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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승려상 10구, 십대제자상(十大弟子像)인가?

Are the Images of Ten Monks at Seokguram Those of the Ten Principal Disciples of the Budd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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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미술

초록

이 글은 석굴암(石窟庵) 주실의 10구 승려상이 ‘십대제자(十大弟子)’가 맞는가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지금까지는 승려상의 수가 10구이니 큰 의심 없이 십대제자상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석가모니의 십대제자를 표현할 때는 예외 없이 가섭(迦葉)과 아난(阿難)을 부처 좌우에 두었는데, 왜 석굴암의 10구 승려상은 이를 따르지 않았는지, 가섭과 아난을 좌우에 배치하지 않아도 이들을 십대제자로 볼 수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필자는 석굴암 10구 승려상이 ‘십대제자상’이 아니라 불법(佛法)을 전하는‘행도승(行道僧)’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 해석은 석굴암과 같은 시기인 8세기 중국에는 ‘불법을 전하고 다니는 행도승’의 시각 전통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10구 승려상이 걸어가는 모습 및 입구 쪽 좌우의 나이 든 승려상이 손에 ‘전법(傳法)’을 상징하는 ‘손향로’를 들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동시에 ‘행도(行道)’가 요당(繞堂), 요불(繞佛)과 같은 의미로 부처를 예배, 공양하기 위해 부처의 주위를 우요(右繞)하는 행위를 포함한다는 점도 중요한 판단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8구 승려상 역시 우요하는 형상이며, 손에는 손향로를 들고 있어 이 역시 8세기 통일기 신라 행도승의 실체를 알려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석굴암 주실 주벽의 10구 승려상을 조각하면서, 석굴암 제작자가 의도한 것은 8세기 중국 유명 화가들이 선호하는 주제였던 ‘행도승’이었다고 추정된다. 그렇다면 왜 10구인가? 이에 관해서 필자는 의상(義相, 625-702)계 화엄(華嚴)이 주목했던 ‘十’에 주목했다. 화엄에서 숫자 ‘十’은 특별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화엄 신앙은 ‘십’이라는 원만수(圓滿數)를 기준으로 모든 교리를 체계화했다. 석굴암이 조영되던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765)대에 화엄사상(華嚴思想)은 신라 불교계의 중심에 있었다. 재상이었던 김대성(金大城)은 의상의 제자인 표훈(表訓, ?-?)에게서 의상계 화엄사상을 배웠으며, 의상계 화엄학파의 거점 사찰로서 불국사(佛國寺)와 석굴암을 창건하였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본존상 뒤에 배치된 10구의 승려상, 그 위의 10개의 감실(龕室) 역시 『화엄경(華嚴經)』에서 완전한 수로 여기는 ‘십’을 의도한 것이라고 봤다. 10구의 승려상은 불법을 세상에 전하는 ‘행도승’을 화엄의 완전한 수인 ‘10’에 맞춰 조성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Abstract

This study begins with the question of whether the ten monk images in the main hall of Seokguram are those of the ‘ten principal disciples of the Buddha.’ Until now, the number of monk images is ten, so they have been considered the images of the ten principal disciples with no doubt. However, in East Asia, Ka-s ́yapa and A-nanda were placed to the left and right of Buddha with no exception when visually representing the Ten Principal Disciples of S ́a-kyamuni Buddha. It is questionable why the ten monk images at Seokguram did not follow this iconographic principle and whether they could be viewed as those of the Ten Principal Disciples without placing Ka-s ́yapa and A-nanda on the left and right sides. I assume that the ten monk images at Seokguram are not images of the ‘Ten Principal Disciples’ but those of xingdaoseng (itinerant Buddhist monks) who are always on the move to convey the Buddha-dharma. In eighth- century China, at the time when Seokguram was constructed, the theme of the xingdaoseng who made a pilgrimage to pursue the Buddha-dharma gained popularity in painting. There is a picture of ten monks walking. It is interesting to note that the old monks on each side of the entrance at Seokguram hold an ‘incense burner with a handle’ which symbolizes the ‘dharma- transmission.’ It must also be noted that the meaning of xingdao includes the act of ‘circumambulating the Buddha’ in order to worship and honor him. The eight monk images in the Gyeongju National Museum show the scene of circumambulation of the Buddha to the right. That each monk is holding the incense burner with handle is also indicative of the existence of the Korean xingdaoseng in the Unified Silla Kingdom. For this reason, it is assumed that while carving ten monk images on the wall of the main hall of Seokguram, the Seokguram creators seem to have intended to create images of xingdaoseng. The xingdaoseng was one of the most popular Buddhist themes in painting in eighth-century China. In all likelihood, the creators of Seokguram must have been aware of the xingdaoseng iconography. And if so, why are they ten? I have noticed the role of the Uisang (625- 702) sect in the Hwaeom (Ch. Huayan, Avatamsaka) school emphasizing the symbolic significance of ‘ten’ in teaching Mahayana Buddhism. In the Hwaeom tradition, the number ten is of special importance. As is well known, the Avatamsaka faith organized all the doctrines based on the perfect number ten. In the era of King Gyeongdeok (r. 742-765) when the construction of Seokguram was being prepared, Hwaeom thought was at the heart of the Silla Buddhist world. Kim Daeseong, who was the premier under the king at the time, learned and advocated Uisang’s Hwaeom thoughts from Pyohun, a disciple of Uisang. The Bulguksa Temple and Seokguram were founded as the principal temples of Uisang’s Hwaeom school. For this reason, the ten monk images placed behind the main Buddha image at Seokguram and the ten stone niches above them reflect the idea of the perfect number ten in the Avatam. sakasu-tra (Flower Garland Sutra or Garland Scripture). In conclusion, the images of ten monks at Seokguram are those of xingdaoseng (itinerant Buddhist practitioners). The images of ten monks were created in line with the symbolic meaning of the perfect number ten that was greatly emphasized in Hwaeom thought and t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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