榮留王代政局主導權의 變化樣相과 淵氏勢力
The Variation of Political Initiative and Yeongaesomun’s Family during the Ruling Time of King Yeongryu(618~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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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榮留王代(618∼642)의 정국운영에 대한 기존연구의 대체적인 견해는 온건한 성향의 정치세력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해 나갔고 이러한 분위기가 642년 淵蓋蘇文政變이 발생되는 시점까지 지속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기존연구에서 영류왕대의 정국운영을 위와 같은 구도에서 인식한 근거는 영류왕 즉위 후 외교노선이 급격히 온건한 방향으로 흐르는 정황이다. 그러나 618년 영류왕이 즉위한 이후부터 630년대 초반까지의 대외정책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그것은 강경책과 온건책이 적절히 결합된 정상적인 외교노선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대백제·대왜관계라든지, 천리장성의 축성, 그리고 7세기 초반 중원세력의 재편과정에서 나타난 국제정세의 변화 등으로 볼 때 영류왕대의 외교노선은 영양왕대의 그것에서 급격히 변화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당시 외교노선의 부분적인 변화를 근거로 정치세력의 교체를 가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영류왕대의 정국운영을 새롭게 들여다보면 연씨세력은 영류왕 즉위 초에 정치적 인 협력관계를 형성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들이 영류왕 즉위 후 막리지를 역임하게 된다든지, 영류왕 이 귀족연립정권 아래에서 영양왕의 적장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을 유추해 보면 양자의 결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630년대 경관파괴를 기점으로 영류 왕의 정국주도권이 약화되면서부터는 연씨세력이 고구려의 권력을 장악해 나갔고 이때부터 연씨세력과 영류왕은 정치적인 대립관계를 형성시키게 되었다. 당시 연씨세력의 입지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병권을 장악하여 기세가 삼한을 아우르고 명성은 5부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금석문의 기록이다. 그런데 630년대 말 연씨세력의 대표 격인 연태조가 사망하고 신라 칠중성에 대한 공격이 실패로 돌 아가면서부터는 정국의 주도권은 다시 영류왕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재차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 영류왕은 태자를 입조시키는 등의 급진적인 친당정책을 추진하여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정적인 연씨세력의 약화를 유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연씨세력의 새로운 수장인 연개소문과 영류왕의 대립이 본격화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타난 영류왕대 정국주도권의 변화양상은 뒤에 일어나는 연개소문 정변의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하게 된다.
Abstract
The political situation during the ruling time of King Yeongryu has been understood by the 濟)·Wae(日本) and also constructing Cheonlijangseong(千里長城) during the ruling time of King Yeongryu. At this time Dang dynasty demanded to destroy Gyeonggwan(京觀) of Goguryeo. Even though a lot of nobles like Yeongaesomun’s family advised against destroying Gyeonggwan, King Yeongryuu admitted it. But With the result, the political power of King Yeongryu decreased, on the other hand that of Yeongaesomun’s family was moved up. So from that time the relationship of King Yeongryu and Yeongaesomun’s family had changed to a political competitor. At the end of 630th Goguryeo attacked to Silla(新羅) to recover their own territory around the Han River(漢江) but the attempt was failed. On the contrary the threat from Dang dynasty was approached again. To make matters worse Yeontaejo(淵太祚), the chief of Yeongaesomun’s family was dead. The strongest political competitor of King Yeongryu has been disappeared. That was a new chance to seize the political power for King Yeongryu. King Yeongryu didn’t lost a fair shake of chance. He achieved the leadership of Goguryeo again. Especially King Yeongryu turned all situations to his advantage through the friendship with Dang dynasty. At the same time he soften up Yeongaesomun, new chief of Yeongaesomun’s family and new political competitor. A series of these political changes naturally made the relationship between King Yeongryu and Yeongaesomun hostile day by day. And also this situation became the background of Yeongaesomun(淵蓋蘇文)’s coup d’ etat(政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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