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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중건과 대원군의 정치-『경복궁영건일기』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Reconstruction of Kyungbok Palace and Daewongun's Politics-Focused on the newly discovered Chron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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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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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대 도서관이 소장한 9권짜리 『경복궁영건일기』는 경복궁 중건에 관한 모든 것들의 연대기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글은 이 새로운 자료에 기대어 경복궁 중건에 투영된 대원군의 정서를 읽어보려 한 것이다. 1865년(고종 2) 수렴청정하던 대왕대비(신정왕후)가 경복궁 중건에 관한 의지를 드러내며 신하들의 생각을 물은 뒤, 경복궁 중건 역사 일체를 대원군에게 위임한다고 공표했다. 『영건일기』에 실려 있는 정원용과 조두순의 최초 발언을 읽어보면, 그들이 권력 심층부의 의사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미리 알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원군을 실질적으로 돕던 그룹은 스스로 18學士를 표방하며 경복궁 중건 사업에서 민간의 협력을 이끌어냈다. 그들은 사실상 대원군 혈족 및 복심들과 신정왕후 조씨 친정 조카들 간의 연합이었다. 대원군과 영건도감은 이 대형 토목공사를 ‘천명’으로 합리화하려 했다. 대원군은 도참비기의 출현을 토대로 천명을 받았음을, 백성의 자발적 공사 참여를 근거로 민심을 얻었음을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중건경복궁에 창건경복궁의 이미지를 중첩시킴으로써 천명과 민심을 얻어 세웠다는 새 왕조를 자기의 시대로 불러들이려 했다. 대원군이 천명과 인심, 그리고 창건경복궁의 이미지로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은 그가 조선후기적인 정치운영의 논리와는 질적으로 다른 그 무엇을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의 의도는 중건경복궁의 주변공간에 투영되었다. 경복궁 담장에 인접해 있는 민가가 철거되었으며, 도시기반시설 가운데 불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것들도 철거되었다. 궁궐 중에는 경희궁이, 잠저나 사묘 중에는 창의궁이, 관청건물 중에는 균역청 청사가 몸살을 앓았다. 영건도감이 위 보상금 기준가보다 훨씬 비싼 돈을 주고 사들인 민가들도 적지 않았다. 대원군은 중건경복궁을 삼면으로 둘러싼 이 공간에 각사와 각사 소속 시설, 군영 관련시설 등을 경복궁 주변에 조성하려 했다. 중건경복궁을 새로운 정치운영의 중심, 새로운 행정 및 군사 시스템의 중심, 더 나아가 새로운 정치사회질서의 중심으로 만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Abstract

It was last summer that some Korean historians recognized an important historical material, called Chronicle of the reconstruction of Kyongbok Palace (CRKP), which has been preserved at Waseda University in Japan. Daewongun(DWG), the biological father of the King Kojong, led the reconstruction project, which had been viewed as a national event. Seoul Historiography Institute translated it into Korean this year. This article focused on some issues including the reconstruction process, the way that the project was romanticized and the desire projected onto the palace and neighboring region. The project started in 1865, when DWD was entrusted with powers regarding the reconstruction of the palace. A temporary organization was established. Officially top officials of the government were chosen to the high-ranking post of the organization. Regarding reconstruction project, however, it was a private group called, “18 literati” that backed up the project. The group was virtually an alliance between relatives of DWG and the grand queen dowager. What was critical to DWG was to romanticize this project in the name of Heaven’s will. On the one hand, He claimed that a stone where prophecy had been inscribed was discovered. He also argued that commoners voluntarily joined the project. On the other hand, He asserted that as the original Palace was the symbol of new Dynasty that was established by the Heaven’s will, so was the reconstructed palace. The reason why DWG tried to justify the reconstruction process was because he imagined a new political order that was totally different with the political system maintained for more than 200 years. CRKP clearly shows how his desire for a new political order was expressed inside and outside of the palace. Hundreds of thousands of private houses belonging to the commoners and the privileged were demolished. Even some buildings belonging to a palace called Kyunghee were forced to face the same fate. New public offices, administration offices and even some military agencies were established in the very place where private houses were demolished. On the whole, what DWG intended was to make the reconstructed palace to be the central place for a newly revitalized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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