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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를 척도로 본 조선후기 公田 담론의 경세학적 층차

The Differences in the Statecraft Discourses on Gongjeon(公田) in the Late Joseon Dynasty as Measured by 『Mencius(孟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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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孟子』는 삼대의 이상적인 토지제도가 仁政이라는 이념, 分田과 制祿이라는원리, 井田制와 公田이라는 제도를 통해 운영되었음을 회고했지만, 그 구체적인 실상까지는 알지 못했다. 또한 이상으로부터 단절된 현실에 살았던 그는, 삼대로부터 무엇을 또한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공전에 대한 경학적·경세학적 과제를 후대 유자들에게 남겨놓은 것이다. 조선후기는 전근대의 한국사에 있어 삼대적 이상으로부터 가장 멀리 떠나온 시기였지만 ‘공전’을 소환한 다양한 경세 담론이 제기된 시기이기도 했다. 먼저 李縡는 ‘因時’라는 프리즘으로 공전의 이상성을 재해석했다. 공전의 이념은 현실에까지 왜곡되지 않는 보편성을 지니지만, 그것의 구현은 당시의 제도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삼대와의 질적 차이 속에서 유학의 이상을 선택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그래서 공전의 원형을 저변으로 하되 ‘제록’ 중심의 제도들을 통해 인정의 이념을 달성하려던 현실화된 공전담론인 것이다. 柳馨遠은 공전 원리에 고금을 관통하는 보편성을 부여했다. 특히 삼대의 기내봉건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는데, 이는 현실의 군현제 하에서 정전제가 실행될 수 있게 하는 경학적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공전 원리에 입각한 국가체제를 『반계수록』에 정밀하게 설계했다. 맹자가 남겨 놓은 두 가지 과제를 ‘分田’과 ‘制祿’의 통합으로 풀어냈던, 또한 그로 인해 국가체제의 규모에서 개혁안을 논정했던 조선시대 최초의 경세 담론이었던 것이다. 丁若鏞은 공전 설치의 시공을 삼대 전역으로 확대했고, 9職의 전업과 이원적 수취체제를 상정했으며, 이상세율로서의 1/10을 기각했다. 나아가 다산은 ‘공전체제’를 모델로 한 점진적이고도 전면적인 개혁을 『경세유표』에서 기획했다. 이념과 원리, 그리고 제도의 총체로서의 공전이 국가 체제의 중핵이 되는, 즉 보편적 통치체제로서의 ‘공전체제’를 창안한 것이다. 이처럼 『맹자』가 전한 원형으로서의 공전은 현실에서의 다양한 공전들로 재해석되었다. 그 경학적·경세학적 변주에는 많은 유자들이 동참하고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公田’의 실질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화되었다. 비록 ‘공전들’의 지향은 달랐을지라도, 그들이 공히 公田[井田]을 경세의 장에서 운위했음은 공전으로 표상되는 ‘공공성’을 시대적 과제로 인식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유학의 이상적 전장이 명확한 하나의 제도적 실체가 아님을, 그래서 현실의 다양한 요구와 지향에 상응할 여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分田’의 실현을 타진했던 유자들이 치자의 세습적 특권에 대해 공통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음은 주목되는 지점이다.

Abstract

『Mencius』 recalled the ideal land system of Confucianism, in which Gonjeon(公田) was a core institution. However, he did not provide specific information. Moreover, living in a reality that differed from the ideal, Mencius did not clearly explain what shape this ideal should take and how to realize it. As a result, the task of elaborating on 『Mencius』’s explanation of Gongjeon in the lights of Confucian Classics and statecraft was left to later Confucian scholars. The late Joseon Dynasty was the farthest period from the ideal in the Korean history of the premodern era, but it was also the time when various statecraft discourses were produced that evoked Gongjeon. First, Lee Jae(李縡) reinterpreted the ideal of Gongjeon through a prism called Insi(因時). He believed that the ideology of Gongjeon had universality that still applied even today, but that it could only be achieved through the system that was in place then. His was a realistic revolutionary discourse to selectively realize the ideal of Gongjeon, so as to achieve Injoeng(仁政) through a Zerok(制祿)-centered system. Yu Hyeong won(柳馨遠) regarded the principle of Gongjeon(公田) as a universality that penetrated the past and the present. In particular, he denied the implementation of the feudal system(封建制) in Wangki(王畿), which became the logical link for seeking the feasibility of Jengjeonje(井田制) under the rational bureaucracy(郡縣制). In 『PangyeSurok(磻溪隨錄)』, he specifically designed a state system based on the principle of Gongjeon. It was the first major discourse of the Joseon Dynasty that solved the two tasks bequeathed by Mencius through the integration of Bunjoen(分田) and Zerok(制祿), and thus discussed the reform plan on the scale of the national system. Jung Yak yong(丁若鏞) invented the System of State on Gongjeon(公田體制), in which Gongjeon(公田) was a key law. He argued that only farmers should gain land, and that land gainers should co-cultivate the Gongjeon(公田) for paying tax on land. He also insisted that people who did not receive farmland should become experts in other occupations. His vision was of a country where professionalization was achieved in all industries, including agriculture. Furthermore, in 『GyeongseYupyo(經世遺表)』 he planned a gradual and sweeping reform modeled on the System of State on Gongjeon. Thus, the idea of Gongjeon conveyed by 『Mencius』 was reinterpreted as various gonjeons. Many Confucian scholars fed the variations, and in the process, the substance of Gongjeon was split into various strands. This shows that the ideal Confucian system is not institutionally clear, so there is room for adapting it to the various demands and goals of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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