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기 人工養蠶會社와 蠶業課試驗場
A Case Study on the Daehan Empire Artificial Sericulture Company and the Experimental Station of the Department of Seri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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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899년 말 김가진, 서병숙 등에 의해 설립 경영되었던 大韓帝國人工養蠶合資會社(이하 인공양잠회사)와 이 회사의 주요 인물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던 농상공부 蠶業課試驗場(이하 시험장)의 설립과 운영 실태를 검토한 글이다. 이 회사의 주도 인물들은 대체로 독립협회와 긴밀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던 개화파였다. 당시 독립협회에 참가한 개화파 관료들은 민간자본을 활용한 회사 설립, 산업발전에 중점을 둔 상공업진흥정책을 추진하면서 현직 관료로서 직접 민간회사를 설립하고 경영에 참여하고 있었다. 인공양잠회사는 경영 초기 인공양잠전습소를 회사 내에 설치하고 이를 통해 양잠인력의 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전습소는 단순히 회사 내에 필요한 인력 양성에 한정하지 않고, 오히려 전국적으로 양잠기술을 전파할 인력 양성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이 시기 민간회사 설립을 통한 경제발전을 추구한 개화파의 정책 구상이 이 회사의 경영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전습소의 기능은 곧이어 농상공부 산하에 신설된 잠업과시험장에 계승되었다. 잠업과는 양잠인력 배출을 비롯한 각종 잠업진흥정책을 추진하여 전국 각지에 다수의 민간 양잠회사, 사설 잠업시험장을 설립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인공양잠회사와 잠업과시험장의 잠업진흥정책은 결국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다. 여기에는 인공양잠법이 갖고 있는 양잠기술상의 문제, 근대산업육성정책의 주도권을 둘러싼 국내 정치세력간의 대립, 그리고 일제의 한국 경제침탈정책이 그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인공양잠회사는 1907년 공식 해산을 맞았고, 잠업과시험장은 일제의 한국농업침탈기구의 첨병인 勸業模範場의 산하기구로 흡수되고 말았다.
Abstract
This paper is a case study of the history and management of the Daehan Empire Artificial Sericulture Company (hereafter DEASC) established by Kim Ga-jin and Seo Byeong-suk, as well as the operation of the Experimental Station of the Department of Sericulture (hereafter ESDS). The key figures in the DEASC were members of the Enlightenment Party [Gaehwapa], which was closely connected with the Independence Club [Dongnip hyeophoe]. At the time, Enlightenment Party officials pushed the policy of commercial and industrial promotion by using private capital to establish companies and develop industries. In addition, they personally participated in the establishment and management of these private companies. Initially, the DEASC created the Artificial Sericulture Learning Center within the company and focused on educating workers on proper sericulture techniques. The objective of the learning center was not only to train workers for the company, but also to prepare the necessary human resources to widely disseminate the new sericulture procedures. The management of the DEASC was influenced by Enlightenment Party ideas of pursuing economic development through the establishment of private companies. The function of the learning center was passed to the Experimental Station of the Department of Sericulture, which was organized within the Ministry of Agriculture, Commerce, and Industry [Nongsanggongbu]. The Department of Sericulture implemented various policies to promote the sericulture industry, such as dispatching sericulture technicians into the field. These policies resulted in the establishment of a number of private sericulture companies and private sericulture experimental stations. However, the sericulture promotion policy of both the DEASC and ESDS ended in failure. The main reasons for the failure included the inherent limits in artificial sericulture techniques, internal conflict between domestic political factions over the industrial promotion policy, and Japanese policies of interference in the Korean economy. The DEASC officially dissolved in 1907 and the ESDS was absorbed into the Japanese Agricultural Experimental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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