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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양명학의 시원’으로서 소재 노수신 평가에 대한 기초적 논의 -한국양명학사 記述에서 노수신의 위상을 중심으로-

The Status of Roh susin's position in the narrative of Korean Yangmingx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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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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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국사상사에서 ‘한국양명학 성립의 시원’으로서 소재 노수신(이하 소재) 평가의 기초적 논의를 목적으로 한다. 이 논문은 근현대기 한국사상사 내지 한국양명학사에서 소재가 어떻게 ‘記述’되어 왔고, 그 ‘目次’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논문에서 다루어야 할 주요자료는 해방 전후로 나누어서 10건 정도이다. ‘주요자료’란 전문가들이 한국 사상사-양명학사를 논의할 경우, 필수적으로 거론하는 서적이나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다룰 내용을 다음과 같다. 첫째,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걸쳐 형성된 ‘한국 양명학’ 記述의 방법론에서 최초의 양명학자는 ‘남언경, 이요’ 아니면 ‘장유, 최명길’이었다. 소재를 최초의 양명학자로 규정한 경우는 없었다. 둘째, 양명학의 기술 관점은, 먼저 ‘성리학=주자학=퇴계학’ 도통론의 사회 조선에서 양명학 배척은 당연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이어서, 앞의 결과로, 근대로 나아갈 수 있는 실천적이며 우수한 학문인 양명학이 배제되어 일본의 메이지 유신 성공신화처럼 근대로 전환해 갈 동력(그 중심인물은 양명학과 양명학자)은 부재했기에 조선은 자체적으로는 근대화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무언의 복선이 깔려 있다. 성리학망국론이 조선사상사 또는 조선양명학사 기술의 배후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평가의 가이드라인은 ‘근대일본의 메이지 양명학’의 근대화 성공신화라고 생각된다. 셋째, 조선사상사 기술에서 소재는 세 방면에서 소외되었다. 소재의 사상사적 거처는 애매했다. 먼저, 주자학=퇴계학 도통론자들 이른바 주자학 긍정=중심론자들에게는 거의 주목받지 못하거나 택당 이식의 경우에서처럼 육상산 혹은 양명학 계열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이어서, 성리학 망국론자의 논리에서는 양명학에 대한 탄압과 배척을 부각하면서도 그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 아울러 소재는 양명학자나 연구자 측에서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마지막으로, ‘소재에게서 나흠순 사상의 수용, 육왕학의 수용 부분을 어떻게 무모순적으로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예컨대『전습록』에서보듯이, 왕양명과 나흠순 사이의 의견 차이는 소재의 사상적 강조점을 왕양명-나흠순의 어느 한쪽(양명학, 주자학)에 둘 것인지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 점은 소재 이후 그의 학술이 어디로 향했는가를 묻는 이른바 ‘소재학의 향방’과 연관된 것이다. 이런 논의를 통하여, 이 논문은 ‘한국양명학의 시원’으로서 소재 노수신 평가에 대한 기초적 논의를 진행하였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basic discussion on the evaluation of Roh susin, as a source of Korean Yangmingxue, Focusing on the Status of Rohsusin's position in the narrative of Korean Yangmingxue. There are ten major books and papers that are discussed in this paper, in Korean Yangmingxue history. The contents of this paper are as follows: First, the first Yangmyong scholars were Nam Eun Kyung and Iyo, or Jang Yoo an Choe Myung Kil in the Korean Yangming Studies, which was formed during the latter era of the Choson Dynasty to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n other words, Roh susin is not mentioned. Second, There are three points of view describing Yangming. First, it was natural, in Joseon society from the viewpoint of ruling by Zhuzixue as an orthodox, rejected Yangmingxue. At that time, Toegyehak was a place of orthodox thought such as Zhuzixue. From this point of view, it is estimated that there was no Yangmingxue in Joseon society. So, it is concluded that the miracle of the Japanese Meijiyusin by the Yangmingxue did not happened. As a result of this logic, comes out, so called. the Seonglihakmangguklonja, who claim that the country is ruined because of xinglixue. Third, Roh Susin was alienated from three sides, that is, from the Zhuzixue, Toegye scholars, korean Yangming scholars and Seonglihakmangguklonja. Finally, it is a problem of whether Roh susin is a Yangmingxue or not. Because of Roh susin accepts the idea of Luo qinshun, Zhuzixue scholar. Luo opposed ideologically with Wang Yang-ming. Therefore, there are many points to discuss in order to define him as a Yangming scholar. Any consequences should be discussed with specific grounds, so the results of these discussions will affect future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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