釜山 福泉洞 65號墳 靑瓷 碗의 再檢討
A reassessment of celadon Wan at Busan Bokcheon-dong Tomb No.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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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동 65호 석실묘는 복천동고분군의 최종 조영시점을 알려주는 유구로서 그 중요성이 작지 않다. 더불어 여기에서 출토된 신라 토기와 함께 중국에서 제작되어 이입된 것이 확실한 청자 완이 공반되어 일찍이 주목받은 바 있다. 그러나 공반된 신라 토기 연대의 도출을 위해 부차적인 유물로 언급되었을 뿐, 청자 완 자체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측면이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청자 완 자체에 주목하고, 기년이 확실한 중국 고분 출토 완에 대한 관찰을 시도하였다. 청자 완은 중국 북조대 이래로 지속적으로 출토되고 있으며, 심복형에서 통형으로의 변화가 감지된다. 특히 복천동 65호분 출토 청자 완과 유사한 기형은 북조대(565~572년)의 기년을 가지는 고분 출토품과 높은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이에 6세기 3/4분기를 전후한 시점에 중국에서 청자 완이 신라에 유입되고, 복천동 65호분에 부장된 것으로 상정하였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자료로 경주 용강동 6호분에서 출토된 양이관을 참고할 수 있는데, 중국에서 용강동 6호분과 비교되는 양이관과 공반되는 청자 완이나 墓誌銘의 기년은 7세기 대로 비정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한편 유물의 전세문제가 지적될 수 있는데 백제 사비기, 일본 고분시대 후기에 이르러 귀중품의 재분배시스템에서 벗어나는데, 신라도 예외는 아닐 것으로 본다. 다만 중국에서 신라로의 이입, 그리고 복천동으로의 부장까지 약간의 시간적 낙차는 고려될 수 있지만, 그것이 편년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시간적 대차는 크지 않다. 이와 더불어 신라권역에서 출토되는 당식 대장식구가 주목되는데, 중국 북조에서의 대장식구와 같은 패용법을 유지하고 장식도안을 공유한다는 점에 미루어 신라와 북조 사이에 밀접한 교류가 있었음을 살필 수 있다. 따라서 복천동 65호분에서 출토된 중국 청자 완은 중국 북조 기년묘와의 교차검증을 통해 6세기 3/4분기로 비정될 수 있으며, 이후 신라에 이입되어 부산에 부장되기까지 큰 시간적 대차는 없는 것으로 본다. 아울러 이 유물은 신라권역에서 출토되는 당식 대장식구, 최근에 발견된 창원 석동고분군 출토 녹유 완과 더불어 신라와 북조와의 관계, 그리고 신라의 지방 지배를 살피는 데 유효한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Abstract
Bokcheon-dong stone chamber tomb No. 65 carries considerable significance as the remains could inform us of when the Bokcheon-dong tombs were ultimately built. Also, it has already drawn much attention since celadon Wan, which must have been manufactured in China and spread to this region, was discovered here along with Silla pottery. However, previous research has touched upon Wan only as anancillary relic used to derive a date when the accompanying Silla pottery was made, but few studies have examined Wan itself. As such, this paper focuses on Wan and attempts to investigate Wan from a Chinese tomb with a definite construction year. Celadon Wan has been steadily unearthed since the era of the Chinese Northern Dynasty, and its shape has changed from spherical (心腹形) to cylindrical (筒形). The Wan from Bokcheon-dong chamber tomb No. 65, in particular, is very similar to what was discovered from a tomb that was erected during the period of the Northern Dynasty (565–572). Therefore, it is assumed that celadon Wan was introduced from China to Silla around the third quarter of the sixth century, and one of them was buried in Bokcheon-dong chamber tomb No. 65. Meanwhile, YangikWan, which was excavated from Gyeongju Yonggang-dong camber tomb No. 6, may serve as a complement. It is worth noting that celadon Wan or epitaph in China, which is associated with YangikWan, is believed to date back to the seventh century. While some may point out that the relic might have been inherited, people stopped redistributing their valuables since the Sabi period of Baekje and the late Kofun period in Japan, and Silla must have been no exception. It may have taken some time for Wan to be introduced from China to Silla and then to be buried in Bokcheon-dong, but the time lag was not significant enough to affect the chronology. In addition, the Tang-style metal belts that have been discovered from the Silla region are worth exploring. Considering that they were worn in the same way as metal belts in China’s Northern Dynasty and the two share the same ornamental designs, it can be inferred that frequent exchanges were made between Silla and the Northern Dynasty. Thus, through a cross examination with a tomb from the Northern Dynasty in China, it was found that the Chinese celadon Wan, which was excavated from Bokcheon-dong tomb No. 65, was produced in the third quarter of the sixth century; therefore it seems that there was not a huge time difference between its introduction to Silla and the burial in Busan. Furthermore, the artifact warrants much attention as a useful reference for the relationship between Silla and the Chinese Northern Dynasty, and Silla’s control of the provinces, along with the Tang-style metal belts often discovered in the Silla area, and the NokyuWan that was recently excavated in the Changwon Seok-dong chamber tom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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