修堂 李南珪의 주체적 대외의식과 시
Sudang Lee Nam-Gyu’s independent subjective consciousness and po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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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修堂 李南珪(1855~1907)는 19세기 말 20세기 초를 살다간 관인이면서 지식인이다. 그는 관인으로 있을 때, 상소문을 올려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 뒤 그는 세상일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로지 시를 짓는데 전념한다. 하지만, 1905년 을사조약이 일어나자 의병활동을 하고 우국시를 짓기 시작하였다. 그는 관인으로 있으며 주체적 대외의식을 지니고 있었지만, 은거기간에는 시를 짓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때 그는 시에 모든 마음을 쏟았고, 시는 그의 심경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때문에 은거기간의 시에서는 그의 서정적인 심상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 뒤 의병활동을 할 때, 그의 시는 우국시로 변모하는데, 이것은 은거 이전의 주체적 대외의식이 시로 나타난 것이다. 즉, 그의 주체적 대외의식은 관인에서 의병활동으로 이어지고, 그 사이 은거기간은 서정시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분명한 구분이 수당의 시에서 잘 나타나고 있으며, 이점은 그의 은거시기의 시를 이해하는데 고려할 점이다.
Abstract
Sudang(修堂) Lee Nam-Gyu(李南珪, 1855~1907)is a government official as well as intellectual in the end of 19th century and early 20th century. Although he had an independent subjective consciousness as a government official, most of his seclusion time was spent on composing poems. Since he poured out all his minds into poet, and poem composing on the other hand also shaped his mind peaceful, so through the poems of his seclusion period we cam explore a lyric psychological states of the poet. Later during the Insurrectionary period, the transformation to Patriotic poem writting shows his independent subjective consciousness before the seclusion period. In other words, his independent subjective consciousness is followed from the Insurrectionary activities period as a government official, but between this filled with his lyric poems from the seclusion period which should not be forgotten in order to get a complete comprehension of Sudang’s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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