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지역 구곡시가(九曲詩歌)의 분포와 전개 양상
The Distribution and Characteristics of the Poetry on Nine Bends(九曲詩歌) in Jeolla-do Prov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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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호남 지역 구곡시가(九曲詩歌)의 분포를 개관하고 몇몇 주요 사례를 바탕으로 호남 지역 구곡시가의 전개 양상을 살펴보았다. 16세기 후반 정희맹의 <용산산수구곡가(龍山山水九曲歌)>를 통해 호남 지역 구곡시가의 초기 현상을 살필 수 있었다. 고향 영광에서 평생을 거처했던 정희맹은 만년에 불갑천 일대에 구곡을 설정하고 시회를 즐기며 10수의 구곡시를 지었다. 무엇보다도 작품의 창작 시기가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의 시기와 인접해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정희맹은 이이와 일정 정도 친분을 지니고 있었거니와, 거의 같은 시기에 기호와 호남에서 구곡시가의 초기작이 산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희맹의 전례는 이후 뚜렷이는 지속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18세기에 이르러서야 호남 지역에서는 구곡시가가 점차 확산되는 흐름이 나타나는데, 이 시기에 지어진 작품이 육홍진의 <문암의무이도가(文嚴依武夷櫂歌)>이다. 그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생애의 대부분을 고향 옥천에서 보냈으며, 만년에 무주의 문암에 정사를 짓고 독서와 강학을 하면서 주자로부터 이이, 송시열로 이어지는 구곡시가 창작의 전통을 잇고자 자신도 구곡시를 지었다. 육홍진은 본래 기호 지역에 기반을 둔 인물이고 무주 역시 지리적으로 호서와 잇닿은 곳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문암구곡은 기호 지방의 구곡문화가 호남의 접경으로 확대된 결과라 이해된다. 호남에서 구곡 경영이 완연해진 시기는 19세기이다. 이 시기에는 구곡을 설정하는 사례들이 이전 시기에 비해 자주 발견될 뿐만 아니라 그 범위도 좀 더 촘촘해지는 경향이 간취된다. 가령,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복수의 구곡이 설정된 경우도 나타나는데, 생몰연대가 십여 년 차이로 겹치는 유호석과 박중언은 같은 고흥 지역에 각각 덕림구곡(德林九曲)과 학계구곡(鶴溪九曲)을 설정하고서 10수의 구곡시를 각각 지어 남긴 바 있다. 앞서 정희맹과 육홍진 역시도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으나 이들은 유자로서의 자의식을 뚜렷이 지니고 있었고 구곡을 설정할 때에도 누정이나 정사를 포함하였던 데 비해서, 유호석과 박중언은 완연히 향촌사족으로서의 위상을 띠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곡을 다루는 시각도 자연경관의 풍취를 보다 세세하게 드러내는 데 치중되어 있다. 독서와 강학을 위한 별도의 공간을 특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익숙한 생활공간에 구곡을 설정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19세기 말에 들어서면 호남 지역 구곡시가에 새로운 기조가 나타난다. 기우만이 장성에 삼산재를 짓고 <삼산구곡시(三山九曲詩)>를 창작하자 이 작품에 차운한 시들이 속출하였던 것이다. 기우만은 노사학파를 이끌었던 호남의 대표적 유림이기에 그의 문인들을 중심으로 <삼산구곡시>에 차운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는데, 시기상으로 뒤늦기는 하지만 이이의 고산구곡과 이황의 도산구곡에 상당하는 위상을 호남 지역에서는 기우만의 삼산구곡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음 시기인 20세기 초에 이르면 개인적인 의미를 넘어 시대적인 공론을 구곡에 담아내는 사례도 나타난다. 진안의 마이산 일대에 설정된 마이구곡(馬耳九曲)이 그러하다. 이도복의 <이산구곡가(駬山九曲歌)>는 이례적으로 국문으로 제작되었기에 더욱 주목된다. 그는 산청 출신으로 진안에 연고가 없으나 자신의 스승인 송병선과 최익현을 봉안한 이산정사(駬山精舍)가 마이산 기슭에 낙성되자 정사를 중심으로 일대에 구곡을 설정하고서 <이산구곡가>를 지었다. 이 작품은 개인적인 감회보다는 일제강점기의 시대적 현안과 울분을 담아내는 데 주안을 두었으며 자연 풍광을 다룰 때에도 해당 공간에 연관된 왕조 창업의 일화와 우국지사의 사적을 부각하였다. <이산구곡가>의 취지는 당대부터 이미 반향을 얻어 후속작이 제작되기에 이른다. 용담향교의 전교였던 허명렬은 광복 직후 이산정사의 봄 제향에 참석한 후 <이산구곡시(駬山九曲詩)>를 지었다. <이산구곡가>의 구곡을 그대로 습용하되 보다 객관적인 견지에서 이산구곡을 조망하였다. 또한 이도복이 국문을 택함으로써 각 굽이마다 보다 자유롭게 시상을 표출하였던 데 비해 정격의 한시 양식을 취한 허명렬은 한층 절제된 표현을 활용하였다.
Abstract
In this paper, the distribution and characteristics of the poetry on nine bends(gugok poetry, 九曲詩歌) in Jeolla-do Province (Homam region) was overviewed and examined based on some major cases. In the late 16th century, the early phenomenon of gugok poetry in the Honam region could be observed through Jeong Huimaeng’s Yongsansansugugokga(龍山山水九曲歌). Jeong who lived all his life in Yeonggwang, his hometown, set gugok in the Bulgapcheon area in his later years, enjoyed a poetry party, and wrote 10 gugok poems. Above all, it is noteworthy that the period of writing the work is adjacent to the period of Gosangugokga(高山九曲歌). Jeong had a certain degree of friendship with Lee Yi, and the early works of gugok poetry were composed in Honam and Giho at about the same time. However, it seems that the precedent of Jeong did not continue after that. It was not until the 18th century that gugok poetry gradually spread in the Honam region, and the work written around this time was Yuk Hongjin’s Munamuimuidoga(文嚴依武夷櫂歌). He spent most of his life in Okcheon, his hometown, without advancing to government office. At the same time, he himself wrote gugok poems to inherit the tradition of creation of gugok poems from Zhu Xi to Lee Yi and Song Siyeol. Considering that Yuk was originally based in the Giho area and that Muju is also geographically connected to Hoseo, it is understood that Munamgugok is the result of the gugok culture of Giho Province expanding to the border of Honam. It was the 19th century when gugok culture was fully established in Honam. In this period, not only are cases of setting gugok more frequently found than in the previous period, but also the tendency for the range of gugok to become more compact is detected. For example, there is a case where a plurality of ‘gugok’s are set at similar times in the same region. Yu Hoseok and Park Jung-eon, whose life and death dates overlap by about ten years, set Deokrim Gugok(德林九曲) and Hakgye Gugok(鶴溪九曲) respectively in the same Goheung area and wrote 10 gugok poems. Previously, Jeong and Yuk also did not go to government posts, but they clearly had self-consciousness as Confucian scholars and included pavilions and lecture halls when setting gugok. In contrast, Yu and Park clearly have the status of rural nobles, and their views on gugok are also focused on revealing the natural scenery in more detail. This is because Gugok was set up in his familiar living space, rather than specializing in a separate space for reading and lectures. On the other hand, entering the end of the 19th century, a new trend appears in gugok poetry in the Honam region. When Ki Uman built Samsanjae in Jangseong and wrote Samsangugoksi(三山九曲詩), poems imitating this work appeared one after another. Since Ki was a representative Confucian scholar in Honam who led the Nosa school(蘆沙學派), a culture was formed in which his students imitated Samsangugoksi. Although it is belated in terms of timing, the status equivalent to Lee Yi’s Gosan Gugok and Lee Hwang’s Dosan Gugok can be found in Ki’s Samsan Gugok in the Honam region. In the next period, the early 20th century, cases of putting public opinion of the times beyond personal meaning into gugok. Maigugok(馬耳九曲), set in the Maisan area of Jinan, is one such example. Lee Dobok’s Isangugokga(駬山九曲歌) draws more attention because it was exceptionally produced in Korean vernacular. Lee was born in Sancheong and has no connection to Jinan, but when Isanjeongsa(駬山精舍), which enshrines his teachers Song Byeongseon and Choi Ikhyeon, was completed in Maisan, he set up a gugok around the building and wrote Isan Gugokga. This work focused on capturing contemporary issues and resentment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rather than personal feelings, and even when dealing with natural scenery, anecdotes of the founding of the dynasty related to the space and historical sites of patriots were highlighted. The purpose of Isangugokga had already been resonated with from the time, and a follow-up work was produced. Heo Myeongryeol, who was in charge of Yongdam Hyanggyo Confucian School, composed Isangugoksi(駬山九曲詩) after attending the spring ritual of Isanjeongsa right after liberation. He used the gugok of Isangugokga as it was, but looked at the Isangugok from a more objective point of view. In addition, while Lee chose Korean vernacular to express his thoughts more freely at each site, Heo, who took the style of authentic Chinese poetry, used more restrained expres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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