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 동아시아세계 약용식물 인삼(人蔘)의 가공과 유통 -조선의 대명(對明) 진헌인삼을 중심으로-
Processing Method & Distribution of Medicinal Plant Ginseng in Early Modern East Asia -Focusing on Ginseng as a Tribute Item of Joeseon to the Ming Dynasty-
0
조회
0
다운로드
5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인삼은 한반도를 대표하는 약재로서, 조선시대 동아시아 최고의 상품적 가치를 점하였다. 그러나 그간 인삼사 관련 연구는 조선 인삼의 위상이 크게 알려지게 된 조선-명 관계 시기를 구체적으로 주목하지 않았다. 더욱이 명 황실 조공품 중 빼놓을 수 없는 약재였던 조선인삼의 관리와 유통은 본초학적 측면이나, 외교관계사적 측면에서 기본적으로 다루어야 할 주제임에도, 아직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인식을 토대로 조선 전기 인삼사를 확인하기 위해 조선이 명 황실에 조공했던 인삼을 둘러싼 여러 양상들을 살펴보았다. 국초 이래 조선 조정은 인삼을 깨끗이 씻고, 껍질을 얇게 벗겨 건조시킨 백삼을 조공품으로 보냈다. 그런데 인삼을 조공한지 150여 년이 훌쩍 지난 1570년대 명 예부 관료들은 새삼 인삼의 가공방법에 문제를 제기했다. 껍질을 벗기면 약효도 떨어지고, 인삼이 진짜인지 알 수 없다는 이유였다. 중국인들은 인삼 껍질의 약성을 중시했다. 이 시기 명 사회에서 인삼 수요가 급증하면서, 예부 관료들은 새삼 조선이 황제에 진헌하는 인삼에 대해서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임진왜란 이후 1602년 조선은 명나라의 뜻을 받아 인삼의 껍질을 벗기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초삼을 진헌하게 되었다. 인삼 가공 방식이 변경되자, 이듬해 조선 조정은 조금 더 욕심을 내어 명에서 인기 있는 파삼으로 진헌하자는 논의를 하기에 이르렀고, 광해군대 실현되었다. 파삼은 인삼을 삶은 뒤 건조하여, 크고 작은 인삼을 하나로 묶어 진헌하는 방식이었다. 장기보존을 위한 또 다른 제조법이었는데, 인삼 한 뿌리 각각의 모양을 가지런히 정돈할 필요 없이 무게만 맞추면 되었기 때문에 조선 입장에서 매우 편리한 제조법이었다. 다만 인삼을 삶는다는 점에서, 조선인들은 파삼을 약성이 상실된 것이라 여겼다. 그럼에도 17세기 초 인삼 확보가 어렵던 상황을 타개하고자, 명에서 선호하는 파삼을 황제 진헌 인삼으로 보낼 수 있게 요청한 것이었다. 조선 전기 동안 백삼에서 초삼, 다시 파삼으로 진헌 인삼의 가공법이 변경된 것인데, 이는 조선 조정이 명 사회의 인삼 선호도를 활용하여, 조선의 인삼 부족 현상을 타개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한편 장기보관을 위해 인삼을 삶는 파삼 가공법은 고려에서 처음 개발한 것으로 보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이미 단절되어 있었다. 중국사학계에서는 17세기 숙삼 또는 자삼이라 기록된 가공법이 후금의 누르하치가 처음 개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나, 자삼은 파삼과 동일한 가공법이며, 조선이 후금보다 먼저 이 가공법을 활용하고 있었다. 이 인삼 가공법은 인삼의 적극적 구매자인 명 상인이 확산시켰다. 조선은 이러한 인삼을 사행단을 통해 황제와 태자에게 각각 진헌했다. 정기사행과 비정기사행을 모두 합하여 조선이 명 황실로 보낸 인삼 총 수량을 가늠해보면, 국초부터 예종대까지는 연간 약 664~880근 내외, 15세기 말인 성종대부터 16세기 동안에는 연간 약 300~500근 내외, 17세기에는 약 160~360근 내외의 인삼을 명 황실로 보냈을 것으로 추정한다. 15~17세기 조선이 명 황실에 진헌한 인삼은 15세기, 그 중에서도 세종대가 가장 많으며. 16세기에는 명 황실에 태자가 없고 사행 파견 횟수도 감소하여 인삼 진헌 수량도 절반 가까이 줄었다. 16세기 말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조선 조정은 억지로 조공품을 모두 마련하기보다, 조선의 비참한 상황을 명 조정에 알려, 조공품을 감소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진헌 인삼을 마련하기 위해 무리하게 백성들을 책징(責徵)하기보다, 조공 수량을 줄인 것이다. 이후 비정기사행의 인삼 진헌 수량은 또다시 절반 이상 감소하였다. 주목되는 것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15~16세기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는 조선 인삼이 죄다 명으로 수출되어, 조선 정부의 인삼 확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명의 인삼 수요 증가는 16세기 중반 무렵 시작되었는데, 명의 국내외 상업이 크게 발달하면서 약재 산업이 전국적인 규모를 갖추어 나갔다는 점이 주효했다. 인삼을 처방한 의학 서적도 크게 증가한데다, 출판업이 발달하며 의서도 널리 보급되었다. 당시 부유층들이 건강과 보양에 관심을 갖으며 인삼 수요도 증가하였다. 인삼은 기를 보하는 장수약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주요 고객층인 중국 강남 지역민들은 인삼을 장기(瘴氣) 예방약으로도 주목했다. 15세기부터 17세기에 이르기까지 명 황실에 진헌하는 인삼 수량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고, 인삼 제조법 역시 백삼에서 초삼을 거쳐 파삼으로 바뀌면서 제조 부담이 경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는 당시 국제 정세 변동과 의약 산업 전반의 성장, 인삼에 대한 명의 관심 확대, 조선의 경제성 고려 등 인삼 활용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 속에서 양국이 합의를 통해 인삼 진헌의 방향을 모색해 나아간 길이었다.
Abstract
The period when ginseng started to emerge as international medicinal material was during the Joseon Dynasty. This paper tries to look into ginseng, the tribute which used to be presented to the Ming royal family by Joseon Dynasty. Joseon Dynasty was presented to the emperor by peeling and drying ginseng(white ginseng, 白蔘). Ming Dynasty demanded the Chosam(natural ginseng, 草蔘) with no peeling in 1602. By the request of Joseon Dynasty during the period of Lord Gwanghae, the presented ginseng was again changed into Pasam(boiled and dried ginseng, 把蔘, 煮蔘). Although Nurhachi of the Jurchen(女眞) is known to have invented this method of processing pasam, Joseon was exporting pasam to the Ming Dynasty earlier than that. Nurhachi's theory of the invention of the pasam should be reexamined. Joseon Dynasty presented ginseng to each emperor and heir to the throne through its envoys. To estimate the total amount of ginseng sent to the royal family of Ming Dynasty during the Joseon Dynasty, 664~880geuns(斤) per year in the 15th century, 300~500geuns(斤) in the 16th century, and about 160~360geuns(斤) in the 17th century. When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occurred in 1592, the Joseon government informed Ming Dynasty of the miserable situation of Joseon people and chose to reduce the tribute. However, even after the war, the amount of tribute ginseng in Joseon continued to be small. This is because the medical industry in the Ming Dynasty grew significantly, and medical books prescribing Joseon ginseng increased, and the rich people of the Ming Dynasty loved ginseng so much that they imported Joseon ginseng at high prices. Local residents of Guangdong(廣東), China, a major customer base of Joseon ginseng, also used ginseng as a preventive medicine for JangGI(瘴氣). From the 15th to the 17th century, the amount of ginseng that Joseon tributed to the Ming Dynasty continued to decrease, and the ginseng processing method also moved in the direction of reducing the processing burden. This was caused by changes in the environment surrounding the use of ginseng, including changes in the international situation at the time, the growth of the medical industry, the increasing interest in ginseng by the people of the Ming, and economic considerations of the Joseon’s government. This was the way the two countries sought the direction of ginseng tribute through an agreement.
참고문헌 (73)
- "朝鮮王朝實錄", ~
- "備邊司謄錄", ~
- "承政院日記", ~
- "事大文軌", ~
- "攷事撮要", ~
- "洛下生集", ~
- "老乞大", ~
- "白湖全書", ~
- "宣和奉使高麗圖經", ~
- "穌齋集", ~
- "心田稿", ~
- "於于集", ~
- "與猶堂全書", ~
- "燕巖集", ~
- "燃藜室記述", ~
- "鶴峯逸稿", ~
- "明實錄", ~
- "淸實錄", ~
- "大明會典", ~
- "遼東志", ~
- "萬曆野獲編", ~
- "五雜俎", ~
- "景岳全書", ~
- "輕寶新篇", ~
- "丹谷經驗方", ~
- "東醫寶鑑", ~
- "本草綱目", ~
- "新編醫學正傳", ~
- "諺解臘藥症治方", ~
- "醫林撮要", ~
- 강만길, "開城商人硏究 : 朝鮮後期 商業資本의 成長", 한국사연구, 8 (1972)
- 구도영, "16세기 한중무역 연구 - 혼돈의 동아시아, 예의의 나라 조선의 대명무역 -" (2018), 태학사
- 김달관, "식민시대 볼리비아 포토시의 미타", 중남미연구, 32(2), pp.51~82 (2013), 중남미연구소
- 김동철, "17~19세기 부산 왜관의 開市와 朝市", 한일관계사연구, (41), pp.223~262 (2012), 한일관계사학회[DOI]
- 김선민, "人蔘과 疆域 ― 後金-淸의 강역인식과 대외관계의 변화 ―", 명청사연구, (30), pp.227~257 (2008), 명청사학회[DOI]
- 김성수, "18세기 후반 의학계의 변화상 -『欽英』으로 본 조선후기 의학 -", 한국문화, (65), pp.99~134 (2014), 규장각한국학연구원[DOI]
- 문광균, "18세기 江界지역 貢蔘制의 운영과 변화", 조선시대사학보, (57), pp.161~206 (2011), 조선시대사학회
- 박성주, "고려·조선 견명사 연구", 박사, 사학, pp.2005
- 박재정, "薛己의 生涯와 醫學思想에 관한 硏究",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18(2), pp.1~19 (2005), 대한한의학원전학회
- 박평식, "朝鮮前期의 人蔘政策과 人蔘流通", 한국사연구, (143), pp.201~241 (2008), 한국사연구회
- 박평식, "宣祖朝의 對明 人蔘貿易과 人蔘商人", 역사교육, (108), pp.127~158 (2008), 역사교육연구회
- 설혜심, "인삼의 세계사: 서양이 은폐한 세계상품 인삼을 찾아서" (2020), 휴머니스트
- 성지영, "汪機의 營衛論및 醫案에서 나타난 溫補醫學思想", 한의학연구소 논문집, 21(2), pp.1~19 (2013), 한의학연구소
- 양정필, "17~18세기 전반 인삼무역의 변동과 개성상인의 활동", 탐라문화, (55), pp.107~144 (2017), 탐라문화연구원[DOI]
- 양정필, "삼국-통일신라기 인삼의 생산과 대외교역", 의사학, 13(2), pp.1~1 (2004), 대한의사학회
- 염정섭, "18세기 家蔘 재배법의 개발과 보급", 국사관논총, 102 (2003)
- 옥순종, "은밀하고 위대한 인삼이야기" (2016), 이가서
- 유승주, "朝鮮時代 鑛業史硏究" (1994), 고려대학교 출판부
- 유승주, "조선후기 중국과의 무역사" (2002), 경인문화사
- 은석민, "王綸의 參芪論 및 그 관련 논의들에 대한 고찰", 한국의사학회지, 28(2), pp.47~58 (2015), 한국의사학회
- 개성 인삼이 왜 유명하게 되었을까, "내일을 여는 역사", 2003, ~
- 이철성, "조선후기 연행무역과 수출입 품목", 한국실학연구, (20), pp.29~79 (2010), 한국실학학회
- 이철성, "조선후기 고려홍삼 무역량의 변동과 의미", 인삼문화, 1 (2019)
- 이강선, "백삼, 태극삼, 홍삼의 중성 및 산성 ginsenoside 함량 변화", 한국약용작물학회 학술대회논문집, 21(2) (2013)
- 이민호, "明 中期 民間 醫藥業의 成長과 ‘棄儒爲醫’", 중국사연구, (55), pp.145~174 (2008), 중국사학회
- 이민호, "明․淸代 祁州藥市의 成長과 ‘藥王廟’", 대한본초학회지, 24(4), pp.31~37 (2009), 대한본초학회
- 이충렬, "수삼의 지역별 연근별 인삼사포닌 함량 비교", 한국식품과학학회지, 36(5) (2004)
- 이한구, "人蔘의 形態 鑑別에 관한 硏究", 대한본초학회지, 19(2), pp.181~190 (2004), 대한본초학회
- 정성일, "조선후기 대일무역" (2000), 신서원
- 정은주, "조선 후기 家蔘 재배와 『蔘書』", 한국실학연구, (24), pp.443~477 (2012), 한국실학학회
- 조기준, "人蔘貿易과 蔘政考", 社會科學論集, 4 (1974)
- 차수정, "조선후기 인삼무역의 전개과정", 북악사론, 1 (1989)
- 홍순권, "韓末時期 開城地方 蔘圃農業의 展開樣相", 한국학보, 49(50) (1987)
- 邱仲麟, "明清的藥材流通與藥品價格", 中國社會歷史評論 (2008)
- 今村鞆, "人蔘史 1~7" (1935), 朝鮮總督付專賣局版
- 今村鞆, "人蔘史 1~7" (2015), 동양대학교
- 佟永功, "清代盛京参务活动述略", 淸史硏究, (1) (2000)
- 巫仁恕, "사치의 제국 : 명말 사대부의 사치와 유행의 문화사" (2019), 글항아리
- 김의정, "쾌락의 정원 : 동양의 에피쿠로스, 이어의『한정우기』" (2018), 글항아리
- 辻 大和, "朝鮮王朝の對中貿易政策と明淸交替" (2018), 汲古書院
- Symons Van Jay, "Ch'ing Ginseng Management – Ch'ing Monopolies in Microcosm" (1981), Center for Asian Studies, Arizona State University
- 張存武, "근대한중무역사" (2001), 교문사
- 叢佩遠, "東北三寶經濟簡史" (1989), 農業出版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