霞谷 鄭齊斗의 致良知說의 弊 비판에 관한 재검토
Review of Hagok(霞谷) Jeung Jedu(鄭齊斗)'s criticism of Wang yang-ming(王陽明) Chiyangji theory(致良知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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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霞谷 鄭齊斗(1649~1736)의 사상 전개상에 보이는致良知說의 弊비판 시기를 재검토해보려는 것이다. 2004년 10월 15일〜16일 양일간 강화도의 안양대학교(강화캠퍼스)에서「강화양명학파의 위상과 현대적 의미」라는 주제로 열린 『강화양명학파 국제학술대회』에서 中純夫 교수(일본⋅京都府立大學文學部)는 그의 발표문 「初期江華学派における陽明学受容―霞谷・恒斎・樗村―」(239〜241쪽)에서, 종래 국내 연구에서 추정해온致良知說의 弊비판 시기에 의문을 던지면서 나름대로의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문제제기된 적이 없는 것이며, 더욱이 종래의 하곡학 연구 성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발언이라고 판단된다. 따라서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에 대한 객관적인 재검토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예컨대 종래 국내의 연구에서도 中純夫씨가 제기한 일부 내용에 대해서 단편적인 언급은 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검토는 하지 않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내용들을 다시 한번 짚어보는 방식으로 中純夫씨가 제기한 문제의 타당성을 재검토해본다. 윤남한과 유명종은 하곡이 양명의 치양지설 비판을 하곡의 만년으로 보고 있다. 이 이후 이것이 거의 정설화 되었다. 이렇게 해서 하곡의 사상을 우경화, 우파적으로 변형되었다는 일종의 추정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을 토대로 필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고자 한다. 첫째, ‘양명 치양지의 폐에 대한 비판 내지 평가’는 「존언」 저술 시(43세경)에 ‘23세경에 이루어진 꿈의 기억’과 더불어 기록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다만, 「존언」이 하곡의 만년 혹은 죽기 직전까지 ‘계속 보완되었다’고 한다면 이 추정 또한 변경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任情縦欲之患」에 자극받아 하곡의 양명학 이해는 결과적으로 중국, 혹은 일본 양명학과 다른 「良知體用論」을 구상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그의 독특한 「良知體用圖」로 구체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만년까지 양명학 이해를 유지하도록 하는 기본틀로서 작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하곡의 良知體用論的 양명학 이해는 중국과 일본에서 볼 수 없는 독자적인 사색의 유형을 보여주는 것이라 평가해도 좋을 것 같다. 앞으로 하곡의 연보적, 사상적 자료가 새롭게 발굴될 가능성도 있으며, 이에 따라 하곡의 양명 치양지설 비판에 따른 양명사상 체계 변화 또한 새롭게 평가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Abstract
本稿は霞谷鄭齊斗(1649~1736)の思想展開上における現れた‘致良知說の弊批判時期を再檢討するものである。 2004年10月15日〜16日兩日間江華島の安養大學校(江華キャンパス)にて「江華陽明學派の位相と現代的意味」という主題で開かれた『江華陽明學派國際學術大會』において中純夫敎授(日本⋅京都府立大學文學部)は發表文「初期江華学派における陽明学受容―霞谷・恒斎・樗村―」(239〜241頁)において從來國內硏究で推定されて來た‘良知說の弊批判時期に疑問を抱きながら自分の見解を提示している。これはこれまで國內で‘本格的’には問題提起されたことのない、しかも從來の霞谷學硏究成果にも影響を与えうる發言であると判斷できる。したがって、霞谷硏究者の一人としてこれに関する客觀的な再檢討の必要性を感じるようになった。 勿論, たとえば、從來國內の硏究においても中純夫氏が提起したような一部の內容については 斷片的な言及はしてあるものの本格的な檢討には至っていない。本稿ではこいった內容を再檢討する形で中純夫氏の提起した問題の妥當性に迫ってみたいのである。 尹南漢氏や劉明鍾氏は、霞谷の陽明致良知說批判を彼の晩年と見なしている。それ以後これは定說化す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これに基づいて霞谷の思想が右傾化, 右派的に變形されたという一種の推定がなされて來た。しかし、これまで議論された內容を基に筆者は次のような 結論に至るようになった。 第一、‘陽明致良知の弊に對する批判乃至評價’は「存言」著述時(43歲頃)に‘23歲頃になされた夢の記憶’とともに記錄されたと推定される。ただ「存言」が霞谷の晩年あるいは彼の死ぬ直前まで‘繼續的に補完された’とすると、この推定は變更することもできる。 第二に、「任情縦欲之患」に刺戟された霞谷の陽明學理解は結果的に中國あるいは日本陽明學と特色を異にする「良知體用論」を構想するようになる。これは、彼の獨特な「良知體用圖」を具體化される方に働いたのである。それから、これは彼の晩年まで陽明學理解を続けるようにした思想的な枠組として働いたと思われる。またこれは霞谷の良知體用論的な陽明學理解は 中國と日本にはみられない彼獨自的思索の類型であると評價してよかろう。 これから、霞谷の年譜的, 思想的資料が新しく發見される可能性もあり、これによって、霞谷の陽明致良知說批判に対する再評價もありうるであ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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