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 墓誌銘에 나타난 宗親職制 운영
A Study on the Operation Practice of the Official Tittle for Royal Relatives found on Epitaphs in 16th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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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경국대전』의 종친 관련 규정이 법 규정이 만들어진 직후 시점인 16세기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영되었는지 추적한 글이다. 『경국대전』의 종친직 규정은 당시의 사회 관행과는 달리 중국의 종법에 근거하여 부계 친족과 적장자의 지위를 강조하는 법이었다. 당시 종친의 혼인 형태와 가계 계승이 과연 법 규정이 의도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추적하였다. 조선 사회의 친족 구조는 결국 부계 중심으로 구성되게 되는데, 조선의 왕실은 그 선구적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본 연구는 그러한 가능성을 실증적으로 추적하는 시도였다. 본 논문에서 채택한 방식은 16세기 묘지(명) 자료를 이용하여 관련 사실을 추적하는 것이었다. 국왕의 손자와 증손에 해당하는 2-3세대 종친은 연대기 자료에서 잘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마침 공개된 몇 편의 묘지(명) 자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종친의 종친 직 제수 상황과 자녀관계 및 그들의 혼인 대상을 검토할 수 있는 자료이다. 개별 묘지(명)에 개입될 수 있는 미화 혹은 왜곡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본 논문에서는 연대기 자료 외에도 『선원록』 자료를 보완 자료로 활용하였다. 본 논문의 검토 결과 종친 직은 『경국대전』에 규정된 바와 같이 국왕으로부터 4세대에 이르는 시점까지 정6품 이상의 해당 직을 제수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반면에 적장자에 의한 습직 규정은 잘 준수되지 않았다. 적장자 습직을 관철하기 위해 養子를 통한 가계 계승이 가능하였지만, 당시는 妾子가 있는 경우에는 사실상 적장자 습직을 포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아울러 적자와 첩자의 차등 규정은 적처의 신분에 결함이 있는 경우 잘 준수되지 않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뿐만 아니라 세대 간의 降資나 양첩 혹은 천첩 소생의 차등 규정은 4세대 종친 직 제수 원칙을 지키기 위해 포기될 수 있는 사안임을 검토하였다. 즉 4세대까지의 종친은 모두 종친 직 제수의 대상이었고,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세대간의 降資나 출생 신분에 따른 降級의 원칙은 포기되었다. 결론적으로 부계혈족과 적장자의 지위를 강조한 『경국대전』의 종친 직 규정은 16세기 시점에서 안정적으로 운영되지 않았음을 지적하였다. 이 글은 이러한 경향이 17세기 이후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하였다. 부계친 중심의 사회가 형성되었던 17세기 이후 조선 사회에서 종친 직의 운영이 어떠하였는지는 별토의 검토가 필요한 과제로 판단하였다.
Abstract
This article aims at the analysis of the stability of regulations for royal relatives in National Code. The founders of Joseon tried to change the traditional buddhist Koryo into the confucianized Joseon. The treatments for transformation encountered the stubborn resistance from traditional practice. Finally the steading efforts for 200 years and more made Joseon society being confucian. The attempts for change and the resistance keeping tradition showed well what the Joseon society was. The transformation for confucian society changed the family structure of Korea into the parent one type pointing up the paternal line, which keeping up till today. Royal household took the lead of changing toward the confucian society. A study on the official tittle for royal relatives tells the role of royal household for change into being confucianized. National Code(經國大典) in Joseon had the regulations for official tittles only applying to the royal male relatives with the same family name, Lee(李). There were several rules to put emphasis on the paternal relatives, which differed with the convention of daily life in that time. Recently several personnel Epitaphs for royal family members in 16th Century Joseon were introduced through museum exhibition. These showed the different practice with the National Code Regulations for royal relatives. This article tried an attempt to set the epitaphs' content against regulations of National Code and ascertained the unstability of those regulations for royal relatives in 16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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