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蹟調査委員會의 계룡산록 도요지군 발굴이력과 조사의 본질
History of excavation and nature of investigation in Kiln Sites on‘Gyeryongsan’ of the Committee on Investigations of Historical S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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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조선조 철화분청사기의 최대 집산지였던 계룡산록 일대 도요지군의 발굴상황에대한 전모를 밝히기 위해, 최초 조사에 착수한 조선총독부 산하 古蹟調査委員會와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조사내역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이 조사가 지니고 있는 본질적 의미를 분석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계룡산록 도요지군은 조선조 중부지역 분청사기의 맥락을 결정짓는 주요한 곳이다. 그러나이 도요지군은 이미 일제강점기를 전후하여 일본인 관료들이 주축이 되어 일대 주요 가마터를 상당부분 훼손시켰다. 1차 발굴이 진행되던 1927년의 조사는 고적조사위원회의 발족과 더불어 총독부박물관의 노모리 켄(野守健)을 중심으로 한 조사원들에 의해 12기의 요지를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는 도굴이 심화된 데다 발굴조사에 미숙했던 일본인 연구진에 의해가마층위가 대부분 교란되었다. 가마층위의 교란은 실제 발굴품의 수습과정과 밀접한 관련이있었다. 즉 계룡산록 도요지군의 조사 본질이 새로운 가마터 발굴 성과를 위한 목적에 있었다기보다, 일제강점 당시 일본인들이 선호하던 분청사기의 무작위적 수습에 주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마터는 심각하게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도 당시의 수습유물에 대한 명확한 근거와 특징을 정리하는데 많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에 시행된 계룡산록 도요지군 발굴은 한국 문화재의 보호, 보존차원에서시작되었지만, 그 본질은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본 연구를 통해 계룡산록 도요지군의 발굴성과는 그 자체가 일제 강점이라는 시기적 상황이 크게 반영된 것이라고 보았으며, 역사적 교훈을 일깨워주는 대표적인 가마터로 인식했다.
Abstract
This study aims to give the whole picture of the excavations of the ceramic kiln sites at the foot of Gyeryongsan that was the biggest gathering and distribution hub for Chulhwa-Buncheong ceramics in the period of Chosun dynasty by analyzing the report from the Historic Remains Investigation Committee affiliated to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and the Museum of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which made the first investigation, and by examining the intrinsic meaning of the investigation report, based on the analyzed result. The Gyeryongsan kiln sites played the decisive role in determining the future of the Buncheong ceramics in the central part of Korea in the period of Chosun dynasty. However, the major sites were considerably damaged by Japanese officials before and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occupation. The investigation of 1927 when the first excavation was being advanced began when Nomori Ken and other research staff at the Museum of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discovered 12 kiln sites after the Historic Remains Investigation Committee had been set up. However, most of the layers of the sites was disturbed by increased grave robbery at that time and the unskilled Japanese investigators. The disturbed layers was closely related to the process of collecting artifacts. Their main purpose was to indiscriminately collect Buncheong ceramics that Japanese people liked rather than to achieve the proper result of the unprecedented excavations, which inevitably led to the destruction of the kiln sites. For this reason, there are still severe limitations on clarifying the proofs and characteristics about the retrieved artifacts. These excavations in the period of Japanese occupation began on the pretext of preserving Korean cultural assets, but it can be construed as a part of Japan's cultural policy. In this study, the result from the excavations of Gyeryongsan kiln sites is viewed as one that largely reflected the situation under the Japanese occupation, and the kiln sites are considered as a classic example of a kiln site from which we could learn lessons of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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