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非定期 文科의 운영에 관한 몇 가지 검토(Ⅰ) - 別試, 庭試, 謁聖試의 내용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Management of Irregular Royal Examination in the Joseon Dynasty -especially centered on Byulsi(別試), Jeongsi(庭試), Alseongsi(謁聖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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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조선의 비정기 문과 가운에 별시와 정시 그리고 알성시에 관한 연구이다. 위 시험들에 관해 어떤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었는지를 규명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필자가 본고에서 주로 언급한 내용들을 요약하자면, 위 세 시험의 공고일과 시험일 사이의 간격이 어떠하였는지, 이들 시험을 운영하면서 외방 유생의 참여를 의도적으로 제한하려는 시도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목적에서 별시 초시도 서울에서만 실시했는가 하는 점들이었다. 필자는 조선 정부가 위 시험들을 운영하면서 외방유생들의 참여를 제한하고 서울 유생만을 주로 참여시키려고 한 예를 발견하지 못하였으며,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는 점도 강조하였다. 이는 별시와 정시 그리고 알성시를 포함한 조선의 비정기 문과가 기본적으로 同慶과 慰撫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慶科요, 慰撫科였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경과란 궁중에서 어떤 경사가 발생하였을 때 그 경사의 기쁨을 양반 유생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치르는 시험을 말하며, 위무과란 양반 유생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개설하는 시험을 말하는데, 이런 시험을 운영하는 데 있어 어느 특정 지역의 참여를 차단한다면 그것은 시험을 마련하게 된 본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위 시험들을 운영할 때면 언제나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두었고 그래서 전국의 모든 유생들이 참여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또 조선의 비정기 문과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대해서도 이제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점도 역설하였다. 조선의 역사를 연구한 분들 거의 모두 비정기 문과를 인재채용의 시각에서만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올바른 해석이 아니다. 만약 인재채용만을 목적으로 하였다면 시험의 종류가 그렇게 다양할 필요가 없었고 또 그렇게 자주 시험을 볼 필요도 없었다. 그저 한 가지 종류의 시험을 일 년에 한 번 정도만 보아도 충분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시험장도 훨씬 더 엄격하게 관리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Abstract
In this paper I have explained some remarkable feature on the irregular royal examination in the Joseon Dynasty. For example, how is the distance between announcement day and examination day? Was there any attempt to exclude the rural people? Was the first test in Byulsi(別試), a sort of irregular royal examination open only at capital to prevent the attendance of rural people?But I finally have noticed that there was no policy to discriminate the non-capital people or to give special treatment to capital people. Why? Because most of irregular royal examination had the character for sharing the pleasure of Royal Family with the upper class and for comforting the intimidated person. If, in the implementation of irregular royal examination, government tried to block some one, they should have a complaint to that. And then the purpose of that test would be down at the meaninglessness. I also have mentioned that we should change our point of view to the irregular royal examination. All who has studied on the Joseon Dynasty consider the irregular royal examination as a recruiting system. But this is not right. If so, there was no reason to diversify of examination, to open it so frequently. Only one sort of examination, one time in a year should be good. And management system would be more rigor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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