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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ㆍ후 월남 개신교 정치인, 김병연의 애국ㆍ애족운동 연구

A Study on a Patriotic Movement of Kim, Byung-Yeon, a Wolnam Protestant Politician before and after the Lib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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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인물중점연구로서, 해방정국에 월남한 개신교인 정치인들 중 조만식 선생의 최측근이자 그림자 역할을 했던 김병연 선생에 대해 집중 조명하였다. 본 연구의 학문적 가치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해방 전ㆍ후 민족운동, 독립운동에 있어 그 방식을 달리한 대표적인 두 지도자들(안창호, 조만식)의 사상 및 방식을 동시에 병행했던 인물을 연구한다는 점이다. 애국운동 방식이 다른 두 지도자를 계승하며 그 민족운동의 접점을 찾아갔던 김병연 선생에 대한 연구는 해방전ㆍ후 민족운동을 이해하는데 있어 우리에게 또 하나의 해법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하겠다. 두 번째, 기존의 연구들은 대부분, 월남 개신교(정치인)인들이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남북분단을 고착화시킨 주체이며 동시에 친미주의자, 친 이승만파로 정치에 편승한 자들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김병연 선생을 조명해 볼 때 그가 철저한 반공의식을 소유한 것은 맞지만 친미주의자, 친 이승만파가 아님을 확인했다. 김병연 선생은 대미관계에 있어서도 중도주의를 표방했으며 국토분단의 책임을 미ㆍ소 양측에게 다 돌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승만 초기 정부에서 총무처장을 역임하고 이북 5도청 평안남도 도지사를 십년 넘게 봉직했지만 이승만 정부의 부조리를 지적하는데 소극적이지 않았다. 따라서 본 논문은 월남 개신교 정치인들에 대한 기존 평가에 대해 재고할 필요성을 제공한다. 셋째, 김병연 선생의 대북관, 통일관이 오늘날 이 시대에게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자주적 통일을 넘어 국제협력 및 국제공조를 통한 통일을 촉구하였고 ‘정의’와 ‘진리’ 차원에서 통일의 당위성을 주장하였다. 더불어, 통일 제일 과업으로 내부결속을 통한 힘의 축적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김병연 선생의 ‘통일관’은 이 시대가 평화 및 통일담론을 구축하는데 있어 바른 방향을 제시해준다.

Abstract

This paper focuses on Kim, Byung-Yeon who was the closest staff and right-hand man of Cho, Man-Sik who was the one of Protestant politicians among those who fled to South Korea in the area of Liberation. The academic value of this study is as follows. Firstly, this is to study people who have simultaneously worked on the ideas and methods of two representative leaders(Ahn, Chang-ho and Cho, Man-Sik) who differed in their ways in the national movement and the independence movement around the time of liberation. In the fact that Dr. Kim, Byung-Yeon had succeeded two leaders whose way of the patriotism movement were different, and had reached the point of coexistence in the national movement, this research would be meaningful, and it can present another solution for understanding the national movement around the time of liberation. Secondly, most of the existing researches have described that the Protestants politicians who came from the North are the strong anti-communists and also the very subject group who have fixed the division of the South and the North, and at the same time, the people of pro-American and pro-Rhee, Seung-Man, so that they favored the politics. However, when I examined Dr. Kim, Byung-Yeon carefully, it is right to say he was a strong anti-communist, but he was not a pro-American or a pro-Rhee. Kim, Byung-Yeon expressed his moderate stance on US-ROK relations and mentioned both of USA and Soviet are responsible for the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In addition, even though he served as a deputy secretary general in the early government of Rhee, Seung-Man and served as a governor of PyongAn Province for five years, he did not hesitate to point out the wrong doings from the government of Rhee. Therefore, this paper provides a necessity to reconsider the existing evaluation about Protestant politicians who came from the North. Thirdly, the view of Kim, Byeong-Yeon about North Korea and Unification gives us many lessons for this age. He called for unification through international cooperation beyond autonomous unification, and insisted on the legitimacy of unification in terms of 'justice' and 'truth'. In addition, he emphasized the accumulation of power through internal solidarity as the first task of unification. Thus, Kim, Byung-Yeon's unification view suggests the right direction for the establishment of peace and unification discourse in this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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