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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年 高句麗의 對東晉使 派遣과 그 背景

The background of Koguryo(高句麗) dispatching an envoy to Eastern Chin(東晉) in A.D.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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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對東晉使 파견은 70년만의 일이며, 장수왕 즉위 초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413년 고구려의 대동진사 파견과 관련해서는 그동안 일본학계를 중심으로 ‘倭 5王’에 대한 연구의 연장선에서 ‘倭’를 주목하였으며 고구려는 이를 밝히기 위한 일환으로 함께 다루어졌다. 그 결과, 백제와 왜의 대남조교섭에 대항하기 위한 필요에서 고구려가 동진에 사신을 파견하였다는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기존 연구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일본학계는 왜와 관련해 고구려의 대동진사를 검토하였으며 그 속에는 고구려가 왜를 강력한 대항세력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4~5세기 책봉호 비교에서도 볼 수 있듯, 왜의 국제적 지위는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낮았다. 또한 266년 晉과의 교류를 끝으로 413년 동진에 입조할 때까지 왜에 대한 기록은 140여년간 확인되지 않는다. 이는 왜가 중원왕조의 지리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었음을 말해준다. 더구나 고구려에게 왜는 적대세력이었지만 主敵은 아니었다. 『三國史記』 高句麗本紀에 왜 관련 기록이 보이지 않는 데는 고구려의 왜에 대한 관심도가 낮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고구려의 대동진사 파견을 백제와 왜라고 하는 남방제국과의 문제로 한정해서 이해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고구려는 늘 서북방정세에 민감하였다. 더욱이 광개토왕대 숙원이던 요동을 확보하였으며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요서 일대에 자리한 북연과 산동반도를 점령한 동진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하였다. 그 결과 북연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으며 동진에는 사신을 파견하였다. 또한 시기적으로 장수왕 즉위 초라는 점에서 광개토왕의 죽음과 신왕의 즉위를 알리는 告訃使의 성격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Abstract

Koguryo dispatched an envoy to Eastern Chin(東晉), this was the first time in 70 years. We should note that this occurred in the early part of King Jang-su(長壽王)’s reign. Japanese scholars indirectly examined this problem as an extension of the Five Wae kings(倭 5王). As a result, it was emphasized that Koguryo dispatched an envoy to Eastern Chin to check BaekJae(百濟) and Wae(倭). However there are problems with previous studies. Firstly, Japanese scholars investigated the envoy to Eastern Chin in relation to Wae, on the condition that Koguryo viewed Wae as the main enemy. The international status of Wae was placed low in comparison with Koguryo and BaekJae. There are no records about Wae for 140 years since Wae sent envoys to the Chin(晉) dynasty in A.D.266. This shows that Eastern Chin was indifferent toward Wae. Koguryo had hostilities with Wae but did not regard Wae as it’s main enemy. Koguryo was not interested in Wae such that Wae failed to be recorded in the Koguryo annals(高句麗本紀) of the Samguksaki(三國史記). Secondly, previous studies have understood that the envoy to Eastern Chin was limited to Baekjae and Wae, reflecting Koguryo’s concern with it’s southern frontier. However, Koguryo always reacted sensitively to the north-west situation. Koguryo occupied Liaodong(遼東), its long cherished desire, during the reign of King Kwanggaeto(廣開土王). In order to protect Liaodong, it was important for Koguryo to establish relations with the Northern-Yan(北燕) and the Eastern Chin. Therefore Koguryo entered into friendly relations with the Northern-Yan and the Eastern Chin. At the same time Koguryo dispatched an envoy to the Eastern Chin for the announcement of King Kwanggaeto’s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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