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645년 당 태종의 고구려 원정 목적과 의미

The Purpose and Meaning of Tang Taizong's Koguryo Expedition in 645

0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守成의 시대를 선언하고 당왕조의 장기적 존속과 번영을 추구하던 당 태종은 수 멸망의 단초가 되었던 고구려 원정을 시도했다. 당 태종은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정을 시도했을 뿐 아니라 직접 전쟁에 참여하였다. 당의 고구려 원정 준비는 고창을 멸망시키고 고구려에 직방낭중 지위에 있는 진대덕을 보내 그 허실을 살피게 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643년 고구려에 파견한 상리현장이 돌아오면서 전쟁이 결정되었다. 당 태종은 전쟁 준비가 한창이었던 그해 8월 언기를 공격해 10월에 언기도독부를 설치하였다. 고창 멸망 후 동서교역의 새로운 거점으로 부상하고있던 언기에 대한 공격은 고구려에 경제적 압력을 주어 내부의 갈등을 일으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구려가 당에 굴복하지 않으면 그 교역을 강력하게 차단하겠다는 압박의 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교역의 중단은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하던 지배층과 부유층들을 동요시킴으로써 고구려의 내부적 갈등을 야기시키기 위한술책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642년 정변을 통해 정권을 잡은 연개소문 세력이 갖는 정권 초기의 불안정한 권력구도를 흔들기 위한당태종의 의도는 고구려 정벌의 명분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당 태종은 고구려 원정이 영류왕을 시해하고 백성을 학대하는 연개소문의 죄를 묻기 위한 것임을 공표하였을 뿐 아니라 전쟁 중에도 이러한 그의 의도를 분명히드러내었다. 당 태종은 출정전부터 고구려 내부의 분열을 조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고, 압도적인 무력과 빠른 전쟁 진행으로 고구려를 위협함으로써 내부의 혼란을 가속화시켜 쉽게 고구려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은 고구려의 견고한 방어선을 뚫지 못하고 안시성에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당 태종이 고구려원정에 나서면서 내세웠던 사방평정은 정복을 통한 영토 확장이 아니라 당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합류시키기 위한 것이다. 당 태종은 왕조의 우환이 될 강대한 세력의 출현을 억제시키는 방책에 따라 강자의 경우는 응징을 가하고 약자의 경우에는 지원해서 세력을 길러주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당 태종은위협이 되는 국가를 정벌하여, 중국의 군현으로 삼기도 했지만, 그들의 국력을 약화시키고, 내정 간섭을 통해당에 예속성이 강한 정권을 만들면서 이들을 통제하고자 한 것이다. 무엇보다 당에 의해 주도되는 경제 네트워크를 통해 경제를 예속화시킴으로써 자립의 기회를 없애고, 지배층에게는 하사를 통한 위세품을 제공함으로써 그들 국가의 피지배층과 분리시키고 정치 세력 재편에 영향을끼쳐 정치에서의 당에의 예속화를 더욱 진전시키고자 하였을 것이다. 이것이 당태종이 추구한 변경의 안정을위한 사방평정의 모습이며, 수성의 황태자인 李治에게 물려주고 싶었던 제국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Abstract

Tang Taizong, who declare the age of National Stability and pursued the long-term existence and prosperity of Tang Dynasty, attempted the Koguryo expedition that led to the fall of the Sui Dynasty. In spite of the many oppositions, He not only tried the expedition but also participated in the war himself. Preparations for the Koguryo expedition in the Tang Dynasty began when Gochang(高昌) was destroyed and Jin Dae-deok(陳大德), who was in the position of Jigbangnangjung(職方郎中) was sent to Koguryo to discover the strong and week points The war was decided when the Sanglihyeonjang(相里玄獎) site returned to Koguryo in 643. In August of that year, when preparations for war were in full swing, Tang Taizong attacked Eongi(焉耆) and established Eongi Dokdobu(焉耆都督府) in October. After the fall of Gochang, the attack on the Eongi, which was emerging as a new hub for East-West trade, seems to be aimed at causing internal conflicts by putting economic pressure on Koguryo. This would have been a way of putting pressure on Koguryo to block the trade if it did not yield to the Tang. The suspension of trade could have been a way to provoke the internal conflict of Koguryo by agitating the ruling and wealthy people who had accumulated wealth In addition, Tang Taizong's intention to shake up the unstable power structure of the early days of the regime, which took power through the political upheaval in 642 is also revealed in the justification of Koguryo. He not only announced that the expedition of Koguryo was aimed at punishing Yeon Gaesomun(淵蓋蘇文), who assassinated King Youngryu(榮留王) and abused the people, but also revealed his intention during the war. He must have thought that he could easily win Koguryo's surrender by creating conditions that could encourage division within Koguryo even before his departure, and by accelerating internal turmoil by threatening Koguryo with overwhelming force and rapid progress in war. The Tang Dynasty was forced to retreat from Anxi Fortress(安市城) without breaking through the solid defense line of Koguryo. As Tang Taizong of the Tang Dynasty embarked on the Koguryo expedition, the subjugation in all directions(四方平定) was not aimed at expanding territory through conquest, but at joining the world order led by the Tang Dynasty. He adopted a method of raising power by punishing the strong and supporting by following measures to suppress the emergence of mighty forces that would be the dynasty's success. In accordance with the measures to curb the emergence of powerful forces, which would become a royal asset, Tang Taizong adopted a system of punishing the strong and supporting the weak to develop their power. Above all, the opportunity for independence is lost by subjugating the economy through the economic network led by the Tang Dynasty. By providing luxury to the ruling class, they would have sought to further advance the servitude to the party in politics by separating them from the dominant groups of their countries and influencing the reorganization of political power. This would have been the image of the subjugation in all directions for the stability of the frontier pursued by the Tang Dynasty, and it would have been the image of an empire that he wanted to pass on to Ichi, the crown prince.

참고문헌 (102)

  1. "三國史記", ~
  2. "資治通鑑", ~
  3. "舊唐書", ~
  4. "新唐書", ~
  5. "北史", ~
  6. "冊府元龜", ~
  7. "貞觀政要", ~
  8. "翰苑", ~
  9. "日本書紀", ~
  10. 국사편찬위원회, "中國正史朝鮮傳 譯註2" (1987)
  11. 동북아역사재단, "『譯註 中國 正史 外國傳 9 舊唐書 外國傳 譯註 』上ㆍ中ㆍ下" (2011), 동북아역사재단
  12. 동북아역사재단, "『譯註 中國 正史 外國傳 9 新唐書 外國傳 譯註 』上ㆍ中ㆍ下" (2011), 동북아역사재단
  13. 韓國古代社會硏究所, "譯註 韓國古代金石文 1" (1992), 駕洛國史蹟開發硏究院
  14. 鄭求福, "譯註 三國史記" (1997),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5. 사마광, "자치통감 20ㆍ21" (2008), 삼화
  16. 연민수, "역주 일본서기 3" (2013), 동북아역사재단
  17. 姜性文, "麗隋ㆍ麗唐戰爭 原因考", 國史館論叢, 69 (1996)
  18. 菅沼愛, "7世紀後半から8世紀の東部ユーラシアの國際情勢とその推移" (2012), 溪水社
  19. 권영필, "중앙아시아 속의 고구려인 발자취" (2008), 동북아역사재단
  20. 高福順, "高麗記硏究" (2003), 吉林文史出版社
  21. 吉田光男, "『翰苑』註所引 『高麗記』について-特に筆者と作成年次", 朝鮮學報, 85 (1977)
  22. 김정희, "당 전기의 화이관과 변경 정책", 중국고중세사연구, (15), pp.229~271 (2006), 중국고중세사학회
  23. 김영하, "高句麗 內紛의 국제적 배경 – 당의 단계적 戰略變化와 관련하여", 한국사연구, 110 (2000)
  24. 김용만, "고구려 후기 고구려, 수ㆍ당, 북방 제국의 대립관계", 고구려발해연구, 29, pp.253~282 (2007), 고구려발해학회
  25. 金子修一, "東アジア世界論」, 『東アジア世界の成立" (2010), 吉川弘文館
  26. 김종완, "한중관계 2000년 : 동행과 공유의 역사" (2009), 소나무
  27. 김지영, "7세기 고구려 대왜(對倭) 관계의 변화 ― 630년을 기점으로 ―", 역사와 현실, (57), pp.141~173 (2005), 한국역사연구회
  28. 김진한, "보장왕대 고구려의 대당관계 변화와 그 배경", 고구려발해연구, 39, pp.97~124 (2011), 고구려발해학회
  29. 김진한, "榮留王代 高句麗의 對唐關係와 西北方情勢", 한국학, 32(4), pp.309~340 (2009), 한국학중앙연구원[DOI]
  30. 김창석, "고구려ㆍ수 전쟁의 배경과 전개-경제적 요인을 중심으로", 동북아역사논총, 15 (2004)
  31. 김태식, "『일본서기』에 나타난 한국고대사상", 한국고대사연구, 14 (1998)
  32. 金浩東, "唐의 羈縻支配와 北方 遊牧民族의 對應", 역사학보, 137 (1993)
  33. 나동욱, "7세기 중반 高句麗의 東蒙古 進出과 軍事戰略", 한국사연구, (144), pp.97~126 (2009), 한국사연구회
  34. 노중국, "高句麗ㆍ百濟ㆍ新羅 사이의 力關係變化에 대한 一考察", 동방학지, 28 (1981)
  35. 노태돈, "고구려ㆍ발해인과 내륙아시아 주민과의 교섭에 관한 일고찰", 대동문화연구, 23 (1990)
  36. 盧泰敦, "韓國史市民講座 5" (1989), 一潮閣
  37. 노태돈, "고구려사 연구" (1999), 사계절
  38. 노태돈, "삼국통일전쟁사" (2009), 서울대학교출판부
  39. 渡邊三三, "高句麗の新城發見", 滿蒙, 14(9) (1933)
  40. 르네 그루세,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2006), 사계절
  41. 武田幸男, "民族文化의 諸問題 : 于江權兌遠敎授定年紀念論叢" (1994), 세종문화사
  42. 李丙燾, "高句麗對隋ㆍ唐抗戰", 한국고대사연구 (1976), 박영사
  43. 이진선, "唐 前期 安西四鎭의 設置와 變化樣相", 동양사학연구, (141), pp.93~128 (2017), 동양사학회[DOI]
  44. 末松保和, "靑丘史草" (1965)
  45. 멍센스, "정관의 치" (2008), 에버리치홀딩스
  46. 朴漢濟, "七世紀 隋唐兩朝의 韓半島進出 經緯에 대한 一考", 東洋史學硏究, 43 (1994)
  47. 박현규, "膠東半島 高句麗관련 해양유적과 전설- 당 태종 연간 고구려 전쟁을 중심으로 -", 중국사연구, (52), pp.113~134 (2008), 중국사학회
  48. 방용철, "연개소문의 집권과 고구려의 대외정책 변동", 한국고대사연구, (80), pp.159~193 (2015), 한국고대사학회
  49. 방용철, "고구려 영류왕대의 정치 동향과 대당 관계", 석사, 한국사, pp.2009
  50. 방향숙, "7세기 중엽 唐 太宗의 對高句麗戰 전략 수립과정", 중국고중세사연구, (19), pp.309~345 (2008), 중국고중세사학회[DOI]
  51. 방향숙, "唐 太宗·高宗代 한반도 정책과 百濟의 위상 -당 태종·고종본기를 중심으로-", 백제학보, (27), pp.51~80 (2019), 백제학회[DOI]
  52. 范文瀾, "『中國通史簡編』 第三編 第1冊" (1965), 人民出版社
  53. 西嶋定生, "(岩波講座)日本歷史』2" (1962), 岩波書店
  54. 西嶋定生, "西嶋定生東アヅア史論集 3" (2002), 岩波書店
  55. 서영교, "당태종의 고구려 親征과 작전 歪曲 - 요동성 전투 전후의 상황을 중심으로 -", 동북아 문화연구, 1(36), pp.211~225 (2013), 동북아시아문화학회[DOI]
  56. 서영교, "羅唐戰爭史 硏究 ; 약자가 선택한 전쟁" (2006), 아세아문화사
  57. 薛宗正, "唐四鎭都督府的建置" (2009)
  58. 신형식, "三國時代 戰爭의 政治的 意味-『三國史記』 戰爭記錄의 綜合的 檢討-", 한국사연구, 43 (1983)
  59. 張宜婷, "從安西四鎭之焉耆鎭看唐朝對絲綢之路的控制和經營", 昆明學院學報, 2016(5) (2016)
  60. 松井等, "滿洲歷史地理, 第1卷" (1913), 南滿洲鐵道株式會社
  61. 愛宕元, "中國史 2" (1996), 山川出版社
  62. 여호규, "6세기말~7세기초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고구려 대외정책의 변화 -대수관계(對隋關係)를 중심으로-", 역사와 현실, (46), pp.1~36 (2002), 한국역사연구회
  63. 여호규, "책봉호 수수(授受)를 통해 본 수·당의 동방정책과 삼국의 대응", 역사와 현실, (61), pp.31~59 (2006), 한국역사연구회
  64. 余昊奎, "高句麗城 Ⅱ-遼河 流域篇-" (1999), 국방군사연구소
  65. 여호규, "國內城期 高句麗의 軍事防禦體系", 韓國軍事史硏究, 1 (1998)
  66. 여호규, "高句麗 千里長城의 徑路와 築城背景", 國史館論叢, 91 (2000), 國史編纂委員會
  67. 연민수, "6∼7세기 高句麗의 對倭關係", 한일관계사연구, (26), pp.1~43 (2007), 한일관계사학회
  68. 王綿厚, "“唐營州至安東‘ 陸路交通地理考實", 遼海文物學刊, (1) (1986)
  69. 王綿厚, "東北古代交通" (1990), 瀋陽出版社
  70. 汪錢, "唐太宗與貞觀之治論集" (1982), 陝西人民出版社
  71. 윤대수, "당태종의 통치술 연구 : 정관정요를 중심으로", 석사, 역사교육, pp.2002
  72. 윤병모, "고구려의 對唐戰爭과 遼西 및 동몽골 진출", 몽골학, (27), pp.31~62 (2009), 한국몽골학회[DOI]
  73. 윤성환, "624~642년 고구려의대당(對唐)외교와 정국동향", 동북아역사논총, (59), pp.6~62 (2018), 동북아역사재단[DOI]
  74. 윤용구, "『翰苑』 蕃夷部의 注文構成에 대하여", 백제문화, (45), pp.151~166 (2011), 백제문화연구소[DOI]
  75. 이문기, "高句麗 滅亡期 政治運營의 變化와 滅亡의 內因", 한국고대사연구, (50), pp.51~102 (2008), 한국고대사학회
  76. 이민수, "645년 唐의 高句麗 원정군 규모 推算", 한국상고사학보, 100(100), pp.137~163 (2018), 한국상고사학회[DOI]
  77. 李丙燾, "韓國古代史硏究" (1976), 博英社
  78. 李成市, "高句麗泉蓋蘇文の政變について", 朝鮮史硏究會論文集, 31 (1993)
  79. 이성제, "高句麗와 契丹의 關係-對隋ㆍ對唐戰爭期 契丹의 動向과 그 意味", 북방사논총, 5 (2005)
  80. 이영식, "일본서기의 연구사와 연구방법론", 한국고대사연구, 27, pp.141~194 (2002), 한국고대사학회
  81. 이영하, "高句麗 內紛의 국제적 배경 -唐의 단계적 戰略變化와 관련하여", 한국사연구, 110 (2000)
  82. 이재성, "麗唐戰爭과 契丹․奚", 중국고중세사연구, (26), pp.157~218 (2011), 중국고중세사학회[DOI]
  83. 李殿福, "中國內의 高句麗遺蹟" (1994), 學硏文化社
  84. 李必忠, "安西四鎭 考辨", 역사와 교육, 17 (2013)
  85. 이홍직, "日本書紀所載 高句麗關係 記事考 (二)", 동방학지, 3 (1957)
  86. 임기환, "6ㆍ7세기 高句麗 政治勢力의 동향", 한국고대사연구, 5 (1992)
  87. 임기환, "전쟁과 동북아의 국제질서" (2006), 일조각
  88. 張宜婷, "從安西四鎭之焉耆鎭看唐朝對絲綢之路的控制和經營", 昆明學院學報, 2016(5) (2016)
  89. 田美姬, "李基白先生古稀紀念 韓國史學論叢, 上" (1994), 一潮閣
  90. 전호태,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와 중앙아시아의 교류", 한국고대사연구, (68), pp.137~196 (2012), 한국고대사학회
  91. 정병준, "碎葉과 焉耆 (松田壽男, 「碎葉と焉耆」 『古代天山の歷史地理學的硏究』, 早稻田大學出版部, 1956)", 한국고대사탐구, (16), pp.189~250 (2014), 한국고대사탐구학회[DOI]
  92. 정수일, "高句麗와 西域 關係 試考", 고구려발해연구, 14 (2002), 고구려발해학회
  93. 정수일, "고구려와 동아시아-문물교류를 중심으로" (2005), 고려대학교 박물관
  94. 정수일, "실크로드 문명기행" (2006), 한겨레출판
  95. 정순모, "隋唐시기 高句麗 遠征과 儀禮", 역사와 담론, (62), pp.1~28 (2012), 호서사학회[DOI]
  96. 정원주, "7세기 고구려의 西界 변화", 영토해양연구, 8 (2014)
  97. 丁仲煥, "古代史上의 大陸關係-高句麗를 中心으로-", 白山學報, 4 (1968)
  98. 정효운, "『日本書紀』와 『推古紀』", 일본학, 15 (1996)
  99. 채지혜, "唐 前期 北方 羈縻府州의 設置와 變化", 동양사학연구, (125), pp.137~167 (2013), 동양사학회
  100. 최광식, "중앙아시아 속의 고구려인 발자취" (2008), 동북아역사재단
  101. 布目潮渢, "隋の煬帝と唐の太宗" (1975), 淸水書院
  102. 洪淳昶, "韓日古代文化交涉史硏究" (1974)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7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