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시기 중국인민지원군·연변(延邊) 조선인사회의 ‘후방지원’ 활동과 북중 ‘혈맹’관계의 강화
Rear Supporting Activity of Chinese People’s Volunteer Army · Korean Society in Yanbian during the Korean War and the Reinforcement of the China-DPRK “Blood Alli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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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월 19일 한반도에 진입하여 1958년 북한에서 철수한 중국인민지원군은 1950년대 북중관계의 요체이자 두 나라를 매개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자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역사적으로 북한과 중국이 가장 긴밀하고 협조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는 1950년대의 북중관계를 해명하기위해서는 중국인민지원군의 활동과 역할을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글은이 같은 문제의식 아래, 후방지역(비전투지역)에서 행해진 중국인민지원군의 활동을 살펴보았다. 또한 연변 조선인 사회의 ‘항미원조운동’도 함께 살펴봄으로써 중국의 ‘항미원조운동’이 ‘후방’인 북한 일부 지역과 연변에서 각각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그려보고자 하였다. 중국인민지원군은 후방지역에서 다양한 구호 사업을 벌였다. 농번기에는춘경 파종 등 농사일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고, 겨울철이 되면 북한 주민들의월동 준비를 도왔다. 자신들에게 지급된 양식을 절약하여 폭격의 피해로 신음하는 북한 피난민들에게 건네거나 전쟁고아 양육 시설에 물품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중국인민지원군의 후방지원 활동은 분야를 가리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굉장히 다양한 경로와 이유로 북한 주민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활동은정전 후 중국인민지원군의 북한 전후복구 사업 지원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중국인민지원군의 일방적인 시혜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북한 주민들 역시 중국인민지원군에게 선물과 서한 등을 보내거나 위문대를 조직하여 이들을위로하였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중국인민지원군 부상병들을 구조한 북한 간호대원이나 지역 주민의 사례도 심심치 않게 보도되었다. 한국전쟁 시기 북중관계를 설명할 때 북한은 일방적인 수혜자로 그려지는 경향이 강하였지만, 실제 북한에서 생활하며 전투를 치러야 하는 중국인민지원군들에게 북한 주민의 도움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는 ‘국가 대 국가’ 차원에서는 포착할 수 없는 지점이다. 한국전쟁 기간 중 중국 동북지역, 특히 연변 역시 북한의 후방지역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글에서는 후방기지로서 연변의 역할 가운데에서, 대대적인 참전운동을 통한 지원병 모집, 북한 전쟁고아 수용 및 교육 등을살펴보았다. 무엇보다 한국전쟁 당시 가장 중요한 연변의 역할로 꼽아야 하는것은 이곳을 비롯한 중국 동북지역이 북한 주요 기관과 인물들의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주었다는 점이다. ‘피난처’로서의 연변은 계속된 전투로 지쳐 있는 조선인민군 부대를 재편하고 병력을 충원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 같은 모습은 국공내전 시기 북한이 중국공산당에 제공한 도움과 매우 닮아 있다. 북한과중국은 각자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서로에게 거의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지원세력으로 기능하면서 ‘혈맹’관계를 강화해갔던 것이다.
Abstract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 Army, which entered the Korean peninsula on October 19, 1950, and withdrew from North Korea in 1958, became one of the key factors in the relationship between North Korea and China and one of the most important mediators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the 1950s. In this respect, it is essential to analyze the activities and roles of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 Army in order to clarify the North Korea-China relations in the 1950s, a period when North Korea and China had the closest and most cooperative relationship in that history. From this perspective of the issue, this article seeks to examine aspects of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 Army in the rear (non-combat) areas, an issue which has not been addressed in previous studies. In addition, the article seeks to describe how China’s “Movement to Resist America and Aid North Korea” (抗美 援朝運動) unfolded in North Korea and the Yanbian area, respectively, by comparing the cases of the rear support by the Chinese People’s Support Army with those by members of the Yanbian Korean society.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 Army carried out various relief projects in the rear areas. During the farming season, they actively participated in farm work such as the spring sowing and helped North Korean residents prepare for the winter. They saved food provisions which were rationed to them, and handed them to the North Korean refugees suffering from the bombing, and also provided supplies to the nurseries for war orphans. The supporting activities of the Chinese Volunteer Army were not limited to particular areas, and in this process the army encountered North Koreans through a great variety of routes and for many reasons. Such activities may have become an important foundation for the post-war restoration projects of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 Army. However, it was not that there was only the Army’s one-sided giving. North Koreans, too, sent gifts and letters to the Army or organized comfort troupes to console them. The cases of North Korean nursing personnel and local residents rescuing wounded Army soldiers at the risk of their lives were often reported. The cases also show that their relationship reached a point that extended beyond the state-tostate dimension. In other words, when describing North Korea-China relations during the Korean War, North Korea tended to be portrayed as a one-sided beneficiary. However, the assistance of the North Korean residents was indispensable to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 Army, who had to live and battle in North Korea. During the Korean War, China’s northeast region, the Yanbian area in particular, played a very important role as a rear area of North Korea. This article examined the recruitment of volunteers through a massive campaign for encouraging participation in the war and accommodating and educating North Korean war orphans, among the roles the Yanbian area played as a rear base. In particular, the most important role of the Yanbian area during the Korean War was that China’s northeast region including this area served as a safe ‘refuge’ for North Korea’s major institutions and persons. The Yanbian area, as a “refuge,” played a major role in reorganizing and reinforcing the troops of the North Korean People’s Army, which were exhausted by the continuous battles. This was very similar to the case in which North Korea provided assistance to Communist China during the Chinese Civil War. North Korea and China strengthened their blood alliance by functioning as the only and absolute supporters for each other in their most difficult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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