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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내포지역 유학자의 역학관(Ⅰ)

朝鮮後期內浦地域の儒學者の易學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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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철학

초록

본고는 朝鮮後期 內浦地域에 거주하면서 老論系를 이끌었던 湖西 山林의 宗匠인 南塘 韓元震(1682~1751)의 易學에 대한 고찰이다. 南塘은 전통주자학적 질서가 瓦解되어가는 시기에 태어나 전통적 질서의 철학적 기반인 주자학의 회복을 외친 內浦地域을 포함한 호서지역 최후의 山林이었다. 그는 평생 동안 출사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오로지 경학 공부를 통한 성현의 삶을 좇고자 하였다. 이러한 그의 학문목표는 스승의 권유도 있었지만 남당 당시 행해진 두 차례의 옥사(갑술옥사신임옥사)가 그의 학문목표를 수정케 한 것이었다. 그 결과 그의 문집은「經義記聞錄」과「朱子言論同異攷」를 비롯한 당대의 주자학을 존신하는 경학 관계 저술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특히 역학과 관련한 저술이 현저히 많은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기존의 남당에 대한 연구경향을 살펴보면, 湖洛論爭의 연장선상에서의 연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남당학문의 근본문제라 할 역학을 소홀히 취급한 결과요, 또한 그의 인물성이론의 철학적 근거가 역학에 있음을 간과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본고는 남당학문의 존재론적 검토를 시도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물성동이론과 같은 심성론을 해명하는데 있어서는 반드시 모든 존재의 존재근거가 되는 天道地德의 문제를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명하는 것을 ‘존재론적 검토’라고 한다. 남당학문의 존재론적 검토는 ‘河圖’에 대한 해석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나 종래의 전통역학에 있어서 ‘河圖’에 대한 평가는 저차원에서 머물렀다. 즉 한대이후 하도에 대한 평가는 옛날부터 周室에 전승된 옥석류이거나 膏露와醴泉鳳凰 등 성인 출현의 瑞祥的 성격을 갖는 神物로 간주되었다. 이는 ‘하도’의 역철학적 의의를 망각한 결과다. 이러한 ‘하도’에 대한 평가는 왕필에 의하여 상수역학이 불식된 이래 주자에게도 그대로 이어져『주역』을 점서로 오인하는 역학사에 있어서 일대 혼란을 초래케 했던 것이다. 물론 남당역시 전통역학의 해석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남당의 ‘하도’에 대한 전통역학의 해석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이유는 남당 자신이 호서지역 가운데 충청도 내륙지역과는 또 다른 지역적 특성을 갖는 ‘내포지역’에 거주하면서 우암이래 전승되어 온 기호학맥의 최후의 보루였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학계는 이미 서울과 지방과의 격차를 더욱 더 벌려 놓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산림의 지위는 말할 수 없이 격감되었다. 이러한 서울과 지방사이의 학계의 격차는 당시의 대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당은 급변하는 학계에 외로이 서서 전통적 질서의 근간인 주자학의 회복을 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학문 활동의 결과, 즉 역학에서의 ‘하도’에 대한 개인적인 소신은 주자의『역학계몽』에 의거하여 피력하고, 그 결과로 12개의 도상을 그려내고 있다. 이에 본고는 남당의 ‘하도’ 도상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그의 역학관(선후천관, 서괘의 배열원칙 등)을 살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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