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後期 서울·경기지역 熾盛光如來降臨圖 硏究
朝鮮後期 ソウル ․ 京畿地域 熾盛光如來降臨圖 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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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옛부터 국가는 물론 민간에서 염원을 빌고자 할 때 해와 달을 비롯하여 북두칠성 등에 치성을 드렸다. 이러한 성수신앙은 삼국시대부터 불교국가를 표방했던 고려시대로 계승되고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이어져 오면서 성수를 대상으로 하는 많은 작품들이 제작되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치성광여래도이다. 치성광여래도는 북극성·북두칠성·이십팔수 등을 불격화하여 나타낸 그림으로 당시 사회·신앙적 경향까지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치성광여래도는 북극성을 의미하는 치성광여래를 본존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후기 불화의 화기에 의해 「칠성도」·「칠성불화」 등의 다양한 이명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조선전기 몇몇 작품의 화기에는 치성광여래를 본존으로 하고 있는 작품을 「치성광」이라 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필자는 치성광여래를 본존으로 하는 작품에 대하여 ‘칠성’ 보다는 ‘치성광’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이 합리적이라 판단하여 본 논고에서는 「치성광여래도」라 통칭하도록 하겠다. 이와 같은 치성광여래도는 크게 강림도 형식과 설법도 형식으로 대별되는데 강림도 형식은 도상구성 요소로 소 또는 수레를 표현함으로써 본존인 치성광여래가 이동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반면, 설법도 형식은 조선후기 일반적인 다른 주제의 불교회화와 동일하다. 이 가운데 강림도 형식의 작품은 고려시대부터 그 사례가 찾아지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조성되어 왔으나 조선후기에는 이전 시기의 도상과는 다른 차별성을 보인다. 치성광여래도는 중국에서부터 도상이 찾아지며 고려시대·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제작되었다. 중국 작품의 경우 치성광여래가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있으며 「범천화라구요」, 「칠요양재법」 등을 근거로 한 오성이 반드시 도해되어 있는데 이는 14세기 추정 보스톤 박물관 소장 「치성광여래강림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소가 끄는 수레를 탄 치성광여래가 오성과 함께 표현된 작품은 이후 1569년 고려미술관 소장 「치성광여래강림도」·1644또는1704추정 수도암 「치성광여래강림도」에서도 발견되어 조선후기까지 고려시대의 도상이 이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작품들의 치성광여래는 오성과 함께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있으며 검지 손가락을 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는 모습으로 마치 강림하려는 듯한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도상구성 요소인 소 또는 수레가 표현된 치성광여래강림도는 수도암 작품이 제작된 이후, 약1~2세기 만인 19세기 중반부터 서울·경기지역에서 집중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세기에 제작된 치성광여래강림도는 수도암 작품 이외에는 모두 오성이 생략되어 있고 칠여래·칠원성군·이십팔수 등의 성수가 새롭게 등장하여 도상구성 요소에서 차이를 보였다. 하물며 화면구성 또한 일반적인 설법도 형식에 소 또는 수레만을 등장시키고 있을 뿐이다. 소 또는 수레 표현에 대한 근거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 없으나 이 표현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도상으로써 그 의미는 매우 크다. 이러한 조선후기 치성광여래강림도는 화사의 화연관계를 통하여 미타사 유형·화계사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미타사 유형은 도상의 공유로 구분하였다. 이 유형은 동일 도상에 의해 제작된 작품을 다수 포함하고 있었는데 흥선대원군의 원찰인 흥국사에서 화연관계를 맺은 이들에 의해 조성되었다. 서울 봉은사의 경우 성종과 중종을 위한 사찰이었고 직지사 작품 역시 경상도에 위치하고 있긴 하나 봉은사 작품과 동일한 도상으로 상궁이 발원한 작품이었다. 이는 19세기 중·후반 치성광여래강림도 도상이 서울·경기지역에서 창출되어 지방으로 확산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동시에 당시 서울·경기 지역의 발원자 계층이 지방에까지 퍼져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단서가 된다. 그리고 화계사 유형은 도상의 변용을 기준으로 구분하였다. 화계사는 흥선대원군에 이어 신정왕후·효정왕후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불사되어진 사찰로 왕실과 상당히 관련이 깊었다. 당시는 호불성격의 정책으로 인해 왕실의 비빈이나 상궁들이 다수의 불사를 행하면서 서울·경기지역에서는 다수의 불화가 조성되었다. 때문에 이 시기에 제작된 서울·경기지역 치성광여래강림도는 당시 정세의 변화를 가장 먼저 경험하는 조선왕실의 성격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 여겨지므로 시기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겠다. 더불어 원각사지십층석탑은 세조대 왕실의 후원으로 완공되었으며 원의 영향을 받은 경천사지십층석탑을 모본으로 제작되었다. 원각사지십층석탑에 나타난 소재회 변상은 불화불사 이외 서울·경기지역에서 조성된 또 하나의 강림도상 자료로써 19세기 서울·경기지역 치성광여래강림도와 소의 표현 및 권속의 배치 등 전체적인 구도가 유사하다. 이는 서울·경기지역에서 활동한 화사 내지는 발원자 집단이 이 탑의 변상에 대한 인식이 있었을 가능성을 나타내는 사례가 된다. 비록 삼면육비가 등장하고 권속의 수가 차이를 보이지만 이 변상에 대해서는 의미를 갖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후기 치성광여래강림도는 화면구성을 비롯하여 도상구성 요소가 이전시기와는 차이를 보였으나 1~2세기만에 서울·경기지역에서 집중 제작되기 시작한 이들 작품에 소가 표현되어 전통을 잇고 있으며 서울·경기지역에서 창출되어 지방으로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Abstract
熾盛光如來図は北極星を意味する熾盛光如來を本尊で七如来·二十八宿などの星たちを形象化し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朝鮮後期には「七星図」 だと呼んで来た. 七星図という名称がたとえ朝鮮後期仏画の畵記による名称ではあるが朝鮮時代いくつかの作品を通じて 「熾盛光」 という名称を確認した. いっしょに一図像の中に本尊で登場している場合には ‘七星’ よりは ‘熾盛光’という用語を使うのがより合理的と思う. 熾盛光如來降臨図は熾盛光如來が牛車に乗って雲尾が捩れた雲に乗って降臨している図像た. 中国作品の場合 「梵天火羅九曜」, 「七曜讓災法」 などを根拠で 五星が必ず図解されているのにこれは高麗時代 14世紀推定ボストン博物館所藏 「熾盛光如來降臨図」でも捜してみることができた. このような高麗時代作品の図像は中国の影響を受けた可能性があった. 以後 1569年高麗美術館所藏 「熾盛光如來降臨図」·1644又は1704推定修道庵 「熾盛光如來降臨図」がボストン博物館所藏作品の図像と非常に似たり寄ったりで朝鮮時代にも高麗時代の図像がつながっていたことを分かった.しかし修道庵作品以外朝鮮後期熾盛光如來降臨図は五星が消えて七如来·七元星君·二十八宿などの星宿が登場した. だけでなく一般的な説法図形式に牛または車のみを登場させるとか雲の表現などを異にするなど多様な形式の熾盛光如來降臨図が製作されたりした. このなかに古くから続いて来た図像要素である牛または車が表現された熾盛光如來降臨図は修道庵作品以後約100~200年ぶりの19世紀中·後半ソウル·京畿地域に製作され始めた. したがってソウル·京畿地域で製作された熾盛光如來降臨図を畵師交流を通じる図像の共有と変容を基準で彌陀寺類型·華渓寺類型で区分してよく見た. 彌陀寺類型の場合にはソウル·京畿地域で活動した畵師が地方に移動するとか畵師交流によって同一図像に製作した作例があった. これは19世紀中·後半熾盛光如來降臨図像がソウル·京畿地域で創出されて地方で拡散したことを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根拠になる.また彌陀寺類型の場合奉恩寺が成宗·中宗のための寺刹だったし直指寺作品が尙宮發願だったし,華渓寺類型の場合華渓寺作品が尙宮天眞華が發願した.当時王室·尚宮たちは好佛性格の政策で多数の佛事を行ったがソウル·京畿地域で製作された熾盛光如來降臨図は当時情勢の変化を一番先に経験する朝鮮王室の性格を反映したので時期性を持つと言えるだろう.しかし朝鮮後期熾盛光如來降臨図は説法図に比べて作品事例がめっきり減る傾向を見せる.それなら降臨図形式の作品が製作されなくなった理由は何だろう?確かに熾盛光如來図が降臨図形式と説法図形式で分けられたことには確かに理由があるでしょう. 空の星宿たちは人々が子孫繁栄·災難救済などを念願する時その対象になって来たから熾盛光如來が直接降臨して彼らの念願を聞き入れるという意味を付与しながら降臨図形式に製作されたはずと思われる.すなわち,降臨図像は画面内牛または車を表現して動きを意図することでより積極的な姿勢に製作されられたのだ. 牛または車表現に対する根拠はないがこの表現は高麗時代から朝鮮時代までつながって来た図像構成要素として非常に重要な意味を持つ. いっしょに圓覺寺址十層石塔は世祖代王室の後援に完工されたし元の影響を受けた敬天寺址十層石塔を模本に製作された. 圓覺寺址十層石塔に現われた消災會變相は仏画仏事以外ソウル·京畿地域で造成されたまた一つの降臨図像資料で 19世紀ソウル·京畿地域で製作された熾盛光如來降臨圖と牛の表現及び星たちの配置など全体的な構図が似たり寄ったりだ. これはソウル·京畿地域で活動した畵師あるいは發願者集団がこの塔の變相に対する認識があった可能性を現わす事例になるという点でも意味ありげによく見る必要が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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