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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후기 지방통치의 구조와 의미

A Study on Structure of the late Koguryo Local ruling, and its Mea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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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고구려 후기 지방통치의 외연적 형태와 구조, 그리고 지방통치의 전개가 지니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작성되었다. 이제까지의 고구려 후기 지방통치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중국측 사서 중심의 누층적 성 편제라는 결론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또한 세부적인 문제, 가령 지방행정단위의 문제, 지방관의 형태문제, 지방의 구분 문제 등에 대해서 학계의 합일된 견해가 도출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가급적『三國史記』에 등장하는 여타 기록들과 중국측 사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지방통치의 실체 파악을 중점적으로 시도해 보았다. 먼저 사료상에 한결같이 등장하는 部名에 대한 검토를 해보았다. 이들 部名은 주로 五部나 방위명 부, 방향명 부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 실체를 밝히는 것이 고구려 후기 지방통치의 외연을 밝히는데 가장 선결되어야할 문제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들 部名들에 대한 검토 결과 고구려 후기의 五部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었다. 우선 전국적 구분으로서 五部의 실재 여부에 대해서 검토한 결과, 지방 五部는 그 명칭을 알 수없지만 실재하였고, 여기에는 外評五部褥薩이 파견되어 통치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방위명 부는 초기 이래로 왕기의 구분 명칭이었음과 이러한 전통이 고구려 후기까지 이어서 왕기의 지역구분으로 있었고, 여기에도 또한 지방 五部와 마찬가지로 內評五部褥薩이라는 지방관이 파견되어 통치하였다고 보았다. 한편 전후상하중의 방향명 부는 왕도의 구분이었다고 보았다. 그 다음으로는 지방관의 존재형태에 대해서 검토해 보았다.『 한원』「고려기」에 나와있는 서술내용과 어의에 의한 검토 이외에 사료의 문장구조 분석을 토대로 지방관의 실재에 접근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지방인 왕기와 전국 五部는 각각 諸大城-諸城-諸小城의 누층적인 성의 등급별로 편제되었으며, 諸大城에는 중국의 도독에 비정되는 褥薩이, 諸城에는 중국의 주 자사에 비정되는 處閭近支(道使)가, 諸小城에는 중국의 현령에 비정되는 婁肖가 임명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성-내지 諸大城과 諸城급 이상에만- 에는 중국의 長史에 비정되는 可邏達이 있어서 지방관의 속료로서 업무를 분장하여 담당한 것으로 보았다. 한편 이들 지방관이 파견된 지방행정단위는 각급 성을 기준으로 일정한 제도로 편제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의 검토를 위해『삼국사기』지리지에 등장하는 각종 고구려 후기의 지방제도와 관련된 내용들을 검토해 보았다. 그 결과 중국의 도독부에 비정되는 諸大城은 部로, 중국의 주(또는 군)에 비정되는 諸城은 군으로, 그리고 중국의 현에 비정되는 諸小城은 현으로 파악되어, 결국 고구려 후기의 지방제도는 部-郡-縣의 형태로 존재했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이들 部-郡-縣의 명칭은 주로 치소성의 이름을 사용하였으며, 그렇기때문에 각 사료상에는 城을 중심으로 서술된 것으로 보았다. 고구려 후기 지방제도는 고구려 중기 지방통치에서 계기적으로 발전한 형태였는데, 중기의 城(谷)의 宰-군급 성의 太守-國郡과 같은 광역의 守事들이 각각 후기의 褥薩-處閭近支(道使)-婁肖로 전환된 것으로 추측해 보았다. 이러한 고구려 후기의 지방통치는 중기의 발달된 지방통치의 전개에 따라『周書』,『 隋書』의 조세 수취 기록이나, 광개토왕비, 평양성각자성석의 기록들로 보아 원활한 역역동원체계를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말기 오골성 욕살의 예에서 보듯이 이미 지방관의 능력은 말기로 갈수록 퇴보되어 궁극적으로 왕권을 대행할 수 있는 능력 자체를 상실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후기 들어 발생한 권력 분쟁과 지속적인 대외 전쟁에 따른 국정의 피로, 그에 수반한 국정 운영 시스템의 노쇠 현상이 맞물려 벌어진 상황이었다. 지방통치의 전개는 국가권력 중심의 이동이라는 의미를 같이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해 보았다. 즉 고구려 초기 나부세력이 왕과 함께 국가권력에 참여하여 국가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시기에는 나부를 관칭하는 인물들이 중앙정계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그러다가 왕권이 강화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점차 나부를 관칭하는 인물들은 줄어들고, 왕기지역의 방위명부를 관칭하는 세력들이 증가하여 국가권력을 장악하였다. 이 시기가 대체로 고구려 초기에서 중기로 이행하는 과정이었다고 보인다. 하지만 중기이래로 율령의 반포, 대외 정복전쟁, 평양 천도 등 일련의 국가체제정비를 계기로 하여 이제는 왕도 출신 인물들이 국정을 장악했다고 보인다. 「중원고구려비」에 등장하는 전부, 하부를 관칭하는 인물들이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아 그러하다. 또한 같은 비문에 나오는 환노(환나)나 평양성 각자성석에 나오는 괘루 등 과거 나부세력이라고 믿어지는 지역이 지방의 격하된 현상을 보여주는 것도 일례로 보인다. 그러나 후기 안원왕대 국가권력의 분열을 시작으로 점차 권력의 중심이 원심화되는 현상을 보였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삼국사기』연개소문전에 보이듯이 연개소문과 같은 왕기지역의 권력자들이 다시 등장하게 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Abstract

This research is to try to observe about the form and the rescue of local rule in the late Koguryo. About until now in the late Koguryo local rule research could not escape from conclusion in the Chinese history record. When is possible because like that and appears in『 Samguksagi(삼국사기)』crosscheck of different record and Chinese history record and to lead, tried to attempt the entity grasp of local rule importantly. Tried to observe first of all about Five department(오부). In the Wanggi(왕기) region, there was Five department with names of Dong, Seo, Nam, Buk, and Jung(East, West,South, North and Center) and in each region, Yoksal(욕살), the position which can be compared to the local ministry was dispatched to take charge of the ruling. In the Wangdo(왕도) region, there was Five department with th names of Jeon, Hu, Sang, Ha, and Jung(Front, Back, Up, Down and Inner) and were again divided into sections. In the regional areas, Five department was formed as countrywide classification. Five department used the names of ruling castles instead of each district and the regions consisted of administrative units made up of 3 castles ; Jedaesong(제대성)- Jesong(제성)-Jesosong(제소성). For each of these castles, Yoksal(욕살), Choryogeunji(처려근지), and Rucho(누초) were dispatched, respectively to be responsilble for ruling. The administrative unit Jedaesong was grasped with Bu(부), Jesong was grasped with Gun(군), Jesosong was grasped with Hyon(현). The local rule of late Koguryo is that the local rule of middle Koguryo dvances. In middle Koguryo to Song(Gok), Jae(재) was nominated, to Gun, Taesu(태수) was nominated, to Wide Area(광역), Susa(수사) was nominated. This secretary region were converted with Yoksal, Choryogeunji, and Rucho of late Koguryo. The operation of local rule the tax collection and manpower mobilization all smoothly, became accomplished, for example like the records which come out to 『Juso(주서)』,『Suso(수서)』, 「GwanggaetowangBi(광개토왕비)」, and 「Pyongyangsong Gakjasongsok (평양성 각자성석)』. But to Koguryo final period the ability of Secretary region retrogressed gradually. For example like Ogolsong Yoksal(오골성욕살). So to lose the ability ultimately will be able to execute as proxy a sovereign power. It was because of power dispute, fatigue of the government authorization which follows in the foreign warfare which is continuous, and senile actual condition of state operation system accompanied to it, happened in Koguryo final period. The development of local rule is the instance which shows meaning which is a movement in the political power center. To initially, the power people of region participated to the government authorization. And the power people moved the center of the nation gradually. To golden age the kingcraft became core of power. But, to final period the power was dispersed again at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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