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형률론- 『흠흠신서』 판례 분석을 중심으로 -
Dasan Chŏng Yakyong's perception of penal code -Laying stress on analyzing the precedents in the 『Heumheumsyn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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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속대전』과 『대전통편』으로 이어지는 법전 편찬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형전」에서의 급격한 규정 증가이다. 이러한 현상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이전의 『경국대전』으로 표상되던 체제 속에서의 형률에 의한 통제가 이제는 한계에 부딪혔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18세기에 맞는 새로운 틀이 요구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형률에서의 변화와 인식 전환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흠흠신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흠흠신서』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던 다산 형률론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다산은 『흠흠신서』를 통하여 살옥 판단의 원칙을 제시하였다. 다산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참작감률의 원칙과 유교적 인명관, 실증적 검험 등으로 요약될 수 있는 소민을 위한 흠휼의 원칙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원칙들 이외에 『흠흠신서』에서 주목되는 다산 형률론의 특징은 명분론적 인식을 극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다산이 신분적 명분을 살옥 판단의 주요한 근거로 삼지 않은 것과 복수를 구체적인 형률상의 문제로 축소, 구체화시키는 데에서 알 수 있다. 먼저 신분의 문제에 있어 다산은 정상을 살옥 판단과 감형의 요소로 봐야지 신분의 상하나 친척의 친소 등을 감형의 요소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이는 신분적 판단을 중요시하였던 주자(朱子)의 봉건적 법의식과 비교해 볼 때, 주자의 틀에서 벗어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다음 복수의 문제에 있어서 다산은 의리와 도리 그리고 교화 등에 빠져 복수를 미화하던 행태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뿐만 아니라 『주례』를 근거로 하여 사사로운 복수를 억제하고 공권력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는 사사로운 복수를 칭송하였던 송시열(宋時烈)의 복수론과 비교해보면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를 통하여 다산이 17세기 이후 복수설치를 기반으로 한 복수의리론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었던 서인·노론세력과는 다른 방법으로 복수라는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음을 읽을 수 있다.
Abstract
One of the characteristics while codifying the Sokdaejeon(續大典) and the Daejeontongpyeon(大典通編) in the 18th century was a rapid increase of penal provisions. Through this phenomenon, we can recognize that the previous control that had been symbolized as the Kyeongkukdaejeon(經國大典) met with limit. And we can also find out that new laws and regulations which fit in the 18th century was required to overcome those situations. The change like this in penal code and the conversion of recognition also appeared in the Heumheumsynseo(欽欽新書) written by Dasan Chŏng Yakyong (1762~1836). The distinguishing marks of Dasan's thoughts about penal code in the Heumheumsynseo are followings : Dasan presented the principles for judging homicide cases. Dasan wrote that judges should look after the week taking account of circumstances(情況). And he also wrote that judges should sentence plebeians to death from the standpoint of Confucian respects for human life and perform a positive autopsy on corpses in person. Except these principles, the outstanding characteristic of Dasan's thoughts about penal code was getting over the epistemology of moral obligation. We can find this fact in that Dasan didn't decide homicide cases mainly on the basis of a social status and Dasan limited revenges to penal matters. First, in the matter of a social status, Dasan emphasized circumstances in judging homicide cases in stead of a social status. On the other hand Chuja(朱子, 1130~1200) accentuated a social status in judging homicide cases. Therefore Dasan's perception of penal code got out of Chuja‘s feudal consciousness. Second, in the matter of revenge, Dasan criticized that many judicial officers beautified revenge in getting wrapped up in faith, morality and edification and so on. And on the basis of the Chule(周禮), Dasan laid stress on preventing personal revenges and setting up a public power. This is distinguished from Song Siyeol(宋時烈, 1607~1689) who extolled personal revenges. This means that, in solving revenge problems, Dasan had other thoughts in comparison with Seoin(西人)·Noron(老論) who stressed revenge based on faith which had been emphasized as the name of Boksooseolchi(復讐雪恥, getting even with the Qing Dynasty) since the 17th century. Given these facts, we can know that Dasan tried to settle the matters in homicides with the perception of penal code which overcame the epistemology of moral oblig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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