Jinju and most of his public official was from the professional organizations. He had no interest in being a local councillor, which was the key of maintaining power. This non-political behavior earned him a reputation as an “everyday businessman”. At the end of the forced occupation period of Japan, he did pro-Japanese activities, but his status did not change even after the liberation. Bibongru was built later in his life andwas used as a representative cultural space of Jinju by his son. He was a person who adapted to colonial power and changing times and grew up to be the first rate community leader. Based on practical mind thoroughly, he intervened in local problems and residents’ life. It is necessary to pay attention to him as the most symbolic community leader in the forced occupation
참고문헌 (40)
- "경남일보", ~
- "대한매일신보", ~
- "매일신보", ~
- "동아일보", ~
- "조선일보", ~
- "중외일보", ~
- "조선중앙일보", ~
- "영남춘추", ~
- "중앙공중보", ~
- "남선공론", ~
- 조선총독부, "朝鮮の小作慣習", ~ (1929)
- 조선총독부, "朝鮮の小作慣行 下卷", ~ (1932)
- 勝田伊助, "晋州大觀", ~ (1940)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農地改革時 被分配地主 및 日帝下 大地主 名簿", ~ (1985)
- 김경현, "일제강점기 인명록Ⅰ-진주지역 관공리·유력자" (2005), 민족문제연구소
- 韓國近現代農業史硏究, "김용섭", ~ (1992)
- 동선희, "식민권력과 조선인 지역유력자-道評議會·道會議員을 중심으로-" (2011), 선인
- 신기욱,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 (2006), 삼인
- 오미일, "한국근대자본가연구" (2002), 한울
- 윤해동, "식민지의 회색지대" (2003), 역사비평
- 張矢遠, "日帝下 大地主의 存在形態에 관한 硏究", 박사, 경제학, pp.1989
- 진주상공회의소, "진주상공회의소 120년사", ~ (2006)
- 진주시, "文化遺蹟分布地圖-晋州市-", ~ (2003)
- 충남대학교 내포지역연구단, "근대이행기 지역엘리트 연구Ⅰ" (2006), 경인문화사
- 김건태, "朝鮮後期 農家의 農地所有 現況과 그 推移-晋州地方을 중심으로-", 歷史學報, 172 (2001)
- 김동명, "일본제국주의와 조선인의 지방정치참여 - 부(협의)회・도(평의)회 선거 결과를 중심으로 -", 한일관계사연구, (50), pp.287~328 (2015), 한일관계사학회
- 김준형, "조선시대 圃隱 후손의 경남 서부지역 정착과 활동", 포은학연구, 7, pp.123~157 (2011), 포은학회[DOI]
- 김중섭, "일제식민통치와 주민교육운동-진주지역을 중심으로-", 한국사회학회논문집, 47 (1995)
- 김중섭, "일제하 경남도청이전과 주민저항운동", 경남문화연구, 18 (1996)
- 김희주, "1920년대 경남 진주지역의 청년운동과 진주청년동맹", 한국민족운동사연구, (72), pp.83~122 (2012), 한국민족운동사학회
- 김희주, "일제하 진주지역 천도교의 문화운동", 동국사학, (55), pp.257~296 (2013), 동국역사문화연구소[DOI]
- 김희주, "대한협회 진주지회의 결성과 활동", 역사와교육, (21), pp.501~539 (2015), 역사와교육학회
- 김희주, "진주지역의 사회주의운동과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동국사학, (61), pp.341~386 (2016), 동국역사문화연구소[DOI]
- 변광석, "18·19세기 경상도 남부지역의 상품유통구조", 지역과 역사, 5 (1999)
- 이해준, "朝鮮後期 晋州地方 儒戶의 實態", 震檀學報, 60 (1985)
- 이욱, "18세기말~19세기 진주권의 상품유통과 성격", 역사교육논집, (41), pp.221~249 (2008), 역사교육학회
- 정연태, "조선말 일제하 資産家型 地方有志의 成長 추구와 利害關係의 中層性 - 浦口商業都市 江景地域 사례 -", 한국문화, (31), pp.289~350 (2003),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장상환, "해방직후 진주지역의 정치변동", 역사와 경계, 7 (1995)
- 지수걸, "일제하의 지방통치 시스템과 군 단위 ‘관료-유지 지배체제’ ― 윤해동 저, 지배와 자치(역사비평사, 2006)에 대한 논평 ―", 역사와 현실, (63), pp.345~379 (2007), 한국역사연구회
- 지수걸, "지방유지의 '식민지적' 삶", 역사비평, (90), pp.156~180 (2010), 역사문제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