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성종대 실시되었던 사면과 그에 수반된 은전에 대한 분석 -특히 宋‧遼의 책봉 및 東‧西京의 행차 때 실시된 것들을 중심으로-
Analysis of Amnesty and the Accompanying Special Favors in King Seongjong era, Gorye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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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고려 성종대 실시되었던 사면과 그에 수반되었던 은전 등에 관하여 분석하였다. 제1대 군주였던 태조대부터 제6대였던 성종대에 이르기까지 총 16회의 사면이 실시되었다. 그런데 성종대에만 11회의 사면이 단행되었다. 그 이전에는 겨우 5회만 실시되었다. 성종을 제외한 다른 임금들은 재임 기간 중 평균적으로 단지 1회만 단행한 셈이다. 더불어 그에 수반되었던 은전도 매우 풍성한 편이다. 이렇게 전임 국왕들보다 자주 사면을 실시했던 이유를 밝히는 것이 본 논문의 기본 목표이다. 사면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속하는 것이 동기다. 무슨 이유로 사면을 실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성종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즉 전임 임금들이 내세웠던 동기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우들을 추가시켰다. 새로 추가되었던 것들 중에는 중국의 송, 거란으로부터 冊封을 받았거나 송으로부터 『藏經』이 전달되었던 것 등이 포함되었다. 이런 이유로 사면을 실시한 것은 성종이 처음이며 유일했다. 그 외에 책봉을 받은 뒤 지방에 행차하며 사면과 은전의 베풂을 선포하기도 했다. 송으로부터 받았을 때에는 西京에 행차해서 사면을 실시하였다. 거란에게 받았을 때에는 東京으로 행차하면서 사면을 단행하였다. 이 역시 성종이 최초이며, 더구나 동경 행차는 유일했다. 성종이 전임 국왕들과 달리 사면을 자주 실시했던 것은 특별한 정치적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민심을 추스리며 스스로 추진했던 외교 및 국내 정책들의 지지도를 크게 높이려 했다.
Abstract
This study analyzed the amnesty and special favor which were carried out under King Seongjong, the sixth monarch of Goryeo. A total of 16 amnesties were conducted from King T’aejo, the first monarch, to King Seongjong, the sixth monarch. However, 11 amnesties were conducted only in King Seongjong era. Only five amnesties were carried out before King Seongjong. Therefore, except King Seongjong, other kings performed, on average, only one amnesty during their tenure. The main goal of this paper is to identify why King Seongjong had more frequent amnesties than other monarchs. One of the most essential parts of the implementation of amnesty is motivation. Motivation is the answer to why amnesty should be carried out. King Seongjong added new motivations as well as those traditionally brought down, i,e. the motivations of previous kings. One of the reasons for the new addition was that King Seongjong received an investiture from the Sung Dynasty and Qìdān in China. Or, after King Seongjong was delivered the Great Repository of Sacred Buddhist Texts, he carried out amnesty in order to share that joy with the people. King Seongjong is the first king to practice pardon for these reasons. On the other hand, after obtaining investiture, King Seonjong came to the province and declared a pardon. When King Seongjong received a investiture from the Sung Dynasty, he went to Seokyong(Western Capital) in northern territory and executed a pardon. When he received an investiture from the Qìdān, he went to Dongkyong (Eastern Capital) and ran a pardon. This was also the first time King Seongjong did. Unlike his predecessors, King Seongjong often used pardons because of his special political purpose. Through this, he tried to greatly increase the support of his own foreign and domestic polic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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