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청에 전달한 일장(日藏) 금석(金石) 자료와 그 학술적 가치
The Epigraphic Materials Transmitted to Qing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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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전 한중일 삼국의 문화 교류는 다방면에서 진행되었고, 마지막으로 진행된 분야 중 하나가 금석학이다. 청대 들어 중국 문물을정리하는 학술 사업이 진행되면서, 청의 학자들은 중국 밖으로도 눈을돌려 조선과 일본에서 희귀 자료들을 입수하고자 했다. 청과 조선 간고증학, 금석학 교류는 18세기 후반 이후 활발해졌으나, 일본의 경우청일간 공식 외교가 진행되지 않아 자료 수집이 용이하지 않았다. 경전자료들의 경우 양국을 오가는 상선을 통해 어느 정도 입수할 수 있었지만, 금석학 자료는 양국 모두와 공식적 외교를 진행한 조선 문인들의힘을 빌어 자료를 수입하게 된다. 현존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바청의 학자들이 조선의 문인을 통해 입수한 일본 소재 자료는 세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중국 고비 모본인 <역산비>(嶧山碑) 중모본(重模本)이다. 1863년 조선의 계미통신사단은 이 자료를 일본 문인으로부터 건네받았고, 19세기 중반 김정희가 옹방강에게 전달했다. 이 자료는 당시 중국에 현존하던 가장 오래된 <역산비> 모각본인 북송대 역음당본의원본에 대한 모본으로서, <역산비> 제 모본을 둘러싼 금석학 연구, 그시대 구분의 기준자료가 되면서 중국의 제 모본들보다 전서적인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 둘째, 일본에서 제작된 석각자료 4종이다. <다호비>(多胡碑)(711)와 <다하성비>(多賀城碑)(724) 등은 역시 위의 통신사단이 일본으로부터 선사받고 역시 19세기 중반 조병구, 김정희가 각각 청의 유희해, 섭지선에게 건넸다. 이들 자료는 해동금석원, 일본잔비쌍구본, 해법삭원에 수록되었다. 셋째, 일본에서 제작된 동경들이다. 19세기 중반 김정희는 이들을 옹방강, 섭지선을 위시한 몇몇 문인들에게 선사했고 금석색에 수록되었다. 조선 문인을 통해 전달된일장 금석학 자료들은 청대 학술사업에 단편적으로 수록되어 일본 금석학 자료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Abstract
Epigraphic materials represent one of the last categories of cultural exchangethat took place between the scholars of China, Korea and Japanbefore the 20th century. Qing scholars tried to gather and organize overseasacademic documents, in addition to domestic documents. They obtainedKorean epigraphic data from the Korean envoys and the Japanesedata through the help of Joseon scholars, since Joseon had sent envoys toboth countries. The epigraphic materials transmitted from Japan to Qingthrough Korean scholars comprised three kinds: ancient Chinese epitaphicdata, ancient brass-rubbings of four Japanese stone works, and someJapanese bronze mirrors. The first consisted of copies of Yishanbei (嶧山碑) supposedly made before Tang which allowed scholars to confirm thatthe other extant copy of the same original stone, which existed in QingChina at the time, had also been made before the Tang Dynasty Thebrass-rubbings of four Japanese stone inscriptions, including Tagobi (多胡碑) and Tagazonobi (多賀城碑), were delivered to Ye Zhi-Shen (葉志詵) and Liu Xi Hai (劉喜海) respectively by Kim Jeong Hee (金正喜) andJo Byong-Gu (趙秉龜) - they were included as supplements inHadongkeumsukwon (海東金石苑), which was a collection of Koreanbrass-rubbings, in a dictionary, and in some Chinese books. The bronzemirrors were sent to Ye Zhi-Shen, Weng Fang-gang (翁方綱) and othersand were included in Jinshisu (金石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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