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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臣保, 鄭仁卿 父子의 行蹟과 충남 서부지역의 유학

How the Achievements of a Father and Son, Jeong Shinbo and Jeong Ingyeong, Impacted the Confucianism of the Southern Chungnam Prov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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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철학

초록

鄭仁卿(1267~1305)은 13세기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유학자로서 탁월한 무인이자 외교관이다. 그의 부친 鄭臣保(?~1271)는 남송 절강사람으로 1237년 몽고의 침입으로 송이 망하자 不事二君의 의리를 지켜 고려국 간월도에 망명한 유학자이다.그런데 이들에 관한 연구는 일부 재야 향토사학자들과 문중 차원에서만 연구되었을 뿐 학계의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본고는 이들 정신보, 정인경 부자의 행적을 검토해 보고, 이들과 연관하여 고려 후기 충남 서부지역 유학자들의 활동과 성리학 수입기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 검토해 보고자 한다. 정인경은 어려서 부친으로부터 성리학을 배운 것으로 보이며, 당시 유학자 韓自喜로부터 수학하였다. 그는 무인으로서 19살의 나이에 마별초에 들어가 몽고군을 기습 공격하여 무공을 세웠고, 1269년에는 원종의 아들 태자 諶(충렬왕)의 호위무관으로 연경에 다녀오다 權臣 林衍의 반란소식을 듣고, 이를 지혜롭게 처리하여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였으며, 1290년에는 哈丹軍의 침략을 막아내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외교관으로서도 탁월한 업적을 남겼으니, 1282, 3년 연경을 방문해 원나라에 인질로 끌려간 수많은 포로들을 데려왔으며, 1290년 오랜 노력 끝에 東寧府를 고려에 복속시키고, 이어 탐라를 고려에 복속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다음 정신보의 유학사적 위치에 대해 검토해 보기로 하자. 여러 문헌을 통해서 볼 때 정신보가 남송의 성리학자로서 고려국 간월도에 망명한 사실은 분명하다. 특히 그는 당시 남송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였던 姚樞, 趙復에 의해 원 태조를 도와 원의 조정에서 함께 일할 것을 권유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고려에 망명하였다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남송에서의 정신보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며, 그가 고려에 망명하여 아들인 정인경에게 성리학을 전수하였을 것임은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울러 이 지역의 유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더욱 뒷받침할 구체적인 근거가 빈약하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이는 1290년 安珦이 원나라에 가서 주자학을 수입한 것과 비교할 때 선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 충남서부지역 홍성, 서산, 보령, 서천에는 많은 유학자들이 활동을 하였고, 이들이 성리학 수입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즉 서산의 鄭臣保, 鄭仁卿 부자를 비롯하여, 보령 남포의 白正은 원나라에 10여 년간 유학하고 돌아와 성리학을 전파하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서천 한산의 李穀, 李穡 부자는 고려 말 성리학의 전파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그밖에도 홍성의 李起宗, 홍성 결성의 張夏, 서산의 柳淑과 柳方澤, 柳伯濡, 柳伯淳 부자도 이 지역의 유학자로서 크게 활약한 바 있다. 이렇게 볼 때, 정신보, 정인경 부자와 함께 당시 성리학의 전파를 위해 노력한 충남 서부지역 유학자들의 활약에 대해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Abstract

Jeong Ingyeong(1267-1305) was a distinguished Confucianist, military man, and diplomat. His father, Jeong Shinbo(?-1271) was from Chekiang and lived during the time of the Sung dynasty. Jeong Ingyeong came to Ganwol Island, Koryo as an exile because he did not want to serve the new emperor after the Sung dynasty was overthrown by the Mongols in 1237. Although he was asked to serve the Yuan dynasy by the prominent Confucian scholars of the time, Yo chu, and Jo bok, he refused to, choosing instead to live in exile. Considering these events, Jeong Shinbo’s general status in the Sung dynasty can be assumed. It can be presumed he taught his son, Jeong Ingyeong Neo-Confucianism. This is quite significant even though historical evidence is lacking, because officially it is known that Ahn Hyang was the first person from the Yuan dynasty to introduce Neo-Confucianism. Around the time Neo-Confucianism was introduced, the achievements of Confucian scholars of the Southern Chungnam area such as Baek Ejeong, Lee Gok, Lee Saek, Chang ha, Lee Gijong, Yu Suk, Yu Baekyu, Yu Baeksun also made a significant impact on the history of Korean 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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