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近代女性吳孝媛的中國體驗與詩作
On a Poetess Oh Hyo-won's Poetry and China Experience in Moder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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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吳孝媛은 조선말기 여류시인으로 평생 독신을 고수하며 서방 기독교의 관념을 수용하였고 당시 여성들에게 남성과 동등한 교육의 권리를 부여하기 위해 명신여학교를 건립하여 근대 여성 교육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본 논문은 선행연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오효원의 중국생활과 시가창작을 연구 과제로 삼아 오효원의 생평과 중국에서의 사회활동을 상세하게 고찰하였고, 오효원과 중국문인과의 교유 및 중국여행을 탐색하는 동시에 오효원의 중국인물에 대한 비평과 중국에서 느낀 민족의식을 살펴보았다. 오효원은 자국에서 폭넓은 대인관계를 통해 시인으로 교육자로서 성취를 이루었는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갔다. 오효원은 천하의 奇聞과 壯觀을 접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자신의 무대를 동아시아로 확대하여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였다. 오효원은 28세에 학생신분으로 상해에 가서 2년간 거주하였다. 그녀는 중국의 유명한 도시와 명승고적을 유람하고 詩詞를 창작하고 중국의 유명한 시인들과 교류하며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가담하였다. 詩書畵大會의 간사를 역임하였고 申新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중국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오효원은 袁世凱의 둘째 아들인 袁寒雲과 다섯째 아들인 袁百納 그리고 근대 사상가인 梁啓超와 詩詞를 주고 받았고, 원세개의 시중인 廉南湖와 그의 처인 吳芝瑛과 친분이 두터웠는데 吳芝瑛은 근대 여성혁명가인 秋瑾의 절친한 친구였다. 오효원은 廉南湖의 집에서 중국 근대의 대표적인 여성인 여벽성과 역사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여벽성은 오효원에 대한 강한 인상과 평가를 시에 표현하여 근대 한중여성 문인간의 교류를 시사하였다. 오효원은 萬里長城 · 燕京 · 上海 · 赤壁 · 阿房宮 · 杭州 · 西湖등 도시와 명승고적을 유람하며 자신이 느낀 감개를 문학창작에 표현하였고, 중국의 역사적인 인물인 伯夷 · 叔齊 · 屈原 · 管仲 · 荊軻 · 諸葛亮 · 西太后에 대해 주관적으로 비평하였다. 오효원은 한국과 중국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있었고 , 작품속에서 강렬한 민족의식을 표출하였다. 그녀는 명나라 사신인 채무가 봉황성에서 피살된 사건에 대해 애도를 표하는 동시에 심양에서 병자호란을 회상하며 조선 인조의 청나라에 대한 굴복과 치욕을 통탄하고 처형된 三學士의 저항정신과 충절을 기념하였다. 오효원의 중국체험과 시 창작을 통해 근대 한중교류사의 단서를 파악할 수 있고 한중 여성의 문학창작과 여성의식을 심도있게 파악할 수 있다. 오효원은 한국의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여성작가로 방대한 문학작품을 창작하여 한국의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량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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